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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저 하루라도 밖에 가서 자며 놀고 싶어요."

 

한 달 전쯤, '거울왕자' 완채 군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뜬금없는 말에 살짝 놀랐지만, 이내 납득이 되었다. 그동안 침대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기만 하는 완채 군으로선 얼마나 그러고 싶었을까. 우리 '더아모의집' 식구들과 그동안 여러 군데를 놀러 다녔지만,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은 별로 해보지 못했다. 내가 넌지시 물었다.

 

"왜 '1박2일'을 자고 오고 싶어졌냐?"

 

그 대답이 재미있다.

 

"제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1박2일'이거든요. 저 그거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한 달 전부터 '1박2일'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제일 첫 관문이 장소였다. 완채와 함께 가려면 너무 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여럿이서 가려면 숙박 장소가 꽤나 넓어야 한다. 완채와 완채 엄마는 자신들만의 여행이 아니라 여럿이서 가는 걸 원했다. 그래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쁨도 두 배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어디로 갈까. 막막했다. 하지만, 순간 섬광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더아모의집' 홈페이지의 회원 중 여성 한 분을 떠올렸다. '오카리'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이다. 일단 인터넷 쪽지를 날렸다. "우리가 완채랑 가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라고. 대답이 왔다. "적극 대환영이다. 그 날이 기다려진다"라고. 대답치고는 금상첨화다. 문의한 사람 입장에서는 큰 짐을 들은 셈이다.

 

날짜는 4월 7일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장소는 충주 앙성면 '오카리님' 집에서. 저녁에 도착해서 '오카리님'이 해준 만찬을 먹고, 하룻밤 잔다. 그 다음 날 오전에 산책과 이야기를 하고난 후 점심을 먹는다. 점심 먹고 나서 근처 '탄산온천탕'에 온천을 하고, '더아모 15인승'으로 충주를 관광한다. 이것이 우리가 잡은 '1박2일' 촬영 스케줄이다.  

 

우리 모두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더아모의집' 식구들도, '오카리님'도.

 

드디어 그날이 왔다. 4월 7일. 날씨도 맑고 따스했다. '더아모의집' 식구라니까 한군데 모여 사나보다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에서 3명, 인천에서 1명, 안성 금광면에서 4명, 안성 장암리에서 4명, 안성 당촌리에서 2명 등이 이날 참가한 사람들의 지역이다. 7살 꼬맹이부터 칠순 노인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온라인으로 혹은 오프라인으로 서로 나누고 살던 '더아모의집' 식구들이다. 그러다보니 어디에서 만나자는 약속 장소를 정하고, '더아모 15인승'에 다 태우는 시간만 해도 꽤나 걸린다. 이번엔 약 1시간 20분 걸렸다.

 

모두들 목소리 톤이 한 키씩 높다. 얼굴은 그저 '싱글벙글'이다. 오늘의 주인공 완채 군은 입이 '실룩실룩'이다. 완채 군만의 특별한 '세리머니'다. 충주 앙성은 완채 군이 사는 안성 일죽에서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다. '오카리님'의 집이 거긴 줄 꿈에도 생각 못한 채 방문을 제의한 나로선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걸 안성맞춤이라고 하겠지.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거기에 도착했다. 집이 산 쪽에 위치했다. 거의 별장 수준이다. 주변에 비슷한 수준의 집들이 몇 채 보였다. '전원주택 촌' 분위기가 살짝 났다. '오카리님'을 생전 처음 보았다. 많이 기다리고 있은 듯 보였다. 어둠이 내려서 주변 경관을 볼 새도 없이 완채 군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완채 군을 한 번 움직이게 하려면 적어도 2~3명이 힘을 써야 한다. 완채 군이 누워 있는 이불을 통째로 들어야 한다.

 

실내로 들어갔다. 널찍하다. 거실에 벽난로도 있다. 조그만 꼬맹이들이 함성을 지른다. 당장 2층 방으로 올라가고 난리다. 여성들은 식사 준비를 한다. 남성들은 짐 정리를 한다. 무슨 군대의 훈련처럼 일사분란하다. 분명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저녁이 차려졌다. '오카리님'이 탄산온천수로 한 밥과 한우로 끓인 쇠고기 국, 그리고 묵은 김치. 맛있다. 조촐하면서도 깔끔한 이 맛. 모두가 맛있다고 난리다. 특히 밥맛이 진짜배기 밥맛이라며 모두가 좋아했다.

 

식사가 끝나고 어른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티타임'. 갓 재배된 녹차와 일명 '다방 커피'를 놓고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온라인상으로만 알아 오던 사람들은 서로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서로 웃기에 바쁘다. 혹은 전혀 인터넷을 하지 않는 완채 엄마와 '문명주님'도 이야기상에 동참하며 웃곤 했다. 이야기 하다 보니 '문명주님'과 '오카리님'이 같은 성씨이며, 부모님의 고향이 같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한 번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를 연발했다.

 

누가 제안했는지 '노래방 행'을 떠올렸다. 모두가 오케이였다. 정작 '오카리님'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자신이 자는 집은 충주시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노래방'으로 신나게 향했다. 완채 군과 '문명주님'과 '이장님'의 어머니 '아혀 할머니'만 남겨 둔 채로.

 

아이들은 아이들 방을, 어른들은 어른들 방을 잡았다. 세대 차이를 배려한 처사였다. 예정에 없던 촬영 스케줄이 잡혔지만, 그림은 훨씬 잘 나왔다. 누구보다 완채 엄마가 좋아했다. 몇 년 만에 오는 거라며. 사실 그동안 완채 군을 간호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루 종일 완채 군과 씨름했으니 오죽했으랴. 때론 신나게 흔들고, 때론 분위기 잡고. 아이들은 아이들 방에서 신나고, 어른들은 어른들 방대로 신나고.

 

마치고 앙성 시내에서 술과 안주를 샀다. 아이들 과자까지. 돈 많은 사람들도 2차가 있는데 가난한 우리라고 2차가 없을 수 없다며. '오카리님'이 마련해준 보금자리로 우리는 꽤나 괜찮은 '포획물'을 들고 귀환했다. 도착하자마자 술판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과자 판이 벌어졌다. 꼬맹이들도 잠이 오질 않는 모양이다.

 

주거니 받거니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차를 마시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면, 술이 들어가니 좀 더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어른들 중에서 제일 막내인 '빡빡이님'은 자신의 '성격, 여성 취향' 등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부딪히는 술잔 속에서 서로의 우정이 쌓여 갔다. 새벽 3시 가까이 되어서 술판이 끝났다. 의도하지 않은 예외적인 상황이었지만, 훨씬 우리들에게 좋은 시간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6시쯤에 누군가 나를 깨웠다. '이장님'이었다. 이 사람은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완채 군이 사는 마을에 산다. 워낙 부지런하고 외모도 풍채가 있어서 이번 모임에 내가 붙여 준 별명이 '이장님'이다. '이장님'이 '더아모 15인승'을 세차를 했단다. 그리고는 '빨리 집에 가자'면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웃음폭탄을 터뜨렸다. 세차한 꿍꿍이가 있었다며.

 

그 전 날 밤에 도착해서 주변경관이 들어오질 않았는데, 아침에 보니 주변 경관이 아주 좋았다. 남한강이 멀리 내다보이고, 뒷산엔 봄이 무르익어 있었다. 집은 흙집이었다. 완채 엄마는 '이런 집에 한 번 살아 봤으면'하고 연신 부러워했다. 그림 같은 풍경에 그림 같은 집으로 보였던 게다. 

 

아침식사를 끝내니 '오카리님'이 충주 시내에서 왔다. 손에는 '탄산 온천 입장권' 10장을 들고. 무료입장권이니 이용하라면서. 잠을 그저 재워주고, 식사를 제공한 것도 모자라서.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봄 햇살에 나와 이야기꽃을 또 피웠다. 아이들은 빨리 가자고 차안에 타서 보챘는데도.

 

'오카리님'의 집과 '탄산온천탕'은 걸어서 10분 거리. 바로 지척이다. 이것 하나만 봐도 얼마나 신기했던지. 오랜 만에 하는 온천에 모두들 얼굴이 하얗다 못해 미인이 되었다. 그것도 그냥 온천이 아니라 '탄산온천'을 했으니. '탄산온천'을 끝낸 여성들은 탱탱해진 피부를 자랑했다. 10년씩 젊어졌다며.

 

이어서'오카리님'의 추천으로 간 곳이 '충주 중앙탑 공원'. 공원에 다가가니 길 양쪽에 벚꽃이 만발하다. 아줌마들이 "와. 벚꽃 축제가 따로 없다"며 호들갑이다. 나는 한 수 더 떠서

 

"내가 어제 충주 시장에게 전화해서 준비해놓으라 했더니 잘해 놓았구만. 시청 직원들 동원해서 밤새 벚꽃 다느라 수고 했겠어."

 

라고 말하자 차안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게 다 완채가 유명해서 그려"라며 이어진 나의 유머에 모두들 배꼽을 잡고 난리였다.

 

중앙 탑 공원. 아무도 없었다. 우리만 거기에 도착했다. 공원에 있는 정자가 우리의 독차지였다. 햇빛도 가려주고, 점심 먹을 장소도 해결되고. 예상치 않은 호재가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완채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해온 돼지고기로 파티가 열렸다. 솥뚜껑 구이에 쌈까지. 아이 어른 모두 '남의 살'을 뜯어 먹느라 정신이 없다. 분위기에 취해 고기맛과 밥맛은 두 배다. 역시 먹을 것이 좋아야 행복한 법.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한마디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았으면."

 

밥을 먹고 아이들과 일부 어른들이 놀이를 한다. 아무도 없는 공원 운동장에서 전세를 낸 것처럼. 처음엔 '얼음 땡'. 나중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최후엔 '축구'까지. 신나게 노는 사람들도 즐겁고, 보고 있는 어른들도 즐겁고.

 

신나게 노는 것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완채 엄마가 말을 했다.

 

"이렇게 나왔는데, 내가 한 턱 쏠게요. 저녁이나 드시고 가세요."

 

이렇게 해서 찾은 곳이 자장면 집.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자장면을 먹으면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했다. 며칠을 준다고 해서 회포가 풀리겠는가.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완채 엄마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녀가 완채 군을 비롯해 자신의 가정을 돌보아온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우리는 '1박2일' 프로그램을 훌륭히 치렀다. 그동안 내가 카메라로 촬영을 많이 했지만, 사실 진짜 촬영자는 완채 군이었다. 그는 우리의 모든 모습을 그의 거울로 찍고 있었다. 마치 자녀들이 사이좋게 노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관련기사 : 거울왕자와 안성시민이 만든 '작은 기적'

덧붙이는 글 | 더아모의집은 모든 이들, 특히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합니다. 


태그:#거울왕자, #더아모의집,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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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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