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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사들이 대량 해고 되면… 징계의 부당함 알리고, 싸워야죠. 다른 길이 없잖아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핵심' 관계자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간간이 한숨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일제고사(교과학습 진단평가)를 두고 교육 당국과 한판 대결을 벌인 뒤라서 힘이 빠진 것일까. 사실 그보다는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전교조는 3월 31일 치러진 일제고사를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혀왔다. 하지만 조직적인 시험 거부나 일제고사 선택권을 보장한 교사 명단 공개까지는 아니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공식적으로 시험 거부와 교사 명단 공개에 대해 논의는 했었지만, 최종적으로 그런 전술은 유보가 됐었다"며 "그 때문에 전국 차원의 교사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조, 중앙-지부 선택 달라... "대량해고 되면 싸우긴 할텐데..."

 

하지만 전교조 서울지부와 강원지부는 다른 선택을 했다. 두 지부는 일제고사 전날인 30일 일제고사 불복종을 선언한 145명의 교사 명단(서울 122명, 강원 23명)을 발표했다. 전교조 중앙보다 더 높은 수위의 투쟁을 벌인 셈이다.

 

황진우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은 "전교조 전체 차원의 명단 공개는 유보됐지만, 서울지부에서는 많은 논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었다"며 "별도의 특별한 전술이 아니라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불복종 사업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전교조 서울시부는 "징계를 각오한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건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전교조 중앙의 고민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교조의 중앙 간부는 "이명박 정부는 이제 겨우 1년 지났고, 일제고사는 앞으로도 계속 열릴 텐데 그 때마다 대량해고가 뻔한 전술로 맞서는 게 과연 올바른 투쟁 방향인지 의문"이라며 명단을 공개한 서울과 강원지부의 선택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그는 "전교조 각 지부의 자율과 선택은 당연히 존중하지만, 대량 해고가 벌어지면 고스란히 전교조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전교조는 일제고사는 당연히 반대하지만, 현 정부의 특성상 장기전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 대량 해고와 같은 상황은 여러 가지로 조직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작년 일제고사 선택권 보장으로 파면·해임됐던 서울지역 교사 7인의 교단 복귀는 현재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이들은 지난 3월 열린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재심에서도 파면 교사가 해임으로 조정됐을 뿐 별다른 결정은 없었다. 이제 법원의 최종 결정만을 앞두고 있다.

 

전교조 내부는 물론이고 학교 현장의 여러 교사들은 "현 이명박 정부 내에서는 사실상 교단 복귀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량 해고냐 형평상 위반이냐... 칼자루 쥔 교육청의 딜레마

 

어쨌든 이제 공은 교육당국으로 넘어갔다. 최악의 경우 작년 연말의 교사 해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교사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전교조 서울지부가 공개한 122명 중 이번 일제고사 대상인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는 총 42명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들에 대한 전방위 조사에 착수했다. "일제고사 거부 가담 정도에 따라 징계수위를 결정한다"는 게 시교육청의 입장이다. 시교육청은 일제고사 이전부터 '직무 수행시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형평성(?)을 고려해서라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의 징계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시교육청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자신들이 강조한 원칙대로 징계를 강행하면 교사 대량 해고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원칙이 아닌 '정치적 선택'으로 징계 수위를 낮추면 스스로 형평성이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꼴이 된다. 교육청으로서도 이래저래 부담일 수밖에 없다.

 

올해 일제고사로는 오는 10월 초6·중3·고1을 상대로 치러지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남아있다. 또 12월에는 중1~2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각 시·도 교육청의 학력평가가 예정돼 있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시간 동안 교사 징계와 복직을 둘러싼 지리한 싸움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전교조는 ▲ 체험학습 불허와 무단결석 처리에 대한 행정 소송과 국가인권위 제소 ▲ 일제고사 금지와 학생 학부모 선택권 보장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위한 입법 청원 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교사 대량 징계가 내려지면 교육당국과 전교조 등 시민사회 진영은 곧바로 '전쟁모드'로 돌입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육 현장은 치열한 전쟁터가 됐다.


태그:#일제고사, #전교조,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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