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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위봉우리 참 멋지게 생겼군, 아주 남성적인 모습이야."

"저 봉우리가 바로 산방산입니다. 그런데 저 봉우리가 한라산 백록담에서 뽑혀져 나왔다는데 믿어지십니까?"

 

얼마 전까지 해군기지 후보지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많은 갈등을 겪었다는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을 출발하여 송악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길가의 눈 앞에 버티고 선 바위봉우리는 그대로 한 개의 거대한 암석처럼 보였다. 산방산이었다. 그런데 일행들이 감탄을 하자 운전기사가 정말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어떻게 저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한라산 백록담에서 뽑혀져 나올 수 있었겠는가? 산방산은 높이가 395미터나 되는 거대한 바위봉우리 산이다. 더구나 한라산은 저 멀리 아스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산방산에는 정말 그럴 듯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옥황상제, 산방덕의 전설이 깃든 산방산

 

아주 먼 옛날 제주섬에는 오백장군이 있었는데 이들은 제주섬을 만든 '설문대할망'의 아들들로서 한라산에 올라 사냥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오백장군의 맏이가 사냥이 신통치 않자 허공에다 마구 활시위를 당겨 화풀이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맏이가 허공에 쏜 화살 한 개가 하늘을 꿰뚫고 날아가 옥황상제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홧김에 한라산 정상에 있는 바위봉우리를 뽑아 던져 버렸다. 그렇게 바위봉우리가 뽑힌 자리에 생긴 것이 백록담이고 뽑아서 던져버린 바위봉우리가 날아가 떨어진 것이 바로 산방산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라산의 백록담과 이곳 산방산은 그 생성과정이나 생성시기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산방산은 한라산 정상의 분화구와 둘레가 거의 같고 산방산의 암질과 백록담의 남서쪽 외벽 암질이 같은 조면암질이어서 전설을 더욱 그럴 듯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산방산은 그 모습이 종처럼 생겨서 '종상화산'이라고도 불린다. 산 중턱에는 산방굴사라는 굴이 있고, 이 굴에도 '산방덕'이라는 어여쁜 처자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왼쪽 바다를 보세요? 저 바다 가운데 두 개의 바위섬이 보이지요? 저 섬이 바로 형제섬입니다."

 

이번에는 바다 속 저 멀리 떠있는 두 개의 작은 섬이었다. 그런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형제섬은 방향을 달리할 때마다 그 모습도 달라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 앞에 바다 쪽으로 쭉 뻗어 들어간 저 산이 바로 송악산입니다."

"저건 산이 아니라 그냥 나지막한 언덕이네요, 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고"

 

정말 그랬다. 제주도에는 비슷비슷한 수많은 오름들이 있지만 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봉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오름이 아니라 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상당히 높이의 산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송악산을 보니 전혀 아니었다. 정말 산이라기에는 너무 낮은 언덕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송악산 입구에서 내린 일행들은 우선 주변 바닷가로 내려갔다. 바닷가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는 멀리 바라보이는 형제섬이며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는 산방산, 그리고 아스라하게 멀리 보이는 한라산의 모습이 정말 황홀한 풍경이었다.

 

송악산은 마냥 다소곳한 언덕이었다.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송악산은 높이 104미터, 둘레 3115미터, 면적 585,982㎡이며 절울이, 또는 저별이악이라고도 부른다. 기생화산체로 단성화산이며 꼭대기에 2중 분화구가 있다. 제1분화구는 지름이  500미터, 둘레가 1,7킬로미터이고, 제2분화구는 제1분화구 안에 있는 화구로서 둘레가 400미터, 깊이가 69미터로 거의 수직구멍이다.

 

일제 침략의 잔해가 남아 있는 송악산

 

송악산은 해안을 따라 정상까지 도로가 잘 닦여 있었고 분화구 능선까지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나있었다. 남쪽은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 분화구 남쪽은 낮고 평평한 초원지대였다. 송악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던 지역이어서 당시 건설한 비행장과 고사포진지, 그리고 비행기 격납고 잔해들이 남아 있었으며 바닷가 절벽 밑에는 해안참호들이 남아 있었다.

 

바닷가 풍경도 육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바닷가를 뒤덮고 있는 바위들도 검은 빛이 나는 화산석으로 그 모양도 여간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바닷가 풀밭에서 자라난 수많은 선인장들이 이곳이 육지가 아닌 남쪽 바다 멀리 떨어진 제주섬임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이 거리는 정말 이국적인 풍경이구먼, 여기 혹시 베트남이나 필리핀 아니야?"

길가에 서있는 가로수를 바라보며 일행들이 농담을 한다. 송악산에서 평화박물관으로 가는 길가엔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야자나무 가로수들이 일품이었다. 정말 어느 열대지방에 와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평화박물관은 제주도를 찾은 외국의 국빈들을 기념하고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가꾸겠다는 제주도민들의 염원이 담긴 기념공원이었다. 열대식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입구에는 커다란 '제주평화헌장'비가 세워져 있었다.

 

평화박물관 최고의 인기인은 유명 인사가 아닌 복도에서 잠든 평범한 젊은이 상

 

안으로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와 정상회담을 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의 실물크기 인물상을 비롯한 각국의 국가원수들과 세계평화에 기여한 인물들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으로는 노태우,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고 인도의 간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와 테레사 수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전시실에 세워져 있는 수많은 인물들 중에는 제주도와 관련이 있는 연예인으로 고두심과 이영애. 전도연, 배용준 등이 있었고, 축구 감독 히딩크,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매킨리에서 산악사고로 사망한 고상돈의 모습도 있었다.

 

어느 인물상 옆에는 의자가 놓여 있어서 전시되어 있는 인물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하며 사진을 찍은 것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어서 우리 일행들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에게도 좋은 사진 포인트가 되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은 아직 젊어 보이는데 이런 곳에서 저렇게 자고 있으면 되나? 쯧쯧"

"정말 그러네,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저렇게 곤히 잠들 수 있지?"

 

앞서 가던 일행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무라는 말이었다. 다가가보니 정말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는 복도 의자에 비스듬하게 누워 천하태평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고르게 숨을 쉴 때마다 가슴 밑의 배가 오르락내리락.

 

"호호호, 이 사람 이거 가짜예요, 진짜 아니거든요, 호호호"

우리 일행들의 나무라는 말을 듣고 옆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가짜라고? 일행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잠자는 표정과 숨소리, 그리고 오르내리는 배까지 진짜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잠자는 사람은 가짜였다. 정말 잠들어 있는 사람처럼 만들어 놓은 가짜사람이었던 것이다. 피곤해서 복도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잠들어 있는 사람, 너무 재미있어서 잠깐 지켜보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속아 넘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평화박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국가원수들과 연예인들, 그리고 체육인들을 제치고 가장 인기 좋은 인물은 바로 복도에서 태평스럽게 잠들어 있는 이름 없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부담 없는 미소를 안겨주는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리라.

 

동양에서 가장 큰 절이라고요? 불상이 너무 작아요.

 

"이번에는 동양에서 가장 큰 절로 모시겠습니다. 기대하세요."

평화박물관을 나서며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하는 말이었다.

 

"동양에서 가장 큰 절이 제주도에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인 걸"

"그러게 말이야. 제주도에 언제 그렇게 큰 절을 세웠지?"

 

모두들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동양최고의 절이라니 기대가 되는가 보았다. 약천사는 평화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약천사 입구 밭에는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이 지천이었다. 일행들은 절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유채꽃밭에 반했다. 부부들끼리 모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자세를 잡는 것을 바라보며 일일이 카메라에 담았다.

 

절 앞에는 제법 넓은 연못이 운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계단 위 저 멀리 바라보이는 건물이 웅장하다, 주변에는 여름 귤나무들이 크고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3층인데, 정말 대단한 건물이네. 저 안에 세워져 있는 불상도 대단하겠지?"

일행들의 호기심이 발동하고 있었다.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 대웅전인 대적광전으로 향했다. 불상 앞에는 몇 사람의 신도들이 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물에 비해 불상은 너무 작고 초라했다.

 

"아, 아쉽다, 건물 크기에 걸맞게 불상도 컸더라면 좋았을걸."

불교신자인 일행 한 사람은 불상이 건물에 비해 너무 작은 것이 못내 아쉬운 가 보았다. 건물을 돌아 뒤쪽으로 올라가니 석굴 암자가 나타난다.

 

대적광전 오른편 언덕 위에 있는 석탑 옆에는 작은 불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불상 앞에는 누군가 여름 귤 네 개와 천 원짜리 지폐 3장을 층층이 쌓아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비록 아직 맛 들기 전의 여름 귤이지만 어느 불교신자의 정성이리라. 약천사를 나와 석부작테마공원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옥황상제, #바위봉우리, #이승철, #산방산, #송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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