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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들어 여러 번 구룡포 일대와 포항의 유적을 찾아 나설 기회가 생겼다. 몇 차례 다녀온 곳이지만 이번에는 좀 더 자세히 둘러볼 가치가 있는 장기 목장성과 관련된 유적을 찾았다. 가는 길에는 노오란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천이다. 이제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장기 목장성으로 가는 길
▲ 진입로 가는 길 장기 목장성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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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목장성 구간 길에 핀 진달래
▲ 길에 핀 진달래 장기 목장성 구간 길에 핀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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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목장성

장기 목장은 구룡포읍 석문동 돌문에서 동해면 흥환리까지 가로지르는 돌성이다. 삼정동에 목아문을 설치하여 양육하는 말을 관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전국의 마정은 병조 및 사복시에서 관장을 하였고, 지방 마정은 관찰사 밑에 감목관(종6품)이란 실무 담당자를 두어 관리토록 하였다. 강사리에 있는 해봉사의 명월암에서 선덕여왕 때 말 목장을 위한 제를 올리도록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부터 이 곳 일대에 장기 목장성에 관한 역사가 서려 있다.

장기 목장성 흔적 성벽
▲ 장기 목장성 흔적 성벽 장기 목장성 흔적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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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이어진 목장성
▲ 길게 이어진 목장성 길게 이어진 목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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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한리 도로변에 비석

흥한리 도로변에 비각 속에 비석이 3개 있다. 주변은 푸르른 바닷가이며 조금 더 가면 발산1리이다.

흥환리 도로변 비석
▲ 흥환리 도로변 비석 흥환리 도로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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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안내문
▲ 현지 안내문안 현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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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목김부찰노연영세불망

흥인군 이최응의(흥선대원군의친형)비각 신축을 위해 터고르기를 하던 중 2001년 5월 4일 발견된 이 비석에는[물목김부찰 노연 영세 불망(蔚牧金副察魯淵永世不忘)...]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가로 32cm 높이 75cm 두께 22cm크기의 이 비석은 연대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비석이 발견된 인근에 흥인군 이최응과 목장을 관장하던 감목관(監牧官) 민치억의 공을 기리는 불망비가 세워져 있어 같은 시대인 1882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비석에는 울목(蔚牧) 이라는 명문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볼 때 이는 군마 등을 키우던 장기 목장성이 울산 목장의 관할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흥인군 공덕비

흥인군 이최응:1815(순조15)∼1882(고종19) 조선말기의 문신, 자는 양백(量佰), 흥선대원군의 형, 흥인군에 봉해졌으며 1865년(고종2) 경북궁 중건때 영건도감제조(營建都監提調)를 지냈으나 쇄국정치를 반대하여 대원군과  반목이 심했다.  1873년 영의정에 올랐다.

이 공덕비의 내용은 장기 목장성에 속한 7마을(七防)이 있었는데  모리배들이  세금을 많이 걷어 들여 천여 백성이 살아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흥인 대감께서  특별히 백성들의 뜻을 살피셔서 조그마한 잘못도 밝히고 많이  거둬들인  고질적인 폐단을 없애 버리며, 그 근원을 뿌리 뽑아 버리니 흩어졌던 백성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고, 목 장전체가 편안하게 되어 공덕비를 세우게 되었다.

감목관 공덕비

감목관 조선시대의 외관직(外官職), 지방의 목장(牧場)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원으로 대개 부사(府使) 첨사(僉使)가 겸직하였다.  30개월을 만기로 하는 종6품관으로 정원은 경기도에 5명, 충청도에 1명, 경상도에 3명, 전라도에 5명, 황해도에 3명,  함경도에 3명, 평안도에 1명이 있었다, 광서8년(光緖八年), 1882년(고종19년)에 세워졌다.

광서8년(光緖八年)
▲ 광서8년(光緖八年) 광서8년(光緖八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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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의 흔적은 연결되어 있다

장기 목장성의 성벽은 구간 구간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지막 간 곳은 눌태1리의 마을 안쪽에 가장 잘 남아 있는 성벽이다. 목장성 구간 주변에는 봉수대로 추정되는 곳도 있다. 구룡포 3리 도로변에는 예전에 돌문이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일부분만 구룡포 읍사무소에 흔적이 남아 있다. 

장기 목장성 흔적은 눌태 1리 마을 안쪽에 가장 잘 남아 보존되고 있다.
▲ 장기 목장성 흔적 장기 목장성 흔적은 눌태 1리 마을 안쪽에 가장 잘 남아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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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남아 있던 돌문
▲ 예전 돌문 예전에 남아 있던 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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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록에도 관련 자료가 남아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로 아직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역사의 목장성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로 등록을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구룡포 향토사를 연구 하고 계시는 정태현 선생의 도음으로 이런 알지 못한 유적을 좀 더 자세히 둘러보고 그 가치성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현장을 직접 한번 가서 둘러보면 왜 중요한지 알게 될 유적이다.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관리를 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이 호미반도를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태그:#장기 목장성, #구룡포 석문, #흥한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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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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