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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도움을 청했더니 뺨 때리는 격입니다. 17일 대전시의회 교육사회위원회를 통과한 학원 심야교습시간 제한조례가 그렇습니다.

 

대전시의회 교육사회위원회는 이날 고등학생에 대한 사설학원 심야교습시간을 새벽 5시 부터 그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허용하는 조례안을 가결했습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도 각각 밤 10시, 밤 11시까지 허용했습니다. 이 조례안은 24일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입니다.

 

새벽 1시까지를 허용한 조례는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최고 수준입니다. 다른 시·도의 경우 학원 심야교습시간이 밤 12시를 넘겨 허용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서울은 초·중·고생 모두 밤 10시까지만 허용했습니다.

 

조례안을 제출한 대전시교육청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시교육청은 초등학생은 밤 10시까지, 중학생은 밤 11시, 고등학생은 밤 12시까지로 한 안으로 시의회의 의결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시교육청의 안 또한 학부모나 학생들의 의견과는 거리가 멉니다. 게다가 시교육청이 제출한 조례안에는 학원들의 교습시간 제한 위반 시 제재나 처벌 규정조차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제한조례가 통과되더라도 '있으나 마나'인 셈입니다.  

 

'새벽 1시까지' 가결한 상임위원회, 처벌규정 마련 안 한 대전시교육청 

 

대전시의회 교육사회위원인 조신형 의원이 지난 15일 여론조사전문기관에 의뢰해 대전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학원 심야교습 제한시간을 초등학생 8시, 중학생은 밤 9시, 고등학생 밤 10시로 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

 

국가청소년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도 밤 10시까지로 제한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학생들을 새벽 1시까지 학원에 붙잡아 놓아야 한다는 측은 표면적으로 '학력 향상'을 내세웁니다. (학원에 가는 교육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시할까 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건강' 문제는 잠시 접어둬도 무방하다는 것이고 학생들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기계냐'는 아이들 항변이 나올 만합니다.

 

학원에서 새벽까지 아이들을 붙들어 놓는다고 '학력 신장'이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반면 사설 학원들은 높은 수입을 보장받습니다.

 

결국 학원의 탐욕은 '누구는 학원에서 새벽까지 먹고 자며 공부하는데 우리 아이만 낙오시킬 수 없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탐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이런 추세라면 '기숙사형 학원'을 만들어 놓고 '눈뜨자마자 학교 가야 하는데 집에는 왜 가느냐'고 할 날도 멀지 않은 듯합니다. 사교육비는 자꾸 올라가고 아이들은 밤잠도 잘 수 없는 죽음의 공부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부모들이 대부분 심야교습시간을 제한하자는 데 동의하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을 우려해서고, 사설학원이 공교육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손 벌리는 형국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전시의원들에게 '0교시 출근-새벽 1시 퇴근'하라고 한다면?

 

사설학원의 심야 교습시간을 정하는 조례를 정하자는 것은 '허용'하자는 것이 아닌 '제한'하자는 취지입니다. 새벽 1시까지 제한하자는 것은 말만 '제한'일뿐 고삐를 풀겠다는 '허용'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교육사회위원회 시의원들도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교육단체들이 '시의회가 학원연합회 등 이익집단만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은 이 때문입니다.

 

'학력 신장'을 내세워 학생들을 사설학원 품에 떠맡기기 전에 대전시의회 의원들 먼저 사설학원에서 심야교습을 받아야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대전시의원들에게 몸이 좀 상하더라도 '의정 수행능력 신장'을 위해 0교시에 시의회에 출근해서 도시락 까먹으며 새벽 1시까지 대전시 발전을 위해 의정연구 활동에 전념하라고 한다면 수긍할까요?

 

대전시의회 본회의에서는 상임위 가결안을 뒤엎고 '학력 신장'보다는 '학생들의 건강과 공교육 강화'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을까요?


태그:#대전시의회, #심야교습시간제한, #새벽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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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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