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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랑'은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에요."

"'이름'은 엄지와 검지로 이름표를 만들면 되구요."

"'이제'는 지읒을 손으로 표현한 건데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펴주면 됩니다."

 

손은 제 맘대로, 머리는 지끈 지끈, 땀은 삐질 삐질.  노래 한 곡을 가지고 벌써 두 달째 연습을 하고 있지만 할 때마다 처음 배우는 사람들처럼 헤매고 틀리고 얼버무리니 많은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공연을 재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손이랑 머리가 따로 노는데 어떻게. 난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네."

"그러게 말이야. 처음엔 이렇게 배우다보면 언젠가는 청각장애인들과 대화도 가능하겠지 희망을 갖고 그랬는데 배워보니 장난이 아니야. 외국어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렵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수화 찬양을 준비 중인 장애인 주말학교 선생님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장애인의 날 공연을 위해 두 달 넘게 수화를 배우고 연습했지만 생전 처음 외국어를 배운 사람처럼 기억되는 것이라곤 고작 짧은 단어 한두 개 정도일 뿐 노래 한 곡을 수화로 표현해내기는 시간도 기억력도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죠.

 

가수 인순이가 자신의 노래 '거위의 꿈'을 수화와 함께 들려주는 것을 보면서 더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감동적인 목소리에 실린 주옥같은 노랫말들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그녀의 수화는 우리 귀에 들리는 그녀의 어떤 열창보다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비록 아름다운 소리로 표현되는 음악을 듣지는 못하는 청각장애인이지만 노랫말과 소리에 담긴 아름다운 정서를 수화를 통해 그들에게 들려(혹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지요.

 

장애인 주말학교의 교사일지라도 평소 수화를 사용할 기회가 적어 "안녕하세요"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정도의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간단한 수화정도만을 알고 있었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말'인 수화 익히기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영어나 불어, 독어, 일어, 중국어 그 어떤 나라의 말보다 어려운 말 그대로 '외계어'였던 것이지요.

 

 

"학교나 기관에서 제대로 된 수화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은 수화로 하는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또 다른 청각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지금도 시골 오지처럼 교육과는 동떨어진 환경에서 지내는 청각장애인들은 생활수화라고 해서 스스로 만든 수화로 자신을 표현하고 계시죠."

 

"그래서 시골 같은 데는 생활수화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공식수화로 통역하는 생활수화통역사가 필요하기도 해요."

 

"청각장애인이 쓴 시나 수필,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보셨나요? 아마도 쉽게 보지 못하셨을 거에요. 그건 청각장애인들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색깔 하나를 표현하는데도 그때 그때 감정과 정서에 따라 수십 가지 단어가 사용되잖아요. 하지만 수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단어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청각장애인들 중에 정서적인 갈증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수화로 섬세한 감정의 표현까지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청각장애인들도 처음엔 아이가 세상에 나와 말을 배우듯 그렇게 수화를 배워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의식하지 않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말을 배우고 익힌다면 청각장애인들은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경우죠. 여러분들이 지금 수화찬양을 배우는 것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배우고 익혀야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청각장애인들에게는 한국말도 외국어와 같아요. 수화를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요."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저녁 우리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수화찬양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단어를 까먹어 에매한 손동작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더러 더러 빼먹는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눌하고 서툰 수화로라도 말을 건네고 노래를 들려주려는 우리의 노력을 곱게 보아주었기를 기대합니다.

 

공연을 끝내고 TV를 보니 전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뉴스 시간 작은 동그라미 속의 수화통역사가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 없습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새로운 말을 배우듯,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의 말을 배우듯 수화를 배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언젠가 소리를 듣지 못해 말을 하지 못하는 주변의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게 될 그날의 위해 저도 한번 열심히 배워 보렵니다.


태그:#장애인의 날, #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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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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