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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아름다운 산책길은 없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연기암을 거쳐 내려오는 화엄사 뒷길은 걷는 사람을 깊은 상념에 빠져들게 한다. 감히 "내가 이제껏 걸어본 길 중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답고 아늑한 길이다.

 

화엄사에 도착하자마자, 화엄사 구경은 뒷전으로 미룬 채 대웅보전 뒤로 난 호젓한 오솔길을 걸어서 구층암을 향해 간다. 길옆 대숲에서 일렁이는 소슬한 바람 소리에 세상 티끌을 날려버리면서, 길 아래로 흘러가는 시냇물에 마음 한 자락을 적시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길은 절대 인간에게 즐거움을 고분고분 허락하지 않는다. 길은 때때로 아름다운 幻(환)을 심어주지만 이내 거두어 버린다.

 

길은 금세 끝나고 눈앞엔 전혀 치장하지 않은 구층암이 그 수수한 자태를 드러낸다. 요사채로 다가가서 모과나무 기둥에 박힌 옹이를 슬쩍 만져본다. 예전보다 옹이가 훨씬 뾰족해진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강퍅해지는 노인의 성깔을 닮은 듯하다. 천불전 단청은 거의 색이 바랬다. 아마도 空의 완성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목이 마르다. 구층암 마당 가 석조로 가서 물 한 바가지를 퍼마신다. 오장육부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 만큼 시원한 물이다. 약수터 옆으론 고추·가지 등을 기르는 텃밭이 있고 텃밭 가에는 목조로 지은 작은 해우소가 있다. 텃밭 앞으로 드러나지 않게 희미한 길이 나 있다. 이 길이 봉천암·길상암으로 가는 길이다.

 

구층암과의 본격적인 상견례는 잠시 후로 미뤄둔 채 이 길을 따라가기로 한다. 길은 해장죽 숲 사이로 나그네를 데려간다. 해장죽들이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자신이 지닌 푸름을 나그네에게 나눠준다. 절로 흥에 겨워 진각국사 혜심의 시 한 구절을 읊는다.

 

山中行  無限淸風步步生(산중행  무한청풍보보생)

산속을 걷노라 한없이 맑은 바람 걸음마다 생겨나네

                     -진각국사 혜심의 시 '산중사위의(山中四威儀) 일부

 

그러나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듯 운치 있는 산책길은 이내 끝나고 만다. 뭐야, 벌써 다 와 버렸잖아. 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 같은 "쏴아~" 소리가 아쉬운 마음의 한가운데를 스쳐 지나간다.

 

길상암은 길이 끝나는 곳에 있었다.  비로자나불처럼 언덕을 좌복 삼아 결기부좌를 튼 채 저만치 아래를 굽어보며 손끝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면서. 이 비로자나불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것은 산책로 길섶에 있는 한 그루 나무였다. 2007년 10월에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매화나무다.  매화나무는 수령이 오래될수록 검은빛이 되는가. 나이 450년가량으로 추정되는 이 늙은 선 토종 매화나무 둥치는 거의 검은 색에 가깝다.

 

육종 매화보다 향기가 훨씬 강한 토종 매화

 

매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다. 토종이 아닌 나무는 접붙이기를 통해 번식을 시킨다. 그러나 이 매화나무는 매실의 과육을 먹은 사람이나 동물이 버린 씨앗이 싹이 터서 자란 속칭 들매화(野梅)로 알려졌다. 이 근처에 이런 들매가 4그루가 있었으나 3그루는 죽고 이 한 그루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들매화는 꽃과 열매가 사람이 기르는 매화보다 작으나 향기는 훨씬 강한 것이 특징이다.

 

늙은 매화나무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매화나무가 내게 "꽃 떨어진 지 한참 됐고 열매도 사라진 지 오래인 나 같은 늙은 것을 뭐하러 보러 오셨소?"라고 투정부리는 것 같다. "꽃도 열매도 다 떨어뜨린 채 오직 줄기 자체로만 서 있는 그대의 진면목을 보러 왔소"라고 했더니 내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빙긋 웃는다.  

 

돌계단을 차례차례 딛고서 길상암으로 올라간다. 길상암은 전각이라곤 딱 한 채뿐이다. 법당 겸 살림집을 겸하는 인법당이다.

 

길상암이란 암자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길상(吉祥)이란 말은 고대 북인도의 언어인 팔리어 sirī(실리(室利)라 음역)를 의역한 말로 선조(善兆)· 길조(吉兆)· ·호사(好事) 등의 뜻을 지닌 말이다.

 

한마디로 운수가 좋을 조짐이란 뜻이다. 어쩌면 노고단의 옛 이름인 길상봉에서 따온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화엄사 효대엔 대각국사 의천의 시를 새긴 시비가 있다. 그 시 가운데 "길상봉 위에는 가는 티끌조차 끊겼네(吉祥峰絶纖埃(길상봉절섬애))"라는 대목에서 따온 것일 수도 있다

 

 신라말이나 고려 초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층암 사역은 매우 넓어 여러 암자가 있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마 옛 길상암 터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떠나오기 전에 길상암에 사전 조사하려 했지만,  어디에서도 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 언제, 누가 세웠는지 오리무중이었다.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명곤 스님이란 분이 1992년 복원했다는 것을 겨우 알아냈을 뿐이다.

 

 매화 향기보다 더 진한 고졸한 정신의 향기

 

아름드리 동백나무와 높이 20m는 돼 보이는 자귀나무 등 푸른 수목에 둘러싸인 길상암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속을 벗어날 듯한 느낌이 들 만큼 단정한 암자였다. 마당엔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었으며 한 가운데엔 반송 한 그루가 법당을 경배하듯 읍하고 섰다. 길상암 같은 곳에 산다면 세상 티끌이야 저절로 닦아질 듯 싶었다.

 

차나무가 질서있게 심어진 마당 축대 아래엔 한 스님이 차나무 사이에 자라난 잡초를 베고 있었다. 합장으로 인사를 교환하고 난 다음 스님이 먼저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대전에서 왔습니다. 암자가 참 정갈하고 좋습니다."

"스님 혼자 지내세요?"

"번거로운 걸 싫어해서 혼자 삽니다."

"여기 오는 숲길이 참 운치 있더군요.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정작 이곳에 사는 스님들도 이 길이 지닌 아름다움을 까마득히 모르지요."

 

스님은 내가 젊은 시절에  만났던 불일암 시절의 법정 스님을 연상시켰다. 청빈한 암자 살림이나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닮은 듯했다. 추측컨대 이 스님은 직접 암자를 가꾸며 자급자족하며 사는 모양이다. "하루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백장청규가 이 한가한 암자에서 실천의 꽃을 피우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백장청규마저도 스님이 심고 가꾸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난 스님에게 2년 반만에 찾아온 화엄사에서 느꼈던 낯설음에 대해 얘기했다. 커다란 템플스테이용 청소년수련관이 들어선 것, 금강문에서 보제루에 이르는 널따란 길에 놓인 박석(薄石)과 보제루를오르는 돌계단이 새뜩하기 짝이 없는 새 대리석으로 한꺼번에 교체된 사실에 놀랐다는 걸 털어놓으면서 그 바람에 화엄사가 가진 고졸한 맛이 크게 손상된 게 아닌가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스님은 직접적인 동조 대신 "불교계에 환경 파괴 등 불교와 스님들이 저지르는 잘못들을 꾸짖을만한 어른이 없다"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얘기했다. 잠깐 얘기를 나눈 것뿐이었지만, 나는 이 스님이 아만심이 없는 스님이라는 걸 알았다.

 

"저어, 죄송하지만 스님의 법명을 여쭤봐도 될는지요?"

"명곤이라고 합니다."

 

명곤 스님이라면 바로 이 암자를 지었다는 바로 그 스님이 아닌가. 시간이 30~40분가량 흘러간 것 같다. 꼴 베든 낫을 든 채로 스님을 서 있게 만든 것이다. 스님의 일을 너무 오래 방해했던 것이다. 합장으로 인사를 한 뒤 암자를 떠난다. 그 자리에 서서 나그네를 배웅하던 스님이 소리치듯 말했다.

 

"내 오늘은 일이 바빠 차 한 잔 대접 못했으니 다음에 화엄사에 오시거든 꼭 같이 차 한잔합시다."

 

그 오묘한 말씀의 향기가 내 마음을 흔든다. 그렇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스님다운 스님이 내뿜는 고졸한 정신의 향기가 매화 향기보다 진하다. 450년 묵은 매화나무여! 안 그런가?

 

 

 

#지리산 # 화엄사#길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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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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