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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조의 여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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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김치에는 뭐니뭐니 해도 자연산 굴이 들어가야 최고죠. 제가 친척에게 부탁해서 자연산 굴 좀 준비해 왔어요."
"사모님, 이거 별건 아닌데 사모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사모님, 어쩜 이렇게 품위 있고 아름다우세요."
- 드라마 <내조의 여왕> 중

MBC 새 월화드라마 <내조의 여왕>을 보려면, 미리 날이 잘 선 대패를 준비해야 한다. 드라마 내내 상사 부인에게 잘 보이려 온갖 아부와 아양을 떨어대는 부하직원 아내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전신에 닭살이 돋아 대패질을 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7년 동안 백수였던 남편 온달수(오지호 분)를 유명 식품회사인 퀸즈푸드에 취직시키고 성공시키기 위해서 체면은 물론 최소한의 자존심조차도 버리는 열혈 내조 아내 천지애(김남주 분). 백수의 아내로 살아 온 그녀에게 회사 실세 김 이사(김창완 분)의 아내가 만들었다는 사원 부인회 '평강회' 입성은 꿈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는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거지라고 세상 사람들의 놀림을 받았던 온달을 남편으로 맞아 헌신적인 내조로 마침내 고구려 최고의 장군을 만들었다는 평강공주의 이름을 빌려온 '평강회'. 하지만 그녀들의 내조는 평강공주의 그것과는 달리 어쩐지 뒤가 구리고 유치하며 얍삽하기 짝이 없으니, 평강공주가 들었다면 무덤을 열고 뛰쳐나올 일이다. 

<내조의 여왕> 속 '평강회', 예사롭지 않아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요즘처럼 인사고과의 절차와 과정이 투명해진(?) 시대에도 과연 '평강회'와 같은 아내들의 치맛바람 내조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런 의문에 '결코 그렇지 않다'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뭔가 뒤가 구리고 얍삽해 보이는 그녀들의 노력이 결코 '헛바람'에 그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라는 옛말이 너무나 잘 적용되는 아부의 세계. 이 부분에서 우리는 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커다란 갭을 느끼며 잠시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명절에 꼭 상사들 집에는 꼭 다녀와요. 선물만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서 부부가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죠."

"김장하는 날 도와주러가는 건 하지 않았지만 고향에서 보낸 특산품 김치나 고추장, 된장, 장아찌 같은 걸 보낸 적은 있어요. 요즘엔 사먹는 것들을 믿지 못하니까 고향에서 직접 만들어 보냈다면 다들 좋아하거든요."

"남편 상사 경조사는 꼭 챙겨야 해요. 솔직히 일가친척 경조사엔 손님처럼 가서 봉투만 내고 오지만 남편 상사경조사에서는 그럴 수가 없지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윗분들에게 얼굴을 보일 수 있는 자리잖아요."

"남편·아이 뒷바라지에 몸이 열개라도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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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서울 중구 신세계 본점 문화홀에서 열린 MBC 월화드라마 '내조의여왕'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남주 (천지애 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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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높아지면서 남성 중심적 사회 속에서 즐겨(?)사용되어 왔으며 은근히 강요되어 왔던 '내조'라는 말의 의미도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공담 속에는 '내조'라는 단어가 필수로 들어간다.

대통령을 만든 아내, 세계적인 CEO를 만든 아내, 국회의원을 만든 아내, 사회운동가를 만든 아내, 석학을 만든 아내, 법률가를 만든 아내, 예술가를 만든 아내….

남편의 성공 뒤에 숨은 아내 노력을 높이 사고 이를 미담이나 교훈으로 전해 온 사회이기에 여전히 아줌마들은 내조라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남편과 아이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과 동일시하는 전업주부의 경우 남편 뒷바라지와 자녀들의 육아는 중요도나 영향력에 있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중요한 과업이다.

"어제는 남편 회사 단합대회라 음식 만들고, 나르고, 뒤처리하고 난리를 쳤는데 다음주는 아들 학교 소풍이라네. 선생님 도시락 준비해야지 어머니회 엄마들 간식 챙겨야지 애들 따라다니며 뒷바라지 해야지 나 정말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야."

"남편 회사 윗분 부인들한테 잘 보여야지. 뭐니뭐니해도 베갯머리 송사가 최고라잖아. 공연히 눈 밖에 나서 좋을 건 뭐있어? 난 애들 학교 어머니회 임원 엄마들에게도 똑같이 해. 임원 엄마들에게 찍히면 좋을 게 없거든. 엄마가 왕따되면 애들도 왕따되기 십상이고…."

남편·자식 눈치 보기 바쁜 보통 아줌마는 '피곤'

건강식과 영양제, 보약을 챙겨 먹이고, 어디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도록 외모와 의상을 갖추어 주고, 시간이 없어서 챙기지 못하는 최신 시사 상식이나 중요 정보들을 스크랩했다가 전해주는 것은 물론 상사나 선생님, 또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명절, 기념일, 애경사를 적극 챙기고 평소 친분 유지를 위해 다양한 모임을 마련하며 스스로도 그런 남편과 아이들의 격에 맞는 외모와 품격을 갖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하는 그녀들. 

남편을 위해서는 평강공주와 같은 '내조의 여왕'이 되기를, 아이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맹모나 신사임당이 되기를 마다 않는 이 시대의 극성 아줌마들. 자신은 없고 오직 남편과 자녀들의 성공만이 자신의 살길이라고 다짐하며 오늘도 발바닥에 불 나게 종종거리고 손바닥 지문이 닳도록 두 손을 비벼대는 '슈퍼아줌마'들 때문에 보통 아줌마는 피곤하다.

능력도 재능도 조건도 없기에 남편 눈치 자식들 눈치, 눈치 보기에 바쁜 보통 아줌마들. 맹모 콤플렉스, 평강공주 콤플렉스, 줌마렐라 콤플렉스에 슈퍼아줌마 콤플렉스까지…. 아! 보통 아줌마로 살기 정말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