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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입는 속옷을 잘라서 만든 천휴지
 안 입는 속옷을 잘라서 만든 천휴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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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둘이 살면서 부딪칠 일이 종종 일어났는데 그건 대부분 별 거 아닌 일로 시작되었다. 치약을 중간에 꾹 눌러짜서 불만이었고 휴지를 둘둘 말아 쓰는 것도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그의 사소한 버릇들이 내 눈에 거슬렸던 것처럼 나의 작은 버릇들도 그에게는 거슬렸을 터인데 그 때는 왜 그의 버릇들만 꼬집고 고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둥글어지고 서로 맞춰가게 되었고 그래서 더 이상 그런 것들로 마음 상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혼한 지 20여 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마음에 좀 안 드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그가 휴지를 말아 쓴다는 사실이다.

그가 휴지를 말아 쓰는지 안 쓰는지는 모르겠다. 대충 내 감으로 느끼건대 그는 휴지를 좀 많이 쓴다. 두어 쪽만 쓰도 될 거도 주루룩 뽑아서 쓸 때가 있다. 그런 걸로 봐서 그가 틀림없이 휴지를 둘둘 말아쓰리라고 짐작하는 거다.

둘둘 말아 쓰는 휴지, 별 거 아닌데도 신경 쓰이네

나는 휴지를 아껴 쓴다. 딱 네 칸만 잘라서 얌전하게 접어서 쓴다. 나처럼 휴지를 쓴다면 분명 오래 쓸 거 같은데, 그런데도 휴지가 빨리 들어가는 거 보면 분명 그가 많이 쓰서 그런거라고 나 혼자 짐작한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 거 같이 느껴지던 지지난 주의 어느 날이었다. 계절이 바뀌니까 옷 정리를 하게 되었다. 안 입는 옷들, 안 입지만 아까워서 놔두었던 옷들을 과감하게 방 밖으로 던져냈다. 옷방에 그냥 두면 또 챙겨둘 거 같아서 방 밖으로 막 내던졌다.

잘 안 입는 옷이지만 버리기엔 아까워서 그냥 챙겨두는 경우, 그 옷은 결국 옷장만 차지하게 된다. 우리 집 역시 그런 옷들 때문에 옷장이 복잡하다. 해마다 옷장 정리를 하고 그 때마다 옷을 정리하건만 웬 옷이 그리 많은지. 잘 안 입는 옷은 아까워도 그냥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옷장이 가벼워진다.

그렇게 해서 나온 옷들을 또 정리해 보았다. 네 식구인데도 버릴 옷이 엄청 많았다. 버릴 옷들을 또 정리해 보았다. 정말 버려야 할 옷들과 누구 물려줄 수 있는 옷, 그리고 알뜰매장 같은데 기증해도 괜찮을 옷들로 분류를 했다.

그렇게 하고 나자 남은 건 양말과 속옷들 뿐이었다. 고무줄이 늘어나서 잘 안 신는 양말들과 후줄그레해진 면티셔츠들, 그리고 오래 입어 나들나들해진 메리야스 따위들이 한 쪽으로 치워졌다. 진짜 버릴 옷은 바로 이것들인 셈이다. 속옷과 양말은 누구 줄 수도 없으므로 그야말로 진짜 버릴 수 밖에 없다.

버릴 옷들 중에는 대학생인 딸애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교복 안에 입었던 하얀 메리야스도 여러 장 있었다. 또 아들 애가 초등학교 고학년 일 때 입었던 겨울 내복도 두 벌이나 있었다. 그들 모두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모아 두었던 것들이었다. 메리야스도 내복도 내가 입을 거라 생각하며 모아둔 게 햇수로 벌써 5~6년이 지났다.

사실 옷만큼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는 것도 드물 것이다. 옷 선물은 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안 입는 게 옷이다. 그러니 애들이 입다가 안 입는 옷들을 아까워서 모아두었는데 결국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들 아이가 입었던 내복은 내가 입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따로 모아놨지만 일 년에 두어 번도 안 입었던 거 같다. 진짜 날이 추우면 꺼내서 입을 때도 있었지만 소매 길이가 약간 짧고 색깔도 예쁘지 않은 그 옷을 일부러 찾아 입어지지는 않았다. 더 예쁘고 좋은 옷이 있는데 부러 그 옷을 찾을 일이 없었다.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버릴 옷들을 꺼내놓고 하나 하나 들여다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들었던 환경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는 파멸을 겪을 수 밖에 없으리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듣고 내심 걱정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 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지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났다. 바로 휴지를 덜 쓰는 거다. 휴지는 나무를 베어서 만드는 거니 휴지를 많이 쓰는 것은 곧 지구 자원을 낭비하는 것과 같다. 또 휴지는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화학물질들을 첨가하기 때문에 피부 건강에도 안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대체품이 별로 없기 때문에 휴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쓸 때마다 찜찜하지만 달리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안 입는 내복을 잘라서 천휴지를 만들기로 했다. 그 생각 한 거 만으로도 내가 대견스러웠다. 아껴쓰고 절약하는 짠돌이 개념이 아니라 내가 지구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그 사실이 기분 좋았다.

내복은 질이 좋은 순면으로 만든 거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감촉이 좋다. 그리고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씻어서 계속 사용할 수 있으니 자원을 아끼는 측면에서도 좋다. 그리고 화학 물질로 인한 폐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식구끼리만 사용하니 껄끄러울 것도 없다.

우리 집 화장실엔 휴지가 없다. 대신 곱게 접은 천휴지가 있다. 크고 작은 볼 일을 볼 때마다 천휴지를 사용한다. 그 때마다 살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좋아서 기분이 좋다. 볼 일을 본 다음 비데를 이용해서 씻어주고 그 다음 천휴지로 닦아주니 보드랍고 부드럽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괜히 뿌듯하다. 지구를 위해 내가 뭔가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실체가 없는 존재였던 '지구'가 지금은 가깝게 느껴진다. 지구의 고통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태그:#환경, #지구 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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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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