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을 앓고 있는 시카고 대학교수이며 천재 수학자인 아버지 로버트(안소니 홉킨스)의 죽음을 맞은 딸 캐서린(기네스 팰트로)도 언니 클레어(호프 데이비스)나 경찰로부터 정신장애인으로 의심을 받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제자 할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재적인 수학능력을 확인하고 새롭게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제자 할(제이크 질렌홀)은 캐서린의 천재성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게 되고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영화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정신장애인의 현실을 뒤돌아보려고 한다.

 

영화 <프루프>는 는 퓰리처 상을 수상하고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던 데이비드 아우번의 원작을 기네스 팰트로, 안소니 홉킨스라는 대형배우들을 등장시켜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 개봉 당시 8개의 개봉관에서 상영되어 평균 수입이 2만4천불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 향후 상영관 수를 517개까지 늘리면서 대성공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영화평론가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연기하고 이들을 도움으로써 배우들의 연기력이 묻혀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줄거리 자체가 간단함에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이동이 조금은 영화를 산만하게 만든다. 특히, 수학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노트를 작성한 사람을 밝히기 위한 전개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정신장애인 아버지와 정신장애가 의심되는 딸을 바라보는 가족과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한국사회의 정신장애인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는 캐서린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짐과도 같은 존재다. 캐서린은 아버지의 제자 할이 아버지의 수학 노트를 훔치려 했다는 것을 이유로 경찰에 신고까지 하게 되지만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할은 이미 떠난 상황이고 경찰은 황당해 한다. 클레어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을 팔아 자신과 함께 뉴욕으로 가자고 권유한다. 진짜 이유는 아버지와 같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고 의심을 하고 있는 캐서린의 장애와 관련된 치료 때문이다. 캐서린은 하룻밤까지 보낸 할에게 자신이 증명한 것이라며 노트를 보여주지만, 할은 아버지가 연구하던 것이라며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다.

 

아버지는 정신장애에 시달리지만 캐서린의 돌봄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생을 마갈할 수 있었다. 딸 캐서린의 헌신으로 정신장애인 아버지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인권적인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언니는 만약 아버지가 집이 아닌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다면 질병이 더 호전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캐서린을 뉴욕의 병원에 입원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과 달리 조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은 사법모델이며 입원신청서와 의사의 정신과적 진단서 등이 법원에 접수되면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입퇴원이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심사과정을 통해서 입원을 신중히 판단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렇지 않다. 현재까지 계속해서 정신장애인의 입원인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본인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아직까지도 가족 중에 정신장애인이 있으면 숨기려고 한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입원을 암묵적으로 합의해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93.1%가 보호자에 의해 입원이 된다고 한다. 정신장애와 함께 학대나 폭력, 알콜문제가 있는 경우 보호자에 의한 입원은 피해가족에게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가족해체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유는 지역사회 안에서 제대로된 사례관리 할 수 있는 체계나 예방과 치료에 대한 지원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장애인이 자발적으로 입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권의 사각지대다. 인권위원회를 5분의 1로 축소한다면 정신장애인의 인권이 더욱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신장애인이 입원에 대해 이의신청과 구제절차가 있음에도 이들은 일단 병원에서 나오는 것조차도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좀 더 정신장애인이 자발적으로 입원할 수 있거나 사례관리 제도를 보완해서 인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책임회피도 문제가 된다. 국가는 정신장애인 문제를 민간에게 위탁함으로써 통제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박탈한다. 그리곤 정신의료기관과 정신과의사의 확대를 통해 의사에게 상당히 많은 권력을 나누어 준다. 국가는 공공체계 안에 정신보건센터를 두는 법적인 노력도 하지만 위탁을 통해 민간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권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며, 사법적 판단을 도입하거나 다전문직이나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된 행정적 심판위원회를 구성하는 방법에 찬성한다. 차라리 민간이 아닌 정부에서 정신의료기관을 직접 운영해야 한다. 민간과 파트너쉽을 이루고 지역사회 안에서 정신장애인이 어떤 불이익도 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비자발적 입원으로 인권이 추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루빨리 한국사회의 정신장애인의 현실을 제대로 증명해서 이들의 인권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09.04.06 16:39 ⓒ 2009 OhmyNews
장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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