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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진보싱크탱크인 코리아연구원의 현안진단 140호를 코리아연구원과 동시에 게재합니다. 이 글의 원문 및 관련 자료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무수단. '무쇠를 뽑아내는 마을의 끝'이라는 뜻인, 함경북도의 작은 해안마을이다. 쇠를 생산했던 이 마을에는 북한의 로켓발사기지가 들어서 있다. 북한에서는 '동해위성발사장'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1998년 백두산 1호 로켓에 실린 광명성 1호라는 위성이 발사되었고, 2006년에는 장거리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지난 4월 5일에는 은하 2호라는 로켓에 실린 광명성 2호가 발사되었다. 이 마을에서 위성도 발사되고 미사일도 발사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위성과 미사일은 서로 공유되는 과정이 많다. 이 때문에 위성과 미사일이 뒤엉켜 지금 상황이 복잡하게 보이고 있다. 이 작은 마을에 지난 두어 달 동안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주시하여야 할 것 같다.

 

1. 인공위성 발사, 북한의 성과는?

 

4월 5일 무수단리에서 솟아오른 발사체는 북한의 주장대로 인공위성으로 보인다. 1998년 8월 31일에 발사한 물체도 대포동 1호 미사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인공위성이다. 북한은 이를 광명성 1호라고 부른다. 발사 2주일이 지나서, 당시 미 국무부의 제임스 루빈 대변인은 "북한이 작은 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리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말하였다. (1998. 9. 14)

 

이번에 발사한 광명성 2호가 성공한 인공위성이라면 지구궤도를 돌면서 지상 관제소와 교신하여야 하는데, 북한의 주장과 달리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광명성2호는 지구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이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하지만 미사일 사거리는 길어졌다. 북한은 지구의 저궤도에 '인공위성'을 진입시키는 시뮬레이션을 2월 중순부터 3월 하순까지 반복적으로 실시하였다고 한다. 북한이 국제해사기구(IMO)에 2단 로켓의 낙하지점을 제시한 것도 시뮬레이션 결과라는 것이다. 3월 11일 북한은 국제해사기구에 4월 4일부터 8일까지 중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위성을 발사하고, 1단 로켓은 650Km 동해상, 2단 3600Km 태평양 해상으로 떨어진다고 통보하였다.

 

북한은 예고대로 4월 5일 위성을 발사하였고, 로켓의 2단계 추진체도 발사장으로부터 3200㎞ 지점에 떨어져 북한이 예고한 지점에 근접하였다. 1998년 8월 31일 쏘아올린 인공위성 광명성1호의 2단계 추진체 낙하지점은 발사장으로부터 1620km 떨어진 곳이다.

 

북한은 11년 만에 로켓 사거리를 두 배 가까이 연장하였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근접하게 추진체가 낙하할 정도로 로켓 성능도 정교해졌다. 물론 추진체 낙하지점만으로 탄두의 사거리를 측정할 수는 없다. 탄두의 사거리는 로켓 속도나 연료 연소시점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거리가 연장된 것은 확실하다.

 

북한은 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리지 못했으며, 사거리를 연장했지만 사거리 6500km 이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할 수 있는지와 로켓에 핵탄두 장착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이 로켓에 장착할 수 있게 이미 핵탄두를 소형화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논란이 많다. 그러나 북한이 소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할 것이다.

 

이번 인공위성 발사에서 알 수 있듯이 로켓발사는 습도나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발사 시점이 유동적이다. 또 발사대 설치에서 발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며, 그 시간 동안 미국에 노출되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북한이 ICBM을 무기화하는 데는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강경론자들은 이 기회에 북한 위협론을 부각시켜 MD구축을 비롯한 군비확대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 미사일 사거리 연장으로 확보한 잠재적 무기화 능력은 협상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데, 강경세력들은 이를 고려하지는 않는다. 북한의 인공위성발사는 미국, 일본의 강경론자들과 북한이 적대적 공존관계를 형성하는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적대적 공존관계를 통해 세력을 확보한 강경론자들이 나중에 북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해세력이 될 것이다.

 

Ⅱ. 미국의 대응

 

미국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를 사전에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보기관은 북한이 지구의 저궤도에 '인공위성'을 진입시키는 시뮬레이션 내용을 이미 2월경에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인공위성인지 미사일인지 논란이 한창이던 3월 31일에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위성사진을 분석해서 인공위성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발사체 성격 논란에 쐐기를 박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이미 미국 정보기관은 위성이 아닌 정찰기 촬영 사진을 판독하여 인공위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지구궤도를 돌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수직방향에서 촬영하는 위성과 달리 정찰기는 수시로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다. 이 무렵 북한은 미국 정찰기를 격추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사전에 인공위성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였기 때문에 상황이 제어 불가능하게 흐르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왔다. 오바마 정부는 상황을 관리하는 발언을 때맞춰 하였다.

 

-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 국장,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은 우주발사체다." (3.10)

-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6자회담이 효과적이다." (3.11)

- 프랭크 자누지 상원 전문위원, '북한행동에 과잉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 (3.23)

-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현 시점에서 요격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3.29)

 

오바마 인수위의 한반도 팀장이었던 프랭크 자누지 미 상원 전문위원은 헤리티지 재단에서 북한에 강경대응을 하면 핵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길어지므로 과잉반응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헤리티지재단은 북한 미사일이 33분 안에 미국 본토에 도달하므로 MD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강성 정책의 본산이었다. 자누지 전문위원은 과잉반응의 사례로 발사 전 선제공격, 발사 후 요격, 6자회담 중단 등을 꼽았다.

 

이와 같이 오바마 정부가 상황을 관리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우려 표명과 냉각기를 거쳐서 대화국면으로 부드러운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냉각기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데서 2명의 미국인 여기자 문제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점을 제외한다면 부드러운 전환의 주역은 보즈워스 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보즈워스 대표는 이미 3월말에 북한 외무성 고위인사들과 만나기를 희망하고, 김정일 위원장 면담 의사를 밝히는 등 냉각기 이후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나 보즈워스 대표의 발언에 비춰보면 미국은 북미 양자회담을 중심으로 해서 6자회담을 병행하는 구도로 대화의 틀이 마련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냉각기에 미국의 대응은 인공위성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 인공위성은 기술을 전환시키면 미사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성격이 정세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북한 발사체의 인공위성 측면에 대해서는 온건대응, 미사일 측면에는 강경대응할 것이다.

 

강경대응을 하더라도 북한 로켓기술의 미사일 전환가능성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르게 하되, 6자회담을 추진하면서 북미 양자 대화를 모색하겠다는 태도다. 또 북미 양자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북한에 대한 불신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대화와 불신의 이중상태'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Ⅲ. 북한의 의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은 여러 가지 목적 때문이다. 첫째, 대내용이다. 두 차례의 인공위성 발사 직후 북한은 대내에 한결같이 '강성대국 건설과 과학연구'가 목적이라고 선전하였다.

 

1994년 9월 4일 위성발사를 발표하면서 조선중앙통신은 '우주를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과학연구사업'과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 고무'를 강조하였다. 이번에도 발사 직후에 '강성대국의 대문 열어제끼기'와 '우주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그 목적이라고 하였다. (<조선중앙통신> 2009. 4. 5)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 직전인 1998년 8월 22일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선포하였다. 올해 신년사설에서도 '2012년에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문을 연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번 인공위성 발사 직후부터 북한의 방송들은 '우리네 위성이 하늘에 떴소'라는 노래를 반복적으로 주민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노동신문>은 인공위성 발사가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 의의 깊은 사변'(<노동신문> 2009. 4. 7)이라고 보도하였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목표와 결부시켜 주민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둘째, 협상용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인공위성과 미사일의 양면적 관계를 활용하여 정치군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에 사용되는 로켓기술과 미사일 발사 기술이 동일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총연합 기관지 <조선신보>는 4월 4일자에서 '로켓기술의 군사이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인공위성 기술이 언제든지 군사수단으로 전용'될 수 있다고 미국을 겨냥하는 보도를 하였다. 1998년 인공위성 광명성 1호 발사 이후에도 "우리가 위성 보유국으로 되는 것은 너무도 당당한 자주권의 행사이며 이 능력이 군사적 목적에 돌려지는가 않는가는 전적으로 적대세력들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북한 외교부 대변인 성명, 1998. 9. 4)고 했다.

 

위성발사라도 유엔결의 위반이며 제재하겠다는 것에 대해 북한은 "식칼도 총창과 같은 점이 있기 때문에 군축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소리"라며 반발하였다. 위성발사에 대해 유엔결의를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지만, 북한도 과거에 식칼 만드는 기술을 경우에 따라서 총창 만드는 기술로 전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1998년과 2009년 두 차례 모두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로켓기술을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발언하였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인공위성 기술의 군사적 전용을 막기 위해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 고위급 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북한의 이와 같은 주장들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탄도미사일발사를 위장하는 은폐수단'이며, '궁극적으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장착 미사일 개발용'이라는 의혹을 품게 되었다.

 

이런 의혹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협상 수단을 키우지만, 동시에 북한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키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 점이 인공위성을 군사용 카드로 활용하려는 북한에 딜레마가 될 것이다. 협상은 개시되겠지만 동시에 불신도 커져서 그것이 협상의 장애로 작용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판촉용이다. 그동안 북한을 대변해온 <조선신보>는 '위성발사의 상업화와 로켓기술의 수출'을 인공위성 실험의 주요한 목적으로 꼽았다(2009. 4. 4). 북한의 로켓 수출은 군사행위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다. 북한은 10년 전까지 연간 6억 달러 가까이 미사일 수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는 당연히 이란, 이집트, 예멘, 시리아, 파키스탄, 리비아와 같은 북한의 잠재적 고객들의 관심사가 되었을 것이다. 9·11 이후 리비아와 파키스탄이 미사일 거래를 중단하였다고 하지만 합법적인 로켓기술의 이전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북한의 '로켓기술 수출' 역시 군사용 기술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9·11 이후 대량파괴무기 확산을 저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사안이 된다. 북한으로서는 이 점도 북미협상의 카드가 된다. 실제로 1999년에 있었던 북미 미사일 협상에서는 북한 미사일 동결의 대가로 3년간 매년 10억 달러의 보상이 논의되기도 했다.

 

넷째, 축포용이다. 북한이 1998년 8월 31일을 택해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9.5)와 정권수립 50주년(9.9)을 축하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외교부 대변인 성명(9.4)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를 계기로 진행된 이번 위성발사'라고 공식 언급하였다.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회의에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북한은 1980년대에 로켓을 개발했고 1990년대에는 위성발사를 위한 준비를 해오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에 맞춰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전례에 비춰볼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 3기를 뜻하는 최고인민회의 12기가 출범하는 4월 9일을 앞두고 인공위성을 발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시기 선택에서 북한의 내부사정이 우선한 것이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4월 5일 프라하 핵감축 연설에 맞춘 것은 아니다.

 

아울러 이번에 위성발사를 강행한 것은 제재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할 경우 당연히 유엔제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유엔제재나 국제사회의 비난은 북한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

 

1998년에는 유엔총회 의장의 언론보도문 정도가 나왔는데 유감표명 수준이었다. 2006년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를 마련한 유엔결의안 1718호도 구속력이 없어서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북한으로서는 1998년의 갑작스런 발사와는 달리 이번의 경우에는 사전예고를 비롯하여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국제적인 절차를 밟아왔다. 북한은 유엔제재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하였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창수 기자는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방문연구원입니다.


태그:#북한로켓발사, #인공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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