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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 내 파카한일유압 공장 내부가 일감이 부족해 한산한 모습이다.
 3월 31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 내 파카한일유압 공장 내부가 일감이 부족해 한산한 모습이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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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10일 직원 197명 중 113명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한 외국계 회사가 있다. 전체 직원의 57.4%다. 해고되지 않더라도 평균 연봉을 990만 원 가량으로 낮춘다는 게 이 회사의 계획이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회사가 얼마나 어려우면…"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기준 부채비율이 55% 정도로 알찬 회사다. 기술력도 인정받아, 이 회사가 만드는 유압콘트롤밸브(굴착기 등 중장비의 작동장치)는 2004년 당시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무슨 사정이 있기에 대량해고에 나선 걸까? 3월 31일 오전 이 회사를 찾았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에 있는 파카한일유압이다. 이곳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되면 굶어 죽는다"며 극심한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회사 "대규모 적자로 대량해고 불가피" - 노조 "일방적 희생 강요"

파카한일유압은 지난 2월 2일 정리해고 계획을 밝힌 후, 같은 달 27일 113명을 해고하겠다고 안산지방노동청에 신고했다. 회사는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노조와 협의 없이 매달 2~3주 휴업에 들어간 상황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은 한 달 70만~80만 원으로 낮아졌다.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는 "대량해고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송태섭 노조 분회장은 "하루 7시간 주4일 노동·월 12일 휴업을 하고 회사가 이익잉여금 92억 원 사용과 자회사 공장부지 매각에 나서면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회사는 경제 위기를 틈타 대량해고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껏 경영지표는 안정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계 다국적기업 파카하니핀이 2005년 6월 한일유압을 인수한 이후 회사는 크게 성장했다.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05년 282억 원에서 2008년 회계연도(2007년 7월~2008년 6월)에 421억 원으로 50% 상승했다. 이익은 2007년 회계연도에는 43억 원, 2008년 회계연도에는 56억 원으로 매출 대비 10%대의 높은 이익률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송재경 파카한일유압 대표이사는 "건설중장비 업계가 경제위기에 큰 타격을 받았다, 2009년 회계연도에 66억 원의 적자가 예상돼 현 사업규모 유지가 어렵다"면서 "노조가 회사의 자구안을 받아들이면 정리해고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연봉은 990만원으로 줄어든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비정규직' 공장 새로 짓고, 노조원 많은 공장 멈추고

지난 3월 30일 금속노조 경기지역 금속노동자투쟁본부가 서울 양재동 파카하니핀코리아 본사 앞에서 파카한일유압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3월 30일 금속노조 경기지역 금속노동자투쟁본부가 서울 양재동 파카하니핀코리아 본사 앞에서 파카한일유압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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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회사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대해 "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06년 3월 노조가 생긴 이후, 노조는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송태섭 노조 분회장은 "회사에 난로가 없다고 하자 내복을 입으라고 했다"며 "또 수도가 고장 났는데도 고쳐주지 않아 기름 묻은 손을 걸레로 닦고 밥을 먹었다"고 2006년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임금도 잔업·특근을 다해야 월 120만~130만 원일 정도로 낮았다.

또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회사는 시설투자를 하지 않고 주야 맞교대를 도입하고 외주화를 시도했다. 월차·생리휴가도 없앴다. 비정규직도 전체 노동자의 10%가 넘을 정도로 많이 뽑았다. 이에 대해 노조가 강력히 문제제기하면서 회사와의 관계가 틀어졌다.

회사는 지난해 5월 임·단협 당시 회사 노무관계자의 책상을 끌어냈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 6명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또한, 회사는 노조에 유니언숍(입사와 동시에 노조 가입) 포기를 요구했고, 노조가 이를 거부하자 같은 해 10월~11월 직장폐쇄를 했다. 회사는 이후 12월부터 현재까지 노조와의 협의 없이 매월 2~3주 휴업을 하고 있다.

회사가 노조를 상대로 휴업이나 정리해고·임금삭감 발표 등 강한 압박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2008년 초 경기도 화성시 장안 외국인투자기업전용단지에 설립된 파카코리아 공장이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파카코리아는 파카하니핀코리아의 또 다른 계열사다.

송태섭 분회장은 "장안 공장에서 우리 공장의 제품이 생산돼 기존 거래처로 납품되고 있다, 회사가 기술을 유출했다"고 주장하며 "노조가 있는 공장을 축소하고 장안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해 최대한 이익을 얻어내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송재경 대표는 "파카한일유압의 생산 물량을 장안 공장으로 돌려 거래처에 납품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발주하는 것은 고객(거래처)의 결정사안"이라며 "또한, 기술을 유출했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해고 기다리는 노동자들 "사형수 심정"

3월 31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 내 파카한일유압 공장 내부에서 한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3월 31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 내 파카한일유압 공장 내부에서 한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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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 심정이다. 다시 태어나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생산2팀의 정교욱(40)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만났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4월 10일로 연기하지 않았으면 이날 정리해고가 단행될 터였다. 정리해고에 대한 회사의 강경한 입장에 정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회사의 일방적인 휴업으로 이곳 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돈은 매달 70여만 원. 정씨는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 유치원생인 두 딸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매달 100만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빚만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2005년 다니던 섬유회사에서 정리해고를 경험한 김효중(28)씨는 "답답하다, 20대로 살기에 우리 사회는 절망적인 곳"이라며 "갈수록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고 얻더라도 비정규직·알바밖에 없다, '일자리 나눈다'는 이명박 정부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지난 2000년 11월 입사한 변숙자(가명·52)씨는 "다른 공장에 새 설비를 들여놓고 우리를 자르겠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10여 년간 잔업·특근하면서 열심히 일해 회사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됐는데, 해고를 한다니 회사가 너무나도 괘씸하다"고 밝혔다.

"작년 졸업한 27살인 아들도 취업 못하고 있다. 남편 회사도 어렵다. 내가 이번에 해고되면 나이 때문에 다른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여기서 근골격계 질환에 걸려 힘든 일도 못한다. 몇 달 실업급여 받는다고 해도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너무 막막하다."


태그:#파카한일유압, #대량해고, #시화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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