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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심는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들 사이에 목욕탕이 하나의 문화였다고 한다. 호화롭게 장식한 목욕탕에서 노예들의 시중을 받으며 사교를 했던 당시 귀족사회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땔나무를 필요했는데 그로인해 로마 주변의 산림은 황폐화되었고 인심은 험악해졌으며 상승하는 땔나무 가격을 감당하지 못한 귀족들은 몰락하고 결국 로마는 붕괴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목욕탕을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벌목이 로마 멸망의 한 가지 원인이었다고 진단한다.

내가 나무를 심는 까닭은 그런 역사적 사실을 교훈으로 되새기는 작업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구 최후의 순간에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던 철학자를 본받자고 하는 일도 아니다.

지난 2월말 남천을 심어 울타리를 조성할때의 내 모습을 아내가 잡은 그림이다.
▲ 울타리 만들기 지난 2월말 남천을 심어 울타리를 조성할때의 내 모습을 아내가 잡은 그림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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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때문에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이로 인해 해수면 상승으로 태평양의 섬나라는 물에 잠겨 사라지고, 빠르게 진행되는 사막화, 날로 대형화되는 홍수와 가뭄의 재앙을 본다.

재앙의 원인은 선진 강대국들의 경쟁적인 산업화로 인한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 때문이라는 점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구의 숲을 무차별적으로 남벌하고 산을 헤집어 무수한  생명을 으깨어 죽인 인간의 이기심 때문임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게는 산과 들에 놀이터를 만든 인간들의 탐욕과 사치 때문임도 모를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자연이어야 했다. 숲은 그냥 숲으로 남았어야했고 강은 그대로 흐르도록 두었어야 했다. 기름진 평야에는 오곡이 열매를 맺도록 두었어야 했다. 그런데 인간은 마치  강산의 주인으로 행세하면서 닥치는 대로 산을 허물고 새로운 물길을 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개발이 필요함을 이해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쳤다는 말이다. 과시적인 주거 공간, 대도시 편중의 공장 건설, 필요를 넘는 도로, 그리고 돈 자랑하는 골프장, 온 나라를 건설 현장으로 만든 무분별한 각종 정책들…, 그것들은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도 그렇지만 개인에게도 결코 선(善)일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연을 그렇게 만든 그 인간의 범주에 내가 속해있었다.

장차 정원수로 심을 소나무이다. 지난 3월 심었다.
▲ 소나무 장차 정원수로 심을 소나무이다. 지난 3월 심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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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는다.
자연의 재앙을 만든 공범자로서 자연에 진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나무를 심는다. 내 탓이요 하는 마음으로 꽃으로 기쁨을 주는 나무, 과일을 선물로 주는 나무, 주술적 기원을 담은 나무, 사람의 병을 치료한다는 나무를 심는다.

나무를 심는 일 역시 내재된 욕망의 표현일 수 있다. 어쩌면 형태를 달리하는 과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악업을 지을 의도가 없으니 착한 일은 아닐지라도 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2년전 심은 묘목은 벌써 어른 허리를 웃자랐다. 내년이면 더 자랄 것이다.
▲ 꽃망울이 터지는 철쭉길 2년전 심은 묘목은 벌써 어른 허리를 웃자랐다. 내년이면 더 자랄 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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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의 한파는 화훼, 묘목 농가라고 예외일 수 없다고 한다. 건설경기가 가라앉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마당에 꽃이며 묘목인들 팔릴 것인가! 철쭉은 작년 가격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음에도 매출양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당장의 수입은 없어도 심어진 나무가 썩어 없어질 물건은 아니기에 기다릴 수 있다는 순박한 농부의 하소연을 생각하며 나무를 세우고 흙을 덮는다.

이 봄이 가기 전, 마당 한쪽, 혹은 화분에라도 몇 포기의 꽃 몇 그루의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거창한 명분보다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지난 4월 19일(일요일) 만든 철쭉길. 활처럼 굽은 길인데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 철쭉길 지난 4월 19일(일요일) 만든 철쭉길. 활처럼 굽은 길인데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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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나무들이 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 장에서는 무슨 나무들을 만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에서도 볼 수 있음



태그:#나무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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