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살현장 사진을 보고 울다

한국전쟁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 김원일 선생 한국전쟁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 박도

관련사진보기

김원일씨가 전화로 알려준 대로 지하철 양재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잠시 걷자 머리가 하얗게 센 진짜 '백수(白首)'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모자를 쓰고 다니시는군요."

곧 당신의 작업실로 안내하고는 손수탄  커피와 생수를 탁자에 내놓았다. 당신 살림집 옥상 옥탑방에다 작업실을 꾸몄다며 창을 제외한 곳은 책들로 가득 찼다. 주로 오전에 집필하는데 요즘은 나이 탓인지 이따금 머리가 당기는 등, 이전보다는 글을 많이 쓰지 못한다는 등 근황을 들려줬다.

최근 출판사로부터 전달받았다는 <지울 수 없는 이미지 3>권과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펼치고는,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서 내가 수집해온 사진 이야기로 실마리를 풀어갔다.

"나는 처음에는 박 선생이 영문과 출신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국문과 출신인 줄 알았다"고 하면서, NARA에서 사진을 수집한 연유에 대해 물었다. 나는 <오마이뉴스> 누리꾼들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여러 재미 동포, 특히 백암 박은식 임정 대통령 손자인 박유종 선생의 도움을 많이 받아 이 사진자료를 입수했고, 그 뒤 두 차례나 더 미국으로 건너 가 2,000점 가까운 한국전쟁 사진자료를 수집해 와서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 3>권과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등 모두 네 권의 사진집을 냈다는 과정을 얘기했다.

1950. 9. 29. 전주, 주민들이 학살된 시신을 묻고 있다.
▲ 학살 현장 1950. 9. 29. 전주, 주민들이 학살된 시신을 묻고 있다.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사진집 중간에 있는 '학살 편'의 수십 장 현장사진을 보며 나는 울었다. 인간이 인간을, 더욱이 동족이 동족을 어떻게 이렇게 대량으로 처형할 수 있었을까를 직시하자 아닌 말로 모골이 송연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시대를 내 세대는 살았다. 문단을 나온 지 40년 동안 나는 30권 정도의 소설을 썼다. 그중 많은 분량이 한국전쟁 전후를 다룬 소설이다. 왜 끈질기게 그토록 오랫동안, 많은 분량을 그 시대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매달려 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먼저 말할 수 있는 말은, 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피멍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에 대한 이미지는 끊임없는 욕구로 내 창작의 샘을 파게 했던 것이다. ……………

인공치하 석 달을 서울에서 살며, 나는 후방의 전쟁 상황을 많이 목격했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된 미국 비행기의 공습이 대단했다. 처음 한동안은 창공에 비행기가 뜨면 공습 사이렌이 길게 울렸으나, 비행기들이 서울 하늘을 점령하다시피 떠 있고 시더 때도 없이 폭격을 해대자 사이렌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대여섯 대씩, 어떤 때는 열 대가 넘는 비행기들이 나타나 기총소사를 쏟아 붓고 포탄을 주르르 떨어뜨리곤 사라졌다. 서울은 차츰 잿더미로 변해 갔다.……………
- 김원일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서울에서 겪은 인공치하 석 달'

1951. 4. 대구 근교 마을 주민들이 부역 혐의로 산골짜기로 연행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치 못한 듯하다. 상당수 부역자들은 재판과정도 거치지 않고 이렇게 처형당했다.
▲ '골로 가다' 1951. 4. 대구 근교 마을 주민들이 부역 혐의로 산골짜기로 연행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치 못한 듯하다. 상당수 부역자들은 재판과정도 거치지 않고 이렇게 처형당했다.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골로 간다'

김원일씨가 체험한 한국전쟁 이야기는 당신의 작품 <불의 제전> <마당 깊은 집> 등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 작품에 소상히 나와 있다. 김원일 씨는 한국전쟁 당시 아홉 살 소년이었고, 나는 여섯 살 소년으로, 우리 두 사람은 59년 전 한국전쟁 당시로 돌아가 사진집을 들추면서 그때의 이야기를 한동안 나누었다.

한국전쟁 당시 유행어로 '골로 간다'는 말이 있었다. '골로 간다'는 말 '산골짜기로 간다'는 뜻으로, 곧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는 말이었다. 그 무렵 인민군의 우익 학살이나 국군의 좌익 숙청이 다 골짜기에 혐의자들을 데려고 가서 총살 또는 생매장을 했기 때문이다. 흰 옷 입은 농사꾼이 처형되는 지도 모른 채 산골짜기로 끌려가는 사진 앞에 우리 두 사람은 잠시 말문을 닫았다.

전쟁기간 중에는 사람을 죽이는데 남과 북, 좌익과 우익, 중국군과 유엔군을 가리지 않고 앞장섰다. 마치 누가 많이 죽일수록 전쟁에 승리자가 되는 듯 양민들도 총알받이가 되고 동굴에 감금되어 질식사했다. 1950년 10월 유엔군이 진주한 뒤 함흥의 한 동굴에서는 질식사한 300여 구의 시신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은 나왔으나 가해자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이런 학살에는 양편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한국전쟁을 체험한 두 소년의 공통된 견해였다.

1950. 11. 14. 함흥 덕산에서 학살된 시신더미에서 아들을 찾는 어느 아버지
▲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1950. 11. 14. 함흥 덕산에서 학살된 시신더미에서 아들을 찾는 어느 아버지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하늘을 하얗게 뒤덮었던 그 숱한 삐라들과 골목마다 도배했던 그 많은 선전벽보들을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장 볼 수 없었는데, 다행히 NARA에 소장된 북한 측 자료를 사진집으로 보게 되어 앞으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공부하는 학자, 예술가에게는 더 없이 귀중한 자료일 겁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당시 '동해남부전구 빨찌산사령관 남도부'가 발행한 '원호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빨치산들이 보급투쟁으로 민가에 내려와 곡식이나 소 돼지 닭들을 가져가면서 주고 간 증서로 나중에 조국해방이 되면 갚아준다는 증서인데, 김원일 씨는 이걸 누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겠느냐며 그 시절을 증언해 주는 귀한 자료라고 했다. 출판해서 미국 다녀온 여비라도 건졌느냐는 물음에는 싱긋 웃고는 답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정부나 학술단체에서 해야 하는데…" 말꼬리를 흐렸다. 

빨치산들이 보급투쟁 때 준 원호증
▲ 원호증 빨치산들이 보급투쟁 때 준 원호증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경상남도 진주시인민위원회 발행 벽보 '친애하는 시민들이여'
▲ 한국전쟁 당시의 벽보 경상남도 진주시인민위원회 발행 벽보 '친애하는 시민들이여'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북한은 한국전쟁을 철저히 준비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예로 심지어 남한 점령지에 책임자까지 사전에 정해 놓고 점령 즉시 임명하고 했어요. 8월 15일까지 끝내려고 했는데 뜻밖에 유엔군의 참전으로 무산된 거죠. 대한민국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고요."

분단문학의 대가답게 김원일씨의 한국전쟁 이야기보따리는 무궁무진했다. 아직도 그의 이야기 샘은 마르지 않은 듯, 당신 체력의 한계를 아쉬워했다. 한국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이 떠나면 앞으로는 전쟁을 문헌이나 상상으로밖에 쓸 수 없을 게다.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야 말로 겨레의 귀중한 자산이다.

"요즘 일부 국민들과 정치인 가운데는 전쟁을 하나의 전자오락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는 한반도에서 동족상잔의 전쟁은 없어야합니다. 한반도에 어떻게나 폭탄을 들이 쏟아 부었는지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북한 지역은 거의 대부분 석기시절로 돌아갔다지요." 

그런데 요즘 남과 북에서는 다시 강경론자들이 고개를 치민 듯하여 염려된다면서, 이는 겨레 앞날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좌우를 극복하는 통합의 힘이랄까 세력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기성세대는 힘든 것 같고 아주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한국전쟁 이야기는 마무리하고 한국전쟁 때 서울시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을 역임하다가 9 ‧ 28 철수 때 혼자 월북한 아버지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태그:#한국전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이 기자의 최신기사"아무에게도 악을 갚지 말라"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