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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휴대전화가 떨다

 

오늘 정말로 오랜만에, 내 휴대전화가 부들부들 떤다. 목회에서 멀어지면서 내 휴대전화도 그 떠는 횟수가 줄었다.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아는 이들에게서 위로의 전화를 받았고, 그 횟수가 줄면서 요새는 거의 떨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그 휴대전화가 떤다. 휴대전화만 떤 게 아니라 휴대전화를 집어든 내 손은 더 후들댔다. 휴대전화의 안면에 박힌 전화번호는 익지가 않다. 저쪽에서 말한다.

 

"여보세요. 며칠 전에 우리 주유소 다녀간 아저씨죠?"

 

다짜고짜 귓속으로 쳐들어 온 그 소리가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왜, 있잖아요? 우리 주유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셨던……."

 

그때에야 감 잡았다.

 

"예, 그렇습니다. 사장님이신가요?"

"아뇨. 사장은 아닌데요. 제가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 만나기 전에 먼저 봤으면 해서요."

 

내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한 달 전에 기름을 넣으러 갔다가 주유원을 구한다는 현수막을 보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현수막은 철거되었고 빈 공간만이 그 자리에 덩그러니 있었다. 사람을 구했나 보다 생각하며 지나치다 다시 기름을 넣으러 가서 용기를 내어 혹시 사람을 쓰게 되면 내가 일해 보겠다고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왔다. 그때는 3주 정도 지나면 혹 자리가 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정한 3주가 되기도 전에 전화가 온 것이다.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만둬 모레부터 당장 출근을 해야 하는데 먼저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약속을 하고 10여 분 남짓 걸으면 당도하는 주유소로 갔다. 60대 중반의 아저씨가 나를 반긴다.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만족한 눈빛을 보낸다.

 

"내일 사장님과 면담을 하는 게 좋겠어요."

 

드디어 취직하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실직을 당했으나 이제 취직을 했다.' 목사직에서는 실직을 당했고, 주유원으로는 취직을 했다. 우리가 언제 당신을 목사직에서 끌어내렸는가. 그들이 말하면 할 말이 없다. 담임목사직에서만 내려오라 한 것이지. 그래, 그게 맞는 말이다. 아니, 안 맞는 말이다.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실직도 내가 당하라고 나를 내어 준 것이고, 취직도 내가 원해서 한 것이다. 어쨌든 목사직을 내려놓고 취직을 했다.

 

그때는 그랬다. 사직하는 일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여겼다. 교회에 남은 이들에게도 상처를 덜 주고, 나도 상처를 덜 받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하면 나의 앞날도 지금처럼 다른 직업을 가지려고 발버둥치진 않을 거라는 희망과(이기적이지만 솔직히 이 점이 사직을 고려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남은 이들도 새로운 소망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그러나 그런 바람과 현실은 전혀 다른 것이란 걸 알고 난 지금,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너무 많은 아픔을 허리춤에 차고 살아야 한다는 걸 좀 늦게 깨달았다. 눈물주머니를 가슴 밑에 달고 그렇게 멍하니 들판을 헤아리던 날이 그 얼마였던가. 그들이라고 달랐겠는가. 결과적으로 나도 피해자고 그들도 피해자다. 승자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놓아 준 그 교회는 내가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갔다. 나는 그들이 원했든 아니든, 나도 그들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서로 피만 낭자하게 흘리고 말았다. 그럼 누가 승리한 걸까? 언제까지나 남는 숙제일 듯하다.

 

다음날 사장과 면담을 했다. 월급과 무엇을 주로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었다. 처음 달은 80만 원, 봐가며 90만 원으로 하고, 좀 경력이 붙으면 10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위험물 안전 관리자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했다. 입사서류(?)는 주민등록등본, 달랑 그것 한 장이었다. 실은 그것도 위험물 안전 관리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제출하는 서류일 뿐이다. 엄밀하게 입사서류는 없다고 하는 게 맞다.

 

주유소같이 현금이 왔다 갔다 하는 버젓한(?) 직장도 별 서류가 필요 없는데, 영의 일꾼을 뽑는 교회는 왜 그렇게 요구하는 서류가 많을까. 육의 일꾼이 아닌 영의 일꾼인데.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이력서,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추천서, 자기 소개서, 학위증 사본, 최근에 한 설교 테이프나 시디, 가족사진, 여기에 더하여 요즘은 건강진단서까지……. 수수께끼다.

 

앉아서 지난날들을 아파하며 눈물만 흘릴 게 아니라 직업을 가져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정신을 차려 정보지들을 뒤진 지 달포 만에 정식으로(?) 취직을 한 것이다. 이만하면 너무도 쉽게 취직을 한 셈이다. 그간 새로 지은 건물을 분양하는 텔레마케터를 모집하는 곳에도 가봤다. 넉넉한 월급을 주고 사람이나 물건을 관리한다고 넉살좋게 광고하는 곳에도 들러봤다. 모두가 영업실적에 따라 급여를 주는 곳들이고, 영업실적이 없으면 한 푼도 벌 수 없는 곳들이었다. 광고는 그저 광고일 뿐이다.

 

사람을 상대로 무엇인가를 팔거나, 밑천을 들여야 하는 일은 내게는 소질이 없거나 무일푼이기에 아예 제쳐놓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 몸뚱이로 할 수 있는 일은 충전원이나 주유원이 적합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LPG충전소에 갔다가 나이 때문에 이미 한 번 퇴짜를 맞은 터라 주유소에서 나를 써준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다른 주유소는 대부분 젊은이들을 아르바이트제로 쓰는데 이곳은 나보다 더 연상인 분들이 세 명 근무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전에 섬기던 교회의 사택, 아직 비워주지 못하고 비비적대고 있다. 집도 절도 없으니 어쩌랴. 얼굴에 철판을 까는 수밖에)에서 가장 가까운 주유소가 나같이 살짝 나이든 이가 취직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능하신 그분은 피할 길을 준비하고 나서 시험을 주신다고 했던가.

 

취직이 결정되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봤다. 구름이 유난히 높다. 흐르고 있는 것은 양떼구름이다. 별로 오월과는 어울리지 않는 하늘이다. 꼭 가을 하늘 같다. 어제만 해도 시커멓게 먼지가 끼어 있던 하늘이었다. 부들부들 내 휴대전화가 떤 것은 주유원으로 나를 인도하기 위한 용트림인가 보다. 하늘이 저리 맑고 높은 것은 나의 마음에서 먹구름을 걷고 한가로이 마음속 양떼와 어울리라고 하는 신의 계시인가 보다.

 

이제는 가슴을 떨지 말고 바지런히 손을 움직여야 하겠다. 행복을 한 보퉁이 가지런히 안고. 다시는 벌통을 차지 않으리라. 종당에 꿀을 얻을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러다 꿀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고.(계속)

덧붙이는 글 | *힘든 때입니다. 이 글은 제가 고통 중에 있을 때의 경험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나 일용직(비정규직) 근로자인 주유원으로 일하면서 얻은 '고난 속의 교훈'이랄까요? 이 글이 현재 힘든 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주유원 이야기, #주유원 일기, #주유소, #김학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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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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