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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국세청 세무조사로 촉발됐다. 국세청은 지난해 7월 박 회장 소유의 태광실업·정산개발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같은 해 11월 박 회장을 거액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물론 국세청에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도 박 회장과 관련된 사건을 내사하고 있었다. 태광실업이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탈세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지 17일 만인 지난해 12월 12일 290억 원대의 세금포탈과 20억 원의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됐다. 그의 구속은 정치권 등을 떨게 만든 '박연차 리스트 파문'의 시작이었다.

 

구속된 6명 중 5명이 친노인사... 민주당의 '외환'은 계속된다?

 

박 회장이 구속된 이후 검찰에 구속된 인사는 총 6명이다. 여권인사로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유일하다.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오늘(27일) 소환되긴 했지만, 나머지 5명은 모두 노무현 정부와 관련된 인사들이다. 박연차 수사가 구여권 중에서 특히 친노세력을 겨냥한 '표적사정'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구속된 구여권 인사들은 대부분 '경남'이라는 지역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김해 출신이고,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은 남해 출신이다. 박 전 수석과 송 전 시장은 부산고 동문이기도 하다.

 

이는 박 회장의 주력사업체인 태광실업이 김해에 있다는 점과 직결돼 있다. 경남 밀양 출신인 박 회장은 김해상공회의소장도 지냈다. "부산·경남지역에서 박 회장 돈을 안 받아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이정욱 전 원장과 송은복 전 시장은 각각 2004년 6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와 2005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다. 그 당시에는 '영남의 친노세력'이었던 셈이다.

 

특히 전날(26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구속은 정권까지 창출했던 친노세력의 운명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노무현 정부 실세였던 이 의원은 국회의원직 사퇴는 물론이고 정계은퇴까지 선언한 상태다.

 

또 다른 친노그룹 핵심인사인 서갑원 민주당 의원도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서 의원이 1차 소환통보에 불응하자 검찰은 강제구인까지 검토하겠다는 강경 분위기다.

 

결국 박연차 리스트 파문으로 민주당 내 친노세력의 구심점들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무슨 할 말이 있냐"며 "검찰수사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게다가 박연차 리스트에 15~20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민주당의 '외환(外患)'은 계속될 전망이다.

 

3선 박진 의원도 소환조사... '뜻밖의 박연차 리스트'에 누가 있나?

 

이와 함께 지난 21일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긴급 체포되면서 박연차 리스트 파문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추 전 비서관이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 불리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인맥이라는 점에서 여권의 충격은 상당히 컸다.

 

물론 추 전 비서관의 체포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추 전 비서관은 청와대 입성 이후에도 문제가 있었고, 그를 구속한다고 해도 현 정권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 정권의 숨은 실세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과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이 이른바 '박연차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파문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이명박 정부 첫 민정수석이었던 이 전 수석은 박 회장으로부터 5억여 원을 빌려 변호사 사무실 보증금으로 사용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한 인사는 "진짜 대형사건이 터졌다"며 "참여정부 인사들을 다 터는 수준을 넘어 그 불똥이 여권으로도 향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런 관측을 증명이라도 하듯 검찰은 3선 의원이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 박진 한나라당 의원을 27일 전격 소환했다. 박 의원은 기존의 '박연차 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뜻밖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이 적지 않다.

 

이를 두고 검찰의 수사가 여권으로 향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현역인 허태열·권경석 한나라당 의원은 물론이고 부산·경남에 지역구를 두었던 일부 전직 의원들에 대해서도 소환조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의원은 모두 "검찰로부터 연락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특히 조만간 소환이 예상되는 권 의원은 "나는 핸드폰을 로밍해서 해외까지 다녀왔는데 검찰에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일축했다.

 

검찰 "여야 구분 없이 나오는 대로 수사하겠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갈 데까지 갈 것"이라며 "(수사대상을) 가리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가리지 않고 수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구색맞추기 수사는 하지 않는다"며 "여야 구분 없이 나오는 대로 있는 그대로 수사한다"고 '전방위 수사'를 강조했다. 

 

검찰이 '강력하고 전방위적인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연차 수사는 여야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 그치지 않고 전·현직 검사·판사·경찰간부·국세청간부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진행 일지

 

2008년 5월 서울지검 특수2부, 태광실업의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인수 의혹 내사

7월 31일 국세청, 태광실업·정산실업 세무조사 시작

11월 한상률 국세청장,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무조사 결과 보고

11월 25일 국세청,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탈세 혐의로 검찰 고발 / 대검 중수부 본격 수사 착수

12월 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 구속 :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로비 관련 금품 수수 혐의

12월 8일 검찰, "박연차 회장이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 건넨 20억 원은 세종증권 주식 매각 시세차익의 일부"

12월 10일 대검 중수부, 박연차 회장 소환조사

12월 12일 박연차 회장 구속: 290억 원대 세금포탈-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 20억 원 뇌물공여 혐의

12월 29일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 15억 원 차용증 확보

 

2009년 3월 14일 박연차 회장 정관계 로비 의혹 본격 수사

3월 15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 미국으로 출국

3월 19일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구속 : 5억 원 수수 혐의

3월 20일 송은복 전 김해시장 구속 : 3억여 원 수수 혐의

3월 21일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체포 : 2억 원 수수 혐의 / 이광재 민주당 의원 1차 소환조사

3월 22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 2차 소환조사

3월 22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장인태 전 행자부 2차관 체포 / 추부길 전 비서관 구속

3월 26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 구속 : 박연차 회장 등으로부터 15만 달러-2000만 원 수수 혐의

3월 27일 박진 한나라당 의원 소환조사 : 수만달러 수수한 혐의

 


태그:#박연차 리스트 파문, #이광재, #박진, #서갑원, #권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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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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