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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사이로 바라보이는 N서울타워
 벚꽃 사이로 바라보이는 N서울타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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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남산만큼 정다운 산이 있을까, 남산은 서울을 도읍지로 세운 조선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울사람들과는 항상 가까운 이웃이고 정겨운 벗이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다소곳이 솟아 있어 시내 어느 곳에서나 바라보이는, 마음 가득 고향처럼 자리 잡고 있는 산이 바로 남산이다.

오랜만에 남산을 찾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선뜻 다가설 수 있는 산인데 무려 2년 만에 찾은 것이다. 너무 가까워서 그만큼 귀한 줄을 몰라서였을 것이다. 그동안 가깝고도 먼 산이 남산이었다. 남산을 찾게 된 것은 벚꽃축제 소식 때문이었다.

서울의 벚꽃축제는 여의도 윤중로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남산에서도 벚꽃축제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벚꽃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 금요일 4월 10일이었다. 지하철 서울역에서 내려 천천히 걸었다, 힐튼 호텔을 거쳐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벚꽃구경 길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빛깔 고운 화려한 꽃밭
 빛깔 고운 화려한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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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개나리가 한창인 순환도로
 벚꽃과 개나리가 한창인 순환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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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순환도로를 따라 안중근 기념관 광장에 이르자 꽃밭에 심어 놓은 울긋불긋 봄꽃들의 빛깔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 꽃밭에 물을 주고 있는 사람에게 벚꽃이 어디가 좋으냐고 물으니 남산공원관리소 남쪽 순환도로로 내려가 보라고 권한다.

"남산 벚꽃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네. 여의도 윤중로보다 이곳이 더 좋은 걸."
"정말 그러네, 산이어서 그런 것 같아. 사람들도 너무 붐비지 않고."

그의 말대로 남쪽 순환도로 입구는 활짝 피어난 벚꽃이 장관이었다. 함께 간 일행들이 금방 감탄사를 터뜨린다. 길 양쪽에 늘어선 벚나무들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로, 키도 크고 가지들도 무성하여 활짝 피어난 하얀 벚꽃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벚꽃이 장관을 이룬 곳이라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승용차를 몰고 지나가던 젊은 커플은 차를 잠깐 세우고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가리고 뒤덮인 벚꽃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N서울타워의 모습도 일품이었다.

와룡묘
 와룡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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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과 조지훈 시비
 꽃밭과 조지훈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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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그늘에는 가족 친지들과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모여 앉아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모습도 정답다. 사슴 모형 앞에서 아내와 나란히 앉은 귀엽게 생긴 어린 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젊은 아빠의 표정에는 오롯한 사랑이 넘쳐난다.

"모처럼 남산에 올랐는데 오늘 벚꽃길 따라 남산 한 바퀴 돌아볼까?"

몇 년 만에 남산을 찾았다는 일행이 순환도로를 따라 남산을 한 바퀴 돌아보자고 제안을 한다. 그의 말을 따라 다시 광장을 건너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는 북쪽 순환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북쪽 순환도로도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벚꽃길을 따라 걷는 시민들도 상당히 많았다. 조금 걸어 올라가자 오른편 산자락에 와룡묘가 나타났다. 중국 고전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의 유비를 도와 기발한 작전을 많이 펼쳤던 모사 제갈량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을 구경하려고 안으로 들어가려니 이미 문이 잠겨있다. 오후 3시면 출입을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근다고 한다. 다시 도로로 내려와 벚꽃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가 낮은 곳에는 노란 개나리가 화사하게 피어 있고 머리 위에는 새하얀 벚꽃, 그리고 산자락에는 이제 막 피어나는 연분홍 진달래가 고운 자태를 뽐낸다.

개나리와 벚꽃과 목련꽃
 개나리와 벚꽃과 목련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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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사귀자, 10kg만 빼자, 미소짓게 하는 쪽지판
 남자친구 사귀자, 10kg만 빼자, 미소짓게 하는 쪽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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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도로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나이든 노부부가 있는가 하면 소곤소곤 손잡고 걷는 젊은 연인들도 보이고, 우리처럼 친구들과 함께 걷는 사람들도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자 시가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지훈의 시비가 서있다.

외로히 흘러간
한송이 구름
이밤을 어디에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촛잎에 후두기는 저녁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조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 소리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츰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밤을 어디에서
쉬리라던고

-조지훈 님의 시, 파초우(芭蕉雨) 모두

"이 시 파초우를 벚꽃비로 바꿔 읽으면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구먼."

조지훈의 시를 읽은 일행이 주변에 흐드러진 벚꽃을 바라보며 시 제목을 바꿔서 읽으면 지금의 풍경과 어울릴 것 같다고 한다. 시와 주변 풍경이 어우러지도록 시구를 즉흥적으로 바꿔보고 싶은가 보다.

돌아가는 꽃길
 돌아가는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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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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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을 걸어 장충단 공원 윗길에 이르자 벚꽃 축제 행사장이 나타났다. 축제를 알리는 조형문을 지나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쪽지를 써서 붙여놓은 쪽지판이 나타났다. 쪽지판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쪽지들 중에는 "10kg만 빼자" "혜정아, 남자친구 꼭 사귀자"는 쪽지가 눈길을 끈다. 또 다른 쪽지에는 "우리의 고통이 8월로 끝나기를"이라는 쪽지도 보인다. 요즘 삶이 무척 힘든 사람인가 보았다.

순환도로는 어느새 북쪽길을 지나 남쪽 산자락을 감싸 돌고 있었다. 길가의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빛깔이 싹 달라졌다. 갑자기 초록색으로 변한 것이다. 이 지역은 소나무 군락지였다. 도로 아래 넓은 산자락이 온통 소나무 천지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바로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었네."
"정말 그러네, 화사한 벚꽃도 좋지만 난 이곳 소나무 숲이 더 좋은 걸. 저 푸른 소나무들 말이야. 얼마나 포근하고, 넉넉하고, 정다운 모습이야."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나무를 칭찬한다. 순간적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운 벚꽃보다는 늘 푸르고 왠지 포근한 느낌을 주는 소나무가 훨씬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네 정서였다.

남쪽 자락과 서쪽자락을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구간도 곳곳에 하얗게 피어난 벚꽃이 마치 산자락을 빙 둘러 하얀 띠를 감아 놓은 것 같은 풍경이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남서쪽 산자락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로 가는 길가에는 흐드러진 노란 개나리와 새하얀 벚꽃의 어울림이 일품이었다.

꽃숲
 꽃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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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정기가 깃든 남산에 일본국화인 벚꽃을 이렇게 많이 심어 놓은 것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구먼."

일행 한 사람이 순환도로를 따라 걸으며 찜찜했던 마음을 털어 놓는다.

"일본이 국화로 정했다고 벚꽃이 모두 일본 것은 아닌데 상관있겠어? 꽃은 그냥 꽃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그리고 왕벚꽃은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하던걸."

또 다른 일행의 말을 들으며 찜찜해 하던 일행도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남산의 남쪽 순환도로 입구에도 벚꽃이 흐드러진 풍경이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꽃이 흐드러진 순환도로를 따라 남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어느새 태양이 설핏 기울어져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꽃띠, #새하얗게, #남산, #이승철,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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