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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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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뜨악했다. 예술 관련 교양서는 이미 차고 넘친다. 진중권이나 김병종처럼 실력이 검증된 필자도 아니다. 게다가 예술이나 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란다. 저자들의 이력은  사뭇 독특하다.

미술 부문을 집필한 이유리는 경인일보 기자이며, 음악과 영화 등을 맡은 임승수는 민주노동당 활동가 출신이다. 대학에서 전공한 것은 사학과 전기공학이었단다.

이 정도면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그런데 이 책이 빛나는 지점은 오히려 여기에 있다. 그만그만한 예술 교양서와는 결이 다른, 뚜렷한 차별성이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 핵심은 제목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그냥 예술작품들이 아니라,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이다. 특정 국가, 특정 예술 사조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고 역사와 호흡했던 '뜨거운'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탄생했던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충실히 재현하고, 그 시대의 부조리함에 맞서 세상을 바꿔나가고자 했던 혁명적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꼼꼼히 따라간다. 사학 전공과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이 십분 발휘되고, 진보정당에 몸담으며 저술활동을 병행한 이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17세기의 젠틸레스키부터 21세기의 뱅크시까지 400년의 시간을 가뿐히 넘나드는 비약과, 칠레의 빅토르 하라와 한국의 최병수가 이어지는 공간이동의 쾌감은 산뜻하다. 존 레논의 불온한 노래 '이매진'과 천재 영화인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등 26개의 풍성한 메뉴도 골라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들의 삶의 태도에 빗대어 우리 사회를 지긋이 비판하는 지점도 경청할 만하다. 그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때론 단호하기도 하다. 출퇴근, 등하교 길의 버스와 지하철에서 야금야금 읽기에 적당하고, 나른한 주말 북카페의 커피 한잔과 어울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멕시코 벽화운동의 기수, 디에고 리베라가 강조한 '보통의 언어'는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폐쇄적 언어를 지양하고, 대중과의 눈높이 소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관련 전공 서적과 석·박사 논문까지 찾아 읽은 부지런함이, 그 지식을 평이한 문체로 전달하려는 수고스러움과 어울어져 조화를 이룬다.

소통을 향한 이들의 진심이 전해지는 것은 간주곡(intermezzo)이라는 센스 있는 형식미의 효과이기도 하다. 글을 준비하면서 느끼고 생각하던 바를 솔직하고 정감 있게 드러내면서, 필자와 독자의 살가운 소통이 가능해진다. 열심히 자료를 구하고, 집필에 땀 흘렸을 필자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내용 못지않게 주목할 것은 책의 생산 과정이다. 이 책은 '교양의 민주화', '저술의 민주화'를 보여준다. 대중지성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 함직하다. 그래서 새로운 출판운동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저자들은 인터넷 대안언론인 <오마이뉴스>에 글을 연재하고, 대중적 사회 과학서를 출판하는 <시대의 창>에서 책을 펴냈다.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대중지성의 결집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도 촛불시민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하나 둘 대학 새내기가 되어 갈 촛불소녀들에게도 적극 추천할 만하다. 돌이켜보면 촛불항쟁도 그 자체로 하나의 집합적 행위예술이자,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독특한 공공미술이었다.

그 뜨거웠던 에너지를 일상에서 소모할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대중적 지성을 결집하는 출판운동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하여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은 대중지성의 미래를 밝혀주는 하나의 이정표다.

70-80년대 언론 탄압이 출판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민주화의 돌파구가 열렸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교과서를 수정하고, 금서목록을 만들고, 인터넷을 검열하고, TV와 라디오의 교양 프로그램이 속속 폐지되는 지금이야말로, 책과 교양은 우리의 무기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꾸는 예술작품의 창작자로 거듭난다. 그 작은 불꽃들이 모여서, 다시금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집합예술이 역사 안에서 구현될 것이다.

이 책은 그 날을 향해 가는 대여정의 굳건한 디딤돌이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 베토벤보다 불온하고 프리다 칼로보다 치열하게

이유리.임승수 지음, 시대의창(2015)


태그:#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교양, #출판, #임승수, #이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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