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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에 10개월  동안 121회 연재한 <소현세자> 1권 겉그림. 모두 3권으로 나왔다.
 <오마이뉴스>에 10개월 동안 121회 연재한 <소현세자> 1권 겉그림. 모두 3권으로 나왔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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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인조가 왕위에 오른 지 3년째인 1625년에 세자로 책봉된 소현세자는 1636년, 볼모가 되어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간다. 이유는 단 하나, 패전국의 세자라는 것.

심양에서 볼모살이를 하는 동안 소현은 패배의 한을 삼키며 조선의 부흥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변화의 현장인 중국 대륙에서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융성, 그 실체를 직시하면 할수록 패전국의 세자인 그에게 조선의 미래를 여는 일은 더욱 절실한 숙원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청국의 신망을 얻어 조선 부흥에 필요한 외교 역량과 정치 기반을 쌓아가는 한편, 독일인 신부 J. 아담 샬(일명 湯若望)로부터 서구 과학 문명과 천주교를 배우는 등 조선 부흥에 힘이 될 다방면의 것들에도 관심을 둔다.

하지만 정작 인조는 이런 소현이 못마땅하다. 그런 와중에 소현은 9년간의 파란만장한 볼모살이를 끝내고 세자빈과 함께 조선 부흥이란 원대하고 부푼 꿈을 안고 환국한다.

그러나 소현을 의심, 왕위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던 인조는 사실상 소현의 손발을 묶고 죽음으로 내몬다. 세자빈을 못마땅해 하는 인조의 총비 조소양과 완고하고 몽매한 대신들까지 합세하여 소현세자를 모함, 소현은 환국한 지 2개월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급서한다.

372년 전,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를 따라가며

"…창릉고개를 넘어 임진강에 닿았다. 소현이 끌려가던 길을 더듬어 밟아 올랐으나 그 길은 임진강에서 잘려 더 나아갈 수 없었다. 2008년 2월, 일부러 소현세자가 끌려갔던 혹한기에 길을 나섰다. 그 당시를 좀 더 실감나게 느껴보고 싶었다. 중국 단둥에 도착했다. 옛 고구려의 영토다. 눈앞에 압록강이 펼쳐졌다. 가슴이 뭉클했다. 임진강에서 길이 막히자 중국으로 빙 돌아서 온 것이다. 나라가 동강 나 역사의 길마저 끊어졌다. 착잡했다. 압록강 강바람이 매섭다. 영하 23도라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35도나 된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폐부를 파고든다. 소현세자가 청나라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372년 전에는 이보다 더 추웠으리라." - <소현세자 1부·2부·3부>(이정근 씀/책보세 펴냄) 저자의 말 중에서.

372년 전, 소현세자가 끌려갔을 1700리 그 길을, 당시처럼 살을 에는 추운 계절에 저자가 다시 밟았기 때문일까? <소현세자>를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은 생생한 현장감이다. 마치 내가 소현세자와 동시대인으로 함께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그런….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물을 자주 읽는 편인데 인문교양서와 달리 역사소설은 애매할 때가 종종 있다. 역사적 사실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딱딱하고 재미없거나, 반대로 '어? 이거 순 뻥 아냐? 정말 그랬을까?' 반신반의할 만큼 지나치게 가벼운 작품도 더러 있기에.

그런데 이정근의 <소현세자 1부·2부·3부>는 역사에 충실하면서도 소설의 재미를 모두 갖췄다. 책을 읽어나가며 <오마이뉴스>에 10개월가량 연재(총 121회) 하는 동안 인기가 있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경희궁 숭정전' 앞에서 저자를 만났다.

 <소현세자>의 저자인 이정근 시민기자를 바람많은 날 쓸쓸한 경희궁 숭정전에서 만났다.
 <소현세자>의 저자인 이정근 시민기자를 바람많은 날 쓸쓸한 경희궁 숭정전에서 만났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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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 심양에 도착한 소현세자가 청나라에도 '숭정전'이 있음에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이 때문인지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경희궁 숭정전이 달리 보인다.
"오늘날의 경희궁(당시 경덕궁)은 경종, 정조, 헌종의 즉위식이 열렸던 곳으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소현세자가 혼례를 치른 곳이기도 하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허용하지 않는다. 허나 만약 심양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이곳 숭정전에서 즉위식을 하고 심양에서 망국의 쓰라림을 삼키며 자신이 구상한 대로 조선을 부흥시켰다면 우리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지 않았겠는가. '소현'이란 모처럼의 호연지기를 저버리고 잠 속으로 빠져버린 조선. 훗날 일제는 다른 궁궐들과 함께 경희궁도 무지막지하게 훼손하고 팔아먹기까지 한다. 숭정전은 망국의 쓰라림이자 소현세자의 꺾인 꿈이다."

- 청나라인들이 조선의 곶감이나 배(과일)를 무척 좋아했다거나 당시 조선에는 없었던 흙벽돌집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이 많아 소설을 읽는 맛과 책을 통해 시시콜콜한(?) 것들을 알아가는 맛이 좋았다. 일부러 의도한 것 아닌가 싶던데?
"그렇다. 의도했다. 우리는 왜 역사적 굵은 사건들만 보려 하고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보려 하지 않는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다. 기록에 분명 있다. 그런데도 왜 묻혀만 있는가? 사학자들이 그 당시 백성들의 삶이나 생활 모습을 하찮게 여겨 돌아보려 하지 않고 굳이 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학자들이라면 굵은 역사적 사건과 함께 백성들의 삶도 복원하는 데 애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사학자들에 대한 질타다. 우리들 또한 잘 알려진 역사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자책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는 동안 독자들로부터 '어디에서 나온 자료들인가?', '정말 있는 이야기인가?'라는 질문 쪽지를 많이 받았다."

-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볼모로 끌려간 왕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볼모의 생활을 이처럼 자세히 다룬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소현세자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나 역사의 흐름 또한 명확하게 알 수 있어 좋았다. 당시의 볼모생활을 얼마나 담아냈는가?
"95%? 아니, 98%가량은 담았다고 자신한다. 소현세자는 망국의 결과물로 볼모로 끌려갔기 때문에 역사의 주목을 받는 것이지 어찌 보면 평범한 인물에 불과하다. 소현세자의 삶 중 많은 부분이 심양에서 보낸 볼모 생활이다. 때문에 심양에 남아 있는 자료나 흔적을 최대한 살려 담아내는 것이 소현세자를 온전히 복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료 상당 부분이 중국에 있어서 글이 막혀 힘들 때도 많았다. '태종 이방원' 때처럼 국내라면 밤중이라도 달려가 확인할 수 있으련만 중국이라 그럴 수 없어 답답할 때도 많았다. 다행히도 현지의, 요녕 대학 조선족 교수 한 분이 제 일처럼 발벗고 나서 주었다. 그분이 참 고맙다."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다면 조선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

 경희궁 숭정전과 숭정문
 경희궁 숭정전과 숭정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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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깃발을 들고 반정에 성공한 세력은 파당으로 나뉘어 싸움질에만 골몰한 나머지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치욕을 당했다. 결국 명분을 내건 밥그릇 싸움이었을 뿐 큰 틀에서 보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대세를 읽는 눈을 잃고 시대의 미아가 되고 말았을 뿐이다. 권력을 장악한 그들은 경복궁 옆 장동에 소굴을 마련하고 끼리끼리 통했다. 변화를 입에 담는 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이 휘두른 전가의 보도는 존주(尊周)였다. 이에 반하는 자는 임금이라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정조도 개혁을 하다가 좌절했고 정약용도 그 수구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결국 대세의 변화에 눈을 감고 존주를 끌어안은 채 현실에 안주한 그들은 자멸하면서 나라를 일제에 헌상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러한 사조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소현세자다. - 저자 서문 중에서

- <소현세자>의 의미는?
"소현세자가 안타깝고 쓰렸다. 시대만 다를 뿐, 오늘날이나 그때나 우리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때 인조가 자신의 문제(왕위 고수)에만 급급하지 않고 먼 안목을 가지고 심양에서 변화의 바람을 충분히 겪고 환국한 소현을 제대로 받아들였더라면? 당시 사회의 지도자 그룹이랄 수 있는 조정대신들이나 선비들이 병자호란 때만이라도 사태를 제대로 보고자 했다면 우리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한번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나라를 들어 바친 그 순간에도 그들은 청나라가 아닌 명나라의 그림자를 놓지 못한다. 그것도 모자라 9년 후 볼모생활을 끝내고 환국한 소현세자를 모함, 죽음으로 내몬다. 그들에게 나라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의 집안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이 더 중요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즉, 소현세자는 단지 소현이라는 인물 자체로만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들이 싸워 이겨내야만 하는 절망이자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다.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소현세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원대한 꿈을 가졌으면서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스러지고만 소현세자는 너무 안타깝다. 절망이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쉽게 주저앉지 말고 일단 싸우는 데까지 싸워보는 거다."

- 책을 덮으며 마음이 너무 아렸다. 그리하여 문득 궁금했다. 독자인 나도 이렇게 마음 아픈데 저자는 어떤 심정으로 소현세자를 놓아야만 했을까? 하고 말이다.
"탈고를 하고 꼬박 하루 반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허전하고 쓰렸다. 소현세자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자꾸 아리고 쌉싸름했다."

"너무 처절해 '환향녀' 더 못 다룬 것 아쉬워"

- 작품과 관련해 아쉬움은 없는가?
"'환향녀'에 대해 좀 더 많은 부분을 쓰고자 했다. 당시 사대부들의 무지몽매함 때문에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계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처절해 더 쓸 수 없었다. 더 많이 쓸수록 독자들 역시 마음 아플 것 같았기에. 책에는 친정아버지의 노력으로 돌아올 수 있었음에도 남편에게 쫓겨나 결국 자결을 하는 한 사대부가 여인의 최후만을 상징적으로 썼다. 당시 사지에서 도망쳐 1700리 길을 걸어 돌아온 여인들도 많았다. 집단폭행을 당하거나 날짐승의 먹이가 될 위험에서 죽기 살기로 돌아온 고국, 하지만 다시 가족에게 내쳐지고 마는 여인들. 자료 속 당시 여인들이 너무 처절하고 비참해 다 적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 아쉽기도 하다. 언젠가 이 '환향녀'에 대해 별도의 책을 쓸 계획이다."

- 앞으로 집필(연재) 계획은?
"뜻하지 않게, 어느 독자의 제안으로 집필한 소현세자와 함께 걸어가는 동안 거의 매일 만감이 교차했다. 오래 전부터 역사 관련 자료들을 많이 수집했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책으로 썼다. 조만간 역사인문 2권이 나올 예정이다. 이후 <이방원전>(가람 기획 펴냄)이나 <소현세자>처럼 한 인물을 탐구, 재조명하거나 복원할 계획이다. 수양대군과 명성황후, 정조가 그 주인공들이다. 성군 세종은 어떻게 망나니 아들을 두었는가? 정조나 명성황후는 또 얼마나 많은 동정표를 받고 있는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역사물로 이들에 대해 이미 썼지만, 그럼에도 다시 꼭 써야만 하는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 연재하는 동안 인기가 많았다고 들었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아름다운 역사가 아닌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고 어려웠다. 그렇다고 미화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래 우리에겐 이처럼 아프고 치욕스러운 과거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인지 독자들과 함께 소현세자를 따라가며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 <소현세자>를 통해 독자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조선의 역사나 소현세자, 병자호란에 대해 5%만이라도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작가로서 만족한다. 연재하는 동안 소현세자를 사랑해 준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경희궁 숭정문 옆 고목
 경희궁 숭정문 옆 고목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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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는 모두 3권이다. 국내나 중국 현지 소현세자 행적과 관련된 사진도 풍성하다. 소현세자의 흔적을 답사하며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 사진들을 찍으며 만난 중국인들에게 남아 있는 조선과 병자호란의 얼룩들을 "쓰리고 처참했다"는 표현으로 들려줬다. 바람 많은 날의 숭정전은 더욱 쓸쓸했다.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120여 분 동안 다섯 사람이 왔나? 속이 텅 빈 고목 앞 손톱만한 싹이 꽃샘추위 속에 움트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인조반정'을 떠올렸다. 생각도 분분했다. 지금 우리들에게 희망의 명분으로 내세워지고 있는 수많은 정책들은 훗날 어떤 씨앗들을 맺을까? 어떻게 기록될까? 혹여 암울한 그 시대 모처럼의 호연지기인 소현세자를 버렸듯, 이 불황의 암울한 시대에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는 무지몽매함으로 우리 역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덧붙이는 글 | <소현세자>-1권:망국이 빚은 지옥 2권:대륙에서 키운 꿈 3권:압록에 스러진 별/책보세(책으로 보는 세상) 2009년 2월 25일 펴냄/각권 값 11000원



소현세자 세트 - 전3권

이정근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09)


#이정근#태종 이방원#이방원전#병자호란#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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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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