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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의 일제고사에 대한 재채점 결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 안병만) 발표에 의하면 전국 교육청의 90% 이상에서, 사례로는 32%인 1만 6천여건의 성적 조작 또는 오류가 발견되었고, 전체 900만 장의 답안지 중 약 7.2%인 65만 장이 사라져 전국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이렇게 임실의 조작으로 상징되는 그 난리에, 그 망신을 당하고서도 교육과학기술부는 여전히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평가 형식의 일제고사로 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제고사에 대한 새로운 계기들이 생겨나 이후에도 정부가 계속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면서 학업성취도 평가를 일제고사 형식의 전수 평가로 밀어붙일 수 있을지 관심이 고조된다.

[계기1] 미국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표집 평가

지금까지 교과부는 일관되게 미국에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NCLB(학생낙오방지법)에 의해서 모든 학생들과 학교가 같은 문제로, 같은 시간에 시험을 보는 전수 평가로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다가 드디어 미국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전수평가가 아님을 마지 못해 인정하고 나섰다.

- 미국은 교육이 각 주(州)의 권한 사항이기 때문에 주별로 실시하는 학력평가가 사실상 우리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음
- NAEP는 오히려 정부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전수평가 시 표집을 샘플하여 분석하는 자료와 유사한 형태

교과부가 지난 3월 10일 교과부 홈페이지에 올린 "미국이 전수평가? 청와대까지 나서서 일제고사 거짓선전"이라는 기사에 대한 해명 자료로 낸 언론 보도 자료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인 NAEP는 표집 평가이고 선택"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미국은 교육이 각 주(state)의 권한 사항이기 때문에 주별로 실시하는 학력평가가 사실상 우리의 국가 수준학업성취도 평가에 해당한다고 궁색한 변명을 한다.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점을 내세워 우리와 다르다고 하면서 미국의 주단위 학력시험이 우리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같다는 궤변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시 시도 교육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직선으로 뽑고, 지방교육자치를위한특별법이라는 별도 입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중등교육에 관한 것은 교육부 소관이 아니라 교육청 소관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없다.

즉, 교과부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NAEP라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는 전수 평가가 아니라 샘플 평가라는 점을 사실상 교과부도 알고 있고 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주마다 달라... 의무라는 주 학업성취도평가도 학부모가 선택

그리고 미국의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하여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교과부의 말처럼 미국의 주단위 학업성취도 평가(state NAEP)는 외형상 의무 시험(compulsory)이다.

그러나 이 역시 주마다 다르며, 대부분의 주들이 학부모가 시험에 참가하기를 원하지 않으면 시험에 참가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 중앙 정부가 주정부의 학업성취도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AYP(Adequate Yearly Progress)를 평가함에 있어서 학생들의 시험 참가율 95% 이상을 요구하고 평가의 신뢰도를 매기는데 있어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기는 하지만 그 이하이거나,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해서 어떤 불이익도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 역시 교과부가 모를 리 없다. 모른다면 직무유기이다.

[계기2] 영국 교원노조·교장단연합회, 학업성취도 평가 거부

2009년 영국(England) 교육계의 최고의 핫 이슈(hot issue)는 영국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의한 학업성취도 평가이다. 영국에서는 대처 정부 이래 수십년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SATS)와 학교 순위표(League Table)을 통한 학교간 경쟁과 서열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다 이들에 대한 부작용과 반발로 인하여 웨일즈를 시작으로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까지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없애고 잉글랜드에만 남아 있게 되었다. 급기야 올해부터는 Key Stage3에 해당하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 평가를 폐지하고 선택으로 바꿈과 동시에 학교별, 교사별 평가로 대체하도록 하였다. 그나마 Key Stage1과 Key Stage2에 해당하는 초등학교 2학년과 6학년에만 남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주지의 사실이다. 교과부만 모르나?

그러나 이마저도 올해 초등교육과정에 대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케임브리지대학 초등교육 과정 보고서(CPR)에서 SATS에 의한 교육 획일화를 비판하는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초등학교 수준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국의 최대 교원노조와 교장노조에서 초등학교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기로 결정하고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영국도 우리나라 일제고사의 모델이 되기를 거부한 상황에 교과부는 뭐라고 변명할까?
 영국의 최대 교원노조와 교장노조에서 초등학교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기로 결정하고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영국도 우리나라 일제고사의 모델이 되기를 거부한 상황에 교과부는 뭐라고 변명할까?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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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지난 3월 27만명의 회원을 가진 영국 최대의 교원노조인 NUT(National Union of Teachers)와 2천8백 교장들의 노조인 NAHT(National Association of Head Teachers)가 지난 3월 26일 공동으로 초등학교에서의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인 SATS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NUT 홈페이지 www.teachers.org.uk, NAHT 홈페이지 www.naht.org.uk 참조)

이미 중학교와 고등학교 수준에서 전국 일제고사가 없어진 상황에서 초등학교의 학업성취도 평가도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반 교사들뿐 아니라 교장들까지 나서서 외치고 있다. 교장들이 나서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거부를 선언하는 영국과 일제고사 시행에 앞장서는 것도 모자라 교사 파면해임까지 동조하는 우리나라 교장과는 너무도 다른 장면이다.

미국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표집평가라는 사실과 함께 우리나라 전수평가의 모델이었던 영국에서도 교사들과 교장들이 일제고사 거부를 선언하고 나선 상화에서 계속 교과부가 전수평가를 세계적 추세라면서 밀어붙일 수 있을까?

[계기3] 교육과정평가원, 전국학업성취도 평가 재검토 제안

교과부로서는 더 횡당한 일도 일어났다. 지금까지 학업성취도 평가 업무를 사실상 주도해왔던 교과부 산하의 교육과정평가원이 현행 일제고사 방식의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서 총체적인 재검토를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3월 초 교육과정평가원의 정은영 박사팀은 '학업성취도 평가체제 개선과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고교 1학년을 평가에서 제외하고, 시험과목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개 과목을 치르는 방식에서 국어와 수학만 치르되 문항 수를 늘리고, 채점을 시도교육청이 주관토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전수평가를 고집하는 교과부에는 가장 곤혹스럽게도 정 박사팀은 진정한 학업성취도 평가를 위해서는 서술형평가를 포함시켜야 함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렇게 문항수를 늘리고 서답형 평가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면 사실상 교과부가 수합하여 채점하는 방식의 전수평가는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교과부가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주관하는 주무 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에서도 현재 일제고사 방식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을 제안하고 나선 마당에 교과부는 더욱 궁색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계기4] 경기도에서 최초로 일제고사 반대하는 교육감 탄생

교과부가 고집하는 일제고사식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계기 중의 하나가 바로 지난 4월 9일의 경기교육감 선거이다. 이 선거에서 일제고사 폐지를 주장하는 진보진영의 김상곤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교과부에서 시행 여부를 결정하고 이후 구체적인 시행이나 채점 등을 모두 시도교육감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시도교육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율권마저 스스로 내팽개치고 사실상 교과부의 하위 기관으로서 대통령의 임명직 관료로 전락한 측면이 있었다.

의결권이 없는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이를 강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경기도에서 표집으로 실시하거나 학생 선택권을 존중하겠다고 하면 이를 강제할 아무런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부와 청와대는 더욱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그리고 교과부 산하 교육과정평가원에서도,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있는 사면초가의 상황이 교과부의 일제고사식 학업성취도평가 옹고집을 더욱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내외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과부가 막무가내식으로 일제고사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교과부는 과연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까?


태그:#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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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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