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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출발은 했지만 불과 4개월만에 문 닫는 '박중훈쇼' 대문.
 야심차게 출발은 했지만 불과 4개월만에 문 닫는 '박중훈쇼' 대문.
ⓒ 박중훈쇼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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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정통시사토크가 불가능했던 것일까요. 고품격 시사토크쇼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출발했고, 장동건을 비롯해 김태희, 김혜수, 최진영 등 연예프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게스트들을 초대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홍준표, 원혜영, 나경원, 박선영 등 정치계의 거물들까지 섭외하면서 "역시 고품격 시사 토크쇼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문을 닫게 됐습니다. 26일 KBS에 따르면 '박중훈쇼'는 4월19일 방송을 끝으로 문을 닫습니다. KBS가 포맷을 수정하자는 제의에 박중훈이 거절하면서 본인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했다는데, 구체적인 내막이야 잘 모르겠지만, 최근 식상해진 내용과 밋밋한 진행으로 인한 시청률의 저조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도 있군요.

어쨌거나 박중훈쇼를 좋아하며 기대를 가지고 시청했던 필자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과거 자니윤쇼를 즐겨 보던 때와 같이 박중훈쇼를 봤고, 진행자의 입담뿐 아니라 전체적인 진행스타일에서도 참고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비판합니다. "박중훈의 어눌함과 지나친 친절함이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차분함이 오히려 지루함으로 변했다"고. 그러나 이런 비판은 '토크쇼'의 포커스를 너무 진행자 위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잘못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토크'쇼에서의 '토크'는 진행자의 '토크'가 중심이 아니라 손님들의 '토크'가 중심입니다. 따라서 '토크'쇼에 등장하는 손님들이라면 자신들의 직업, 위치, 쇼의 분위기 등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문닫는 쇼의 책임, 진행자 - 제작자 - 게스트에 각 3:3:4로 물어야 한다.

즉, 게스트들은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들의 견해를 말할 때 '설득과 이해'라는 도구 외에는 어떤 것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물론 가수면 노래, 연예인이면 개인기, 정치인이면 유머 정도는 허용되지만 말 그대로 '토크'에 승부를 거는 프로그램이라면 이것들에 앞서서 '토크'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박중훈쇼의 실패원인 중 박중훈 30%, 게스트 40%, 작가 및 제작진 30% 정도의 책임을 물어야 옳습니다.

"그러면 게스트들이 '토크'를 안 하고 뭐했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작 게스트들의 '토크' 실력을 보여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바로 그 점이 박중훈의 잘못입니다.

예를 들어 장동건과 대화를 하면서 한국 영화계와 영화산업에 대한 견해를 말하도록 유도했다가, 갑자기 지루함을 느꼈는지 곧바로 잘생긴 외모로 화제를 돌리는가 하면, 김혜수에게는 시종일관 신변잡기에 대한 것뿐 김혜수가 가지고 있는 '토크' 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주지 않았습니다.

'정통시사토크' 맞아?

단순히 '말빨'을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게스트를 부르든지 사회자는 상대방의 신변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상대방과 연관되는 사회적인 이슈들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바로 그 점에서 작가와 제작자들은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질문은 항상 어느 잡지에서 본 듯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궁금증은 해소가 됐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오~저 배우의 새로운 점을 발견했는 걸?"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기껏 시도한 것들이 정치인들을 끌어모아놓고 노래 한 곡을 부르게 했던 게 새로운 시도였고, 뜬금없이 경주용자동차를 끌고나와 시동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의 경우는 토크쇼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버액션이 등장하고 개그가 나오며, 몸개그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히려 '무릎팍도사'에게서 시청자들은 '토크'의 위대함을 몇 차례 느꼈습니다.

엄홍길 대장 편에서는 엄 대장이 말하는 '산'에 대한 철학을, 황석영씨 편에서는 '글'에 대한 철학을, 그리고 신해철에게서는 '노래'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었고, 거기에 더해서 그들의 삶의 진솔한 대답을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정통토크쇼'라는 박중훈 쇼에서는 막강한 손님들을 불러놓고도 듣고 나면 이슈가 되지도 못하는 이야기들만 귀에 맴돌게 했으니, 그 책임을 박중훈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배우 000가 말하는 아동 성폭력문제" 끌어낼 수 없나?

흔히 사람들은 세계적인 토크쇼로 '오프라 윈프리쇼를 꼽습니다. 참 부러운 쇼입니다. 이 쇼의 힘은 바로 위에서 말한 삼박자가 정확히 잘 짜여 있는데 있습니다.

제작진들의 철저한 사전조사와 준비,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마치 상담사가 그 속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마음을 끌어내는 오프라의 대화술 그리고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수단이 아닌 진심어린 자기의 마음을 털어 놓는 게스트들의 성실한 자세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토크'쇼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부류의 게스트들이 등장하든지 그들에게서 '사회문제'를 끄집어냅니다. 빈민 문제, 육아 문제, 고리대금 문제, 입양아 문제, 인권 문제, 폭력 문제, 아동학대 문제 등...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정치인, 학자, 일반인, 연예인, 영화배우 등 직업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공통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그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다음날이면 "브루스 윌리스가 말하는 가정폭력 해결책"과 같은 이슈들이 쏟아지게 되고, 이런 발언을 함으로써 그 배우는 자신이 평소 몰랐던 문제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공부를 하게 됩니다.

물론 일부에 국한되지만 최근 리얼 토크쇼를 보면 우리나라 연예인들의 시사상식 수준이 그야말로 '초딩' 이하인 경우가 많습니다. 도대체 놀고, 춤추고, 밥 먹고, 성대모사는 잘하는데 그 머릿속에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도 없고, 인권문제, 낮은 수준이라도 사회 문제들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사와 사회문제 무관심한 연예인들,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정통 시사토크'를 기대하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영화배우 000가 말하는 아동성폭력문제 해결책'과 같은 이슈들을 들을 수 없을까요?

거기에다 자신이 찍은 영화 홍보차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좋습니다.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고 게스트가 찍은 영화가  '연쇄살인범'에 대한 것이라고 칩시다. 사회자는 기껏 이렇게 묻습니다.

"여배우와 호흡을 처음 맞췄다죠? 어땠나요?"
"폭력신을 직접 찍었다면서요?"
"몸을 사리지 않은 연기, 영화가 기대됩니다."

따위가 전부입니다.

상상입니다만, 만일 오프라쇼에 이들이 나간다면 그녀는 이렇게 질문할 것 같습니다.

"연쇄살인범 역할을 해 보니 오늘날 연쇄살인이 발생하는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겠나."
"살인범들의 특징이 성장과정이 문제라고 하는데,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성장과정에 가장 큰 문제점과 장애는 무엇이며,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물론 상상을 해 본 것입니다만, 실제로 '오프라쇼'에 등장했던 많은 배우들이 오프라의 이런 도발적인 질문 때문에 평소 무관심했던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접 자신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정통시사토크'가 가지는 힘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일반인이 백 번을 두드려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유명한 배우 말 한 마디면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프라는 '노블리주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인물이자, 주변의 유명인들에게도 권유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에도 명품과 섹스에 미친 연예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토크쇼' 하나가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사회문제에 보다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힘 있는 개인이나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게스트 신변 위주 토크, '시사정통토크'로 부르면 안된다

우리나라 토크쇼에 등장하는 손님들이 갖는 한계는 너무 자신 위주의 발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토크를 하는 것보다는 게스트의 신변에 대한 논점들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범위를 축소시킵니다. 물론 '토론'과는 또 다릅니다. 어차피 불려나온 주인공이 생각하는 점만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토론'이 성립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의 신변에 국한된 이야기들만 하다 보니 그가 다른 프로에 출연해서 하는 말들 또한 오십보백보가 돼 버립니다. 기껏 오락프로에 나와서 개인기 몇 개 보여주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정통시사토크'라는 이름은 에둘러 없앴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심도 있는 주제로 들어가려고 하면 게스트가 수준이 안 되거나, 진행자가 수준이 안 되거나, 제작자가 수준이 안 되거나... 그러니 주변만 돌다가 말문이 막히면 "얼마 전 태어난 애기가 예쁘죠?" 이딴 소리로 화제를 돌리기 일쑤인데 어찌 '정통시사토크'가 되겠습니까.

우리나라 '토크쇼', '무릎팍' 한계를 넘지 못할까

정통시사토크에서는 연예인, 영화배우, 정치인, 전문인 등을 구별하지 않는 '시사'문제를 끄집어내서 그의 견해를 듣고, 사회자는 반대편 입장에서 그를 공격하고, 그는 또 다시 반박하는 긴장감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시사토크'의 특징이 아닐까요?

'무릎팍도사' 강호동이 말했습니다. "톱 배우들은 박중훈쇼에서 전부 섭외를 해서 우리는 포기했습니다"라고...

필자는 이 말이, "우리는 2류들만 섭외해서 재미있게 하겠다"가 아니라 "톱스타들이 이미 얘기했던 내용을 재탕하려면 섭외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그들도 인간이고 머리에 한계가 있는데, K 방송에서 한 얘기 M 방송에서 또 하지 뭐 다르겠습니까?

그래서 박중훈쇼에서는 '정통시사'도 없고, '토크'도 없는 '박중훈'만 있었던 '쇼'였습니다.
우리나라 방송관계자들의 수준, 어디에도 딸리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한 번 제대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연예인들도 앞으로는 정치와 시사, 사회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셔서, 여러분의 인지도를 이용해서라도 소외계층이 더 나은 삶을 누리는 사회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공무원들 계몽소리 같아 하기 싫지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중훈쇼, #박중훈, #시사토크, #오프라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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