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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바다가 보이는 해안길을 따라 조깅을 한다. 그 해안길의 끝, 청사포 등대를 바라보고 서 있는 수령 300년 된 망부송이 있다. 이 망부송은 청사포 마을 당산나무. 이곳에 오면 항상 제당 앞에 촛불이 팔락거리고 있고, 어부들이 출항 직전 제를 올린 듯 정화수 등이 눈에 띈다. 청사포는 아직은 옛스러운 어촌 분위기가 남아 있다.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이 많아서 일까. 이 마을 사람들의 당산나무에 대한 애정은 지극하다. 옛부터 마을주민들은 이 당산나무가 마을의 안녕을 지켜준다고 믿어왔다. 
 

 
통통통 거리는 통발 어선 한척이 다가오고 어선에서 내린 어부 몇몇이 웅성웅성 지난 8일 무참하게 도끼에 잘려나간 당산나무의 상처에 대해 심각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얘기인즉 정말 누구 짓인지 모르지만 신령한 나무를 함부로 베여서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중 한 어부는 정말 마을에 재앙이 내리면 어쩔 거냐는 걱정의 소리였다.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경찰들이 쳐 놓은  붉은 포리스 테이프 너머, 무참하게 톱날 같은 것에 잘려나간 나무의 상처의 자리를 살폈다. 이 나무가 사람이라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수령이 깊은 나무라서 나무를 찍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터인데, 목격자가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당산나무 주변은 사람들이 24시간 들락거리는 식당이다. 그런데도 아무 소리도 듣지도 못하고, 목격자도 없다니 약간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옛부터 나무(神樹)를 숭배해 왔다. 마을의 동구나 정자 등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에는 대개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당산나무가 자리한다. 당산나무는 신령한 나무. 수령이 깊은 나무.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
 
우리나라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아버지 환인(하느님)의 도움으로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온,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에서 먼저 신성한 나무의 예를 찾아볼 수 있겠다. 그러나 점점 시골에서도 당산나무를 섬기는 풍속을 보기 힘들다. 이곳의 당산나무는 해운대 구청의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지만, 24시간 관청에서 보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은행처럼 CCTV를 설치 한다는 것도 이상스럽지 않을까.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는 구석기 시대부터 부락을 이루어 살던 마을이다. 오래된 이 마을의 당산나무에는 아름답고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전해 지는 얘기에 의하면 바다로 고기 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가 망부석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김씨 할머니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골매기 할매'로 좌정시켰다고 한다. 해서 이 당산나무 이름은 '망부송'이다. 이곳 주민들은 김씨 할머니의 영혼이 깃든 당산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나무는 대개 인재에 비유된다. 그리고 큰 거목의 그늘을 정신적 지주로 비유하기도 한다. 가만히 보면 인생은 나무와 많이 닮아 있는 것이다. 어린이를 일러 꿈나무라 하지 않는가. 한그루의 나무의 수난이 뭐가 대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령이 깃든 당산나무에 대한 이 마을 주민들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이 있어야,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도 생성되지 않을까.  
 
청사포는 해운대 관광 특구의 대표되는 삼포 중의 하나이다. 탁 트이고 청정한 바다 빛도 아름답지만 먹거리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밤야경이 아름다워 많은 아베크 족과 가족 등 외식 장소로 많이 찾는다. 그러나 자연이 좋아 찾아온 외지인들이 많으면 많은만큼 자연과 바다의 오염이 늘고 있다. 한 어부는 이제 외지인이 점점 무서워진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자연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반인반수 같은 사람이 아닐까. 


태그:#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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