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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 앵커가 진정한 저널리스트인 이유

 

예전에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의 캐릭터를 묘사한 적이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신경민 앵커는 양보없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이다. 나는 신경민 앵커를 찬양하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그런 스타일에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저널리즘의 관점으로 보면 신경민 앵커는 진정한 저널리스트이자 진정한 데스크다. 왜냐하면 그가 견지하는 합리적 보수주의가 저널리즘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뉴스란 본질적으로 '보수성'을 타고 났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사간원(司諫院)이라고 해서 국가 기관에 속해 있었다. "조선 시대에, 삼사 가운데 임금에게 간(諫)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뜻한다. 태생적으로 언론이란 체제 순응적이며, 비판적인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제대로 정치가 굴러가는 국가에서는 언관이 임금에게 대놓고 비판을 할 수 있었다. 체제 순응과 비판을 동시에 갖춘 기구라고 하더라도 모순될 것은 전혀 없다.

 

나는 '체제 순응'과 '체제 비판'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비판'이라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판적 지지'를 뜻한다. 언관이 국가에 대해서 하는 비판은 철저히 국가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다. 단지 짧은 순간은 따끔하지만 오랫동안 그 약효를 누리는 것과 같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명현 현상이라고 한다. "명현(瞑眩) 하다"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하다"는 뜻이다. 한약을 먹었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한약이란 기본적으로 몸을 보위하는 것이다. 언론이 바로 한약과 같다. 만약 언론이 비판적 지지를 넘어 체제 비판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한약이 아니라 '독약'(毒藥)이 될 것이다.

 

서양의 사고방식도 다르지 않다. 노엄 촘스키는 <여론조작>(에코리브르)이라는 책에서 언론의 한계를 분명히 규정했다. 즉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은 대중에게 메시지와 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며, 가치관, 신념, 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이 언론의 주된 책무다. 언론은 주제 선별, 관심 분산, 쟁점 설정, 정보 여과, 강조와 논조를 통해, 그리고 수용할 만한 전제의 범위 안에 논쟁을 제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한다.

 

이 부분에서 시청자 혹은 국민들은 많이 헷갈려 한다. 신경민 앵커가 제야의 종소리나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이나 패착에 대해서 쓴소리를 했다고 해서 그를 전위적인 사회변혁가나 철학자, 진보적 지식인 등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오해하는 부분이다. 이런 오해가 '신경민 하차 문제'를 정파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MBC 기자회에서 들고 일어선 이유는 이 문제가 정파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신경민 앵커는 '저널리스트'에 제한돼 있으며 본인 역시 여기에 충실하다. "신경민 앵커는 진정한 저널리스트이다"라고 할 때의 어감은 긍정과 부정이 섞여 있는 질척한 성격이 된다.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서 헛발질하는 결론으로 달려갈 뿐이다.

 

 

신경민 앵커 '하차일'은 한국 저널리즘의 '사망일'

 

이 때문에 신경민 앵커를 하차시키는 문제는 절대로 정파적인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 본연의 문제다. 이것은 MBC가 저널리즘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MBC는 저널리즘에 있어서는 자긍심을 지켜왔기 때문에 사실상 저널리즘의 죽음은 MBC의 죽음과 동의어로 이해될 수 있다.

 

나는 2009년 이명박 정부 하의 MBC와 MBC뉴스데스크, 그리고 신경민 앵커가 매카시즘이 만연한 1935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의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인 CBS에서 뉴스맨으로 명성을 날렸던 실존인물 에드워드 R. 머로와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가 제작했던 인기 뉴스 다큐멘터리인 "SEE IT NOW" 스튜디오와 비교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머로는 지적인 저널리스트로서 매카시즘의 한가운데에서 매카시 상원의원과 난상토론을 벌인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남긴 전설적인 말을 옮겨본다.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매카시즘에는 반대한다"

 

이것을 신경민 앵커의 상황에 맞게 고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는 진보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는 반대한다"

 

이것이 왜 이명박 정부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명박 정부의 부분적인 실정에 대해서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비판을 가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비상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시업무'를 하고 있는 거다. 평시업무에 대해서 지금처럼 사퇴압력을 가해야 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오합지졸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고 공멸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은 대학 신입생이나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말인데, 대학 나온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암담하다.

 

신경민 앵커의 하차에 대해서 MBC 기자회가 강수를 두는 것은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가 만약 하차한다면 현 정권은 뿌리로부터 와해되는 단초를 맞게 될 것이다. 아직 현 정권이 저널리즘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MBC든 KBS든 YTN이든 저널리즘의 '저'자라도 자신과 관련돼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정파의 문제로 이해하거나 이 문제를 막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저널리즘도 팔자를 다한 셈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신경민,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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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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