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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중반쯤이었던가? 인천항에 미 구축함이 들어왔는데 일반인에게도 공개를 한다했다. 그 때만 해도 별로 볼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원자포'로 중무장했다는 구축함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한늬우스'에 나올 정도로 장안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먹을거리를 싸들고 경인선 열차에 타니 그야말로 이른 아침부터 열차는 북새통이었다.

이제 생각하면 핵포탄을 쏠 수 있는 함포가 '원자포' 아니냐 라고 간단히 생각하겠지만, 원폭투하로 미주리함에서 일본천황의 항복성명을 받아냈던 것이 머리에 각인된 우리에게 '원자'라는 말은 오메가, 벤츠, 이병철만큼이나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군함을 둘러보고 난 후, 어쩐 일인지 그 많은 인원이 수척의 똑닥선에 콩나물처럼 실려 팔미도를 구경하게 되었다. 아마 해군에서 군함 관람과 팔미도를 연계해 희망자만 팔미도 구경을 시켜주었던 것 같은데, 그 작은 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가서 난리법석을 떨었어도 타고난 아름다움은 어디로 갈 수 없는 것이어서, 하얀 모래밭과 파란 바다, 푸른 소나무와 하얀 등대 그리고 맑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 수많은 잠자리들은 거의 동화처럼 내 가슴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다던 여객선은 해가 질 무렵에도 감감 무소식이니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해군 상륙정이 급파되어 그것을 타고 인천항에 깜깜해서야 도착했으니 어찌 팔미도를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유람선 선착장. 선상쇼를 볼 수 있는 하모니호와 그렇지 않은 용유2호가 있다.
 유람선 선착장. 선상쇼를 볼 수 있는 하모니호와 그렇지 않은 용유2호가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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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부두 여객선 터미널 곁에 작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팔미도 가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 2대의 커다란 유람선이 왕복을 하는데 대략 기착시간은 1시간여라 한다. 마침 곧바로 출발하는 배가 있어 2만2천원에 인적사항을 적고 부잔교 부두로 내려가 배를 타니 일러서인지 나처럼 사진을 찍으려고 들어가는 젊은이들 몇 명하고 불과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큰 화물선 사이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어선. 이 큰 화물선도 인천대교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다.
 큰 화물선 사이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어선. 이 큰 화물선도 인천대교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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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신도시
 송도 신도시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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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인천대교. 개통기념으로 왕복하는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한다.
 어마어마한 인천대교. 개통기념으로 왕복하는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한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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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탑을 잇는 케이블과 사장교
 주탑을 잇는 케이블과 사장교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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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탑의 거푸집
 주탑의 거푸집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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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그다지 좋지 않아 흐린건지 황사인지 알 수 없는 뿌연 대기 속에 세찬 바람은 점퍼를 하나 더 입고 올 걸 하는 후회감이 들도록 만든다. 그러나 배가 달리니 기분은 상쾌하다. 드문드문 떠있는 커다란 화물선과 그 사이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달리는 작은 어선들. 전체 길이 20킬로가 넘고 높이가 63빌딩만 하다는 주탑은 상층부에 아직 거푸집을 떼지 않은 상태다. 인천대교는 그 아래 정박해 있는 커다란 화물선조차 왜소하게 만드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사장교 아래를 배가 지나자 금방 팔미도가 보인다.

팔미도
 팔미도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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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파도에 잠시 머뭇거리며 선착장에 배를 대니 가이드는 생뚱맞게 2시간 30분 후인 1시 30분까지 늦지 않게 선착장으로 오란다. 이 작은 섬에서 느릿느릿 걸어 구경을 해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할 텐데 2시간 반이라니. 가이드에게 항의 아닌 항의를 하니 사람들이 시간이 모자란다 해서 편의를 봐주는 것이라는 해명 아닌 변명을 한다.

팔미도 선착장
 팔미도 선착장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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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도 많이 변했다. 벽돌 콘크리트 2층 막사와 하얗게 칠해놓은 펜스가 작은 섬을 짓누르듯 서있는 게 별로 맘에 안 든다. 군사시설이라지만 눈에 덜 뜨이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하긴 이렇게 일반인들이 들어와서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해야 할 테니 그 정도는 감수하자. 그러나 높은 파도로 쪽빛 바닷물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아쉽다.

앞의 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 뒤의 것이 새로 만든 등대
 앞의 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 뒤의 것이 새로 만든 등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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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목으로 만든 계단을 오르니 천년광장이라는 전망대가 나온다. 저 멀리 인천대교와 송도 신도시에 짓고 있는 고층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계단을 오르니 등대와 철탑이 보인다. 팔미도는 영종도, 대부도, 인천항을 잇는 삼각형의 중심에 있어 전략적 요충지가 틀림없다.

팔미도를 탈환해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전적비와 맥아더 장군 기념비가 먼저 보이고 그 뒤로 아담한 등대가 서있다. 작은 출입문은 화강석으로 모양을 낸 문틀에 파묻혀 있어 비바람에 노출이 덜 되도록 만들어졌다. 10미터 정도밖에 될 것 같지 않은 등대는 2층에 난간이 있고 그 안에 발광기인 등명기가 있다. 문이 잠겨 있어 그 옆 새로운 등대 안으로 들어간다.

팔미도 등대
 팔미도 등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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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은 새로 만들고 보수했을 것 같은 문.
 몇번은 새로 만들고 보수했을 것 같은 문.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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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안에 팔미도 탈환작전 모형이 있다. 상륙함에서 내리는 군인과 탱크가 작은 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탱크가 작은 섬에서 돌아다닐 일은 없겠지만 자주포 역할은 충분히 했을 것 같다. 공항 관제탑 같은 등대에는 사무실도 갖춰져 있는데 현대식 사무용 가구로 깨끗이 정돈돼 있어 낡은 책상과 바다 비린내가 날 것이라는 추측을 가차 없이 날려 버린다.

전망대 1
 전망대 1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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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2. 날씨가 흐려 저 멀리 인천이나 영종도가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전망대 2. 날씨가 흐려 저 멀리 인천이나 영종도가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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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숲길로 이어져서 숲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며 한적하게 산책을 할 수 있다. 간혹 눈에 띄는 초소로 가는 길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바로 아래 땅인 줄 알고 발을 내디뎠다간 푹 빠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선착장 곁의 작은 해수욕장
 선착장 곁의 작은 해수욕장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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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는 모래와 함께 쓸려 들어온 조개껍질더미가 땅콩처럼 큰 섬과 작은 바위섬을 연결한 모양새였다. 날씨만 좋았다면 어렸을 때 느낌과 지금의 기대감 사이에 괴리가 그리 크지는 않았을텐데.

팔미도와 이어지는 바위섬. 조개껍질과 모래로 이어졌다.
 팔미도와 이어지는 바위섬. 조개껍질과 모래로 이어졌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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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팔미도는 하루나절 나들이로 많은 매력을 지닌 섬이다. 약 3-4시간 정도에 섬을 돌아볼 수 있고 연안부두 근처에 어시장이 있으니 돌아갈 때 저녁거리라고 손쉽게 장만할 수 있고 뱃시간 전후에 좀 여유를 가진다면 차이나타운이나 근처에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어시장 옆 민영씨푸드 (032-883-6666). 전복라면과 짬뽕이 맛있다.
 어시장 옆 민영씨푸드 (032-883-6666). 전복라면과 짬뽕이 맛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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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신통치 않으니 배가 슬슬 고파진다. 전복라면으로 유명한 민영씨푸드를 찾으니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꽤 있다. 동행이 있으면 해물모듬이라도 시키고 한참 이야기를 나눌텐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팔미도, #민영씨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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