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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인가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꽃에서 발견하였다. 꽃들은 천국의 문지기들 인지도 모르겠다.
▲ 감나무 옆의 야생화 나는 언제부터인가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꽃에서 발견하였다. 꽃들은 천국의 문지기들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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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농일여(禪農一如) 농선쌍수(農禪雙修)

월요일인 어제 아침 6시 대전을 향해 시랑헌을 출발하자 자동차의 앞 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남원을 지나 전주에 이르자 빗줄기는 굵어지고 계룡산 자락의 상신리 집에 도착하니 심한 봄 가뭄 때문에 타 들어 가고 있는 대지가 흥건하게 젖었다.

작년에 포장한 도예촌 길의 시멘트독 때문에 향나무들이 죽어간다. 
옮겨줘야할 것 같아 분을 뜬다.
▲ 울타리용 향나무 작년에 포장한 도예촌 길의 시멘트독 때문에 향나무들이 죽어간다. 옮겨줘야할 것 같아 분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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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헌으로 시집가기 위해 준비하는 향나무들, 세력이 너무 약하다.
▲ 분을 뜨는 향나무 시랑헌으로 시집가기 위해 준비하는 향나무들, 세력이 너무 약하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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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 50그루와 매실나무 4그루 대추나무 1그루를 심고, 산기슭에 잘못 심어진 대봉 감나무 8그루를 새 집터로 옮겨 심은 작업을 일요일 저녁 늦게까지 해야 했던 탓에 지지대는 물론, 반드시 줘야 할 물도 주지 못하고 일기예보가 적중하기만 바랬다. 출근을 위해 대전으로 돌아와야 했던 우리에게 봄비는 너무나 반가운 손님이었다.

일요일 저녁 늦도록 같이 일을 했던 김일수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심어 놓은 향나무 중 절반 이상이 심한 비바람에 넘어졌고 목재를 건조시키기 위해 작년에 설치한 천막이 날라갔다는 것이다. 이식해 놓은 감나무 2그루가 날아간 천막에 부딪쳐 넘어졌고 천막은 다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 됐단다. 축복받은 오전 기분이 완전히 반전되는 순간이다.

지난 3차례 주말을 이용하여 시랑헌 처마를 달아내고 부실 시공된 마루를 수선하고, 집터 뒤쪽을 높이는 일을 했다. 나는 아직 자연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혜안도 없고, 수행도 부족하여 지혜도 쌓지 못했다. 할 일에 대한 전문지식마저 없으면서 계획한 일을 끝내겠다고 온갖 부산을 떨다 보면 매번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나의 이런 과정을 중국 선불교의 4대 조사 도신선사의 가르침인 선과 노동은 하나라는 선농일여(禪農一如) 사상에 근본을 두고 있으며 몸소 농사와 참선을 병행하는 농선쌍수(農禪雙修) 실천이라고 자위했다.

올해로 98세가 된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스승인 지세린은 '정말로 넓은 포부와 아량이 있다면 겸손하게 행동함으로써 더 진보할 수 있지만 속이 텅 비어있다면 아무리 자만해도 진보할 수 없다고 했다.' 나의 선농일여 사상과 농선쌍수 실천이 겸손의 정도를 지나쳐 위선의 경계에 들었으니 오만 방자한 나의 위선이 어찌 창조주의 따끔한 경고 없이 넘어갈 수 있었을까? 

무지와 위선 때문에 지불한 비싼 수업료

시랑헌 처마를 달아내기 위한 기둥과 판재는 남원 현대 목재소에 주문했지만 데크를 만들기 위한 방부목은 남원과 가격차이가 많아 대전에서 구입하여 트럭에 싣고 출발하였다. 저녁 늦게 시랑헌에 도착하였다. 2톤이 넘는 목재를 차에 적재된 상태로 저녁을 보내면 차의 스프링에 무리가 간다는 생각에 트럭에 올라가 목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낮과 저녁의 온도차이 때문에 트럭의 적재함에는 결로현상에 의한 이슬이 생기기 때문에 미끄럽다. 이 점을 무시하고 트럭 위에 올라가 짐을 내리다가 트럭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쳐 박혔다. 떨어지는 순간은 찰나겠지만,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느낌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상신리 집울타리로 사용하기 위해 심은 향나무들이 도로포장공사 때 사용한 시멘트 독 때문에 죽어간다. 옮겨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분을 떠서 트럭에 싣고 시랑헌으로 왔다. 옮길 자리가 마땅치 않아 고민을 하다가 우선 길 건너 터에다 임시로 심어놓기로 하고 일을 하는데 집사람 생각이 바꿨다. 내가 전 주일에 만들어 놓은 장소가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옮겨 심을 장소의 일부 구간은 차량이동이 불가해 인력으로 날라야 한다. 일의 량이 갑자기 늘어났다. 지금까지 한 사람을 고용하여 나와 같이 일을 했지만 둘이서 감당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두 사람을 더 고용하였더니 점심시간 전에 향나무 옮겨 심는 작업이 끝나버렸다.

제자리를 찾아 간다. 넓고 햋볕이 잘드는 곳이고  전에 밤나무 밭이라 토지가 비옥하여 잘 살것으로  기대한다.
▲ 시랑헌으로 시집온 향나무들 제자리를 찾아 간다. 넓고 햋볕이 잘드는 곳이고 전에 밤나무 밭이라 토지가 비옥하여 잘 살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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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너무 크게 떠서 한 사람이 들고 경사길을 올라가기 힘들어 굴착기로 올릴수 있는곳 까지 올려줬다.
▲ 향나무가 살아갈 터 분을 너무 크게 떠서 한 사람이 들고 경사길을 올라가기 힘들어 굴착기로 올릴수 있는곳 까지 올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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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집사람은 평소에 시랑헌 뒤 산기슭에 심어진 대봉감나무를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기고 싶어했다. 오후에는 인부들과 나는 감나무 8그루를 옮겨 심는 작업에 매달렸다. 감나무는 생각보다 크고 묘목 때부터 같은 장소에서 자랐기 때문에 굵고 잔 뿌리가 많아 작업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다.

북동쪽을 향하고 있는데다 뒷쪽의 경사가 심해 감나무가 자라는 환경으로 좋지않아 진즉부터 옮겨줘야한다고 생각만하고 옮기기 못했더니 어느새 이식이 힘들 정도로 거목이되어잇다.
▲ 이식을 위한 가지치기 북동쪽을 향하고 있는데다 뒷쪽의 경사가 심해 감나무가 자라는 환경으로 좋지않아 진즉부터 옮겨줘야한다고 생각만하고 옮기기 못했더니 어느새 이식이 힘들 정도로 거목이되어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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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무 지름의 3배가 되도록 둘래를 정한 다음 안쪽의 땅은 절데로 깨지지않도록 바깥쪽으로 삽질이 요구된다. 살며시 들면 들릴 정도로 둥글게 판다.
▲ 분뜨기 원나무 지름의 3배가 되도록 둘래를 정한 다음 안쪽의 땅은 절데로 깨지지않도록 바깥쪽으로 삽질이 요구된다. 살며시 들면 들릴 정도로 둥글게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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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무를 옮기는 작업의 과정을 알게되었다. 특히 분을 뜨는 과정은 
옮겨가는 나무의 생사를 가름하므로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 옮겨갈 준비를 끝낸 감나무 이번에 나무를 옮기는 작업의 과정을 알게되었다. 특히 분을 뜨는 과정은 옮겨가는 나무의 생사를 가름하므로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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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져도 분을 뜨는 일도 끝나지 않자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마당에 나무조각들이 널브러진 목공작업장을 급히 지나다니면서 일을 서두르다 나무에 박힌 못을 밟아버렸다.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은 사람이 못을 밟아 발바닥에 상처를 입혔으니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올라 기분이 언짢다. 작업 중이라 바로 병원에 갈 수도 없다. 다음날 월요일 아침 대전으로 돌아와서 병원으로 갔고 국소마취 후 수술을 받았다. 5일 이상 통원치료가 뒤따라야 한다. 

저녁에 일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일을 서두르는 것도 화를 부른다. 위험요소인 못이 박혀있는 나무를 그냥 방치했다가 발로 밟는 사고를 당한다. 다음날 비가 온다는 나에게 좋은 소식은 받아들이고 비와 같이 올 수 있는 손님인 바람을 무시했기에 몇 배로 보상했다. 이게 나의 현주소이다.

천막은 대형과 소형을 막론하고 줄로 땅바닥에 고정시킨다. 이 줄은 시간이 지나면 느슨해지거나 끊어지기 마련이다. 오가며 이런 천막상태를 봤지만 미처 손길을 미치지 못해 천막이 날라가고 큰 감나무가 넘어지고 천막의 기둥들이 휘어버려 다시 사용하기 곤란한 상태가 됬다. 사전에 손을 쓰는 사람인 진인이 되어야한다. 

일수씨는 어제 비를 맞으며 날아간 도로 위의 천막을 처리했고 오늘은 비가 멎은 틈을 이용해 쓸어진 향나무를 모두 세워놓고 잘 다져놨단다. 하루 동안 같이 일한 인연으로 궂은 날씨에 이런 일을 하기 힘들 텐데 말이다. 일수씨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또 세상은 이래서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

우리는 흔히 사고나 재앙을 만나면 운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 2년 가까이 시랑헌을 다니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사고나 재앙은 운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예방조치가 가능하다.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 만이 자연을 볼 수 있는 혜안과 들을 수 있는 지혜의 귀가 열린다.


태그:#선농일여, #농선쌍수, #귀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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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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