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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교 쉬는 날인데... 몰랐나 보구나. 오늘 선생님도 없고 친구들도 없어."

 

초등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는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다. 급기야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그제야 눈치 챌 수 있었다. 집에 가도 아무도 없는 것이다.

 

"엄마한테 전화 걸어 줄까? 엄마 전화번호가 뭐니?"

 

엄마에게 전화 걸어보니 아니다 다를까 재량 휴업일인 줄 모르고 학교에 보낸 것이다. 문제는 집에 가도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 아이 부모는 맞벌이 부부였다. '대략난감' 했다. 어찌 해야 할까! 마침 구세주가 나타났다. 투표 참관인을 하던 선생님이다.

 

선생님에게 전화를 넘겼다. 선생님은 한참을 통화 한 후 전화기를 건네주고 아이 손을 잡고 총총히 투표장으로 돌아간다.

 

4월 8일, 첫 주민직선 경기도 교육감 선거 날 맞닥뜨린 씁쓸한 풍경이다. 어째서 학교만 재량휴업일로 하고 다른 직장은 모두 출근해야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교사들만이라도 투표장에 가라는 큰 배려(?) 인가! 어쨌든 덕분에 맞벌이 부부들만 비상이 걸렸을 것이 뻔하다.

 

맞벌이 부부들 재량휴업에 분통

 

역대 최저 투표율(12.3%)이다. 교육감 선거 가운데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대전 교육감 선거 투표율인 15.3% 보다도 더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당연한 결과다.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만한 환경이 전혀 조성되지 못했으니 투표율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평일에 치러지는 선거라 투표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상돼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선관위가 내놓은 투표율 높이기 방안은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한마디로 공무원이나 교사들만 투표에 참여시킨다는 방안이었다.

 

교육감 선거일 하루 전인 7일 행정안전부는 경기지역 거주 공무원들의 출퇴근 시간 조정 지침을 각급 기관에 내려 보냈다. 이에 따라 경기지역 거주 공무원들은 투표 참여를 위해 출·퇴근시간을 1시간 늦추거나 당겨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는 경기도교육청에 "학부모들의 투표참여를 권장하기 위하여 선거일 재량휴업"을 협조 요청했고, 이에 따라 각 학교에선 학교장 재량으로 휴업이 실시됐다. 경기도선관위와 도교육청에 따르면 8일 재량휴업을 실시한 학교는 도내 1천936개 초·중·고교 가운데 97.5%인 1천888개에 달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재량휴업'이다. 학교가 쉰다고 학부모들이 투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도대체 누가 했는지 궁금하기까지 한 대목이다. 정부와 선관위가 진정 투표율을 올리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임시 휴무일로 지정하거나 최소한 노동부를 통해 각 사업장에 출퇴근 시간 조정을 요청했어야 했다.

 

 

초.중.고 '재량휴업' 에 대한 학부모들 불만은 경기도 교육청 홈페이지에 그대로 표출됐다.

 

장OO 씨는 "경기도의 모든 사업장은 휴업하라고 공표라도 했나요" 라고 물은 뒤, "아이들은 무조건 쉬게 하면서 직장 다니는 부모는 일하라면 언제 어떻게 가서 선거를 하라는 건지 대책 없는 선거일이라는 게 참 밉네요, 학교 휴업하고 선생님들만 가서 선거하라는 건지"라고 질타했다.

 

권OO 씨도 "공휴일 되는 바람에 우리아이 점심 굶게 생겼네요"라며 "멋대로 재량 휴업이나 하지 말고 제발 누가 되실지 학교에서나 공부 제대로 시켜주시길"이라고 적었다.

 

또, 경기도선관위 홈페이지에도 '본인'이란 시민이 "교육감 선거날 휴일로 하지 않으면 글쎄 누가 투표할까"라면서 "일하랴 학교에 있으랴 다들 바쁠텐데, 나도 투표 하고 싶어도 못하겠네"라는 글을 남겼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끝났지만 '투표율저조' 라는 숙제가 남아있다. 주민 직선으로 교육감을 뽑는 선거제도 자체를 가지고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미 주민직선제를 재검토하자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7일,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은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골자로 한 법률 개정안을 이미 발의했다.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12.3%는 누가 보아도 정상적인 투표율이 아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최선을 다했느냐는 것이다. 최소한 이 점을 먼저 철저히 짚어본 다음 직선제 폐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정부와 선관위가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투표율 높이는데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보인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태그:#경기도교육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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