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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여수의 S아동복지시설에서 입사초년생인 사회복지사가 가해자인 원장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강제로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는 여수성폭력상담소에 신고했고 상담소는 사건 발생 이후 현재까지 3년 동안 피해자 치유를 위한 심리상담과 의료지원, 법률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법적처벌을 원하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소로 경찰의 조사가 진행된 후 아동복지시설의 원장과 시설법인에서는 참고인인 사회복지사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통해 거짓 진술을 하도록 교사했다.

 

가해자의 말 바꾸기와 참고인들의 거짓 진술로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은 공소유지가 안된다며 증거불충분에 의한 혐의 없음 판결을 내렸고, 이에 불복한 피해자는 항고, 재항고를 거듭했지만, 끝내 대검찰청으로부터 항고기각 처분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피해자는 결국 민사소송을 택했고, 사건을 접수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1민사부는 2008년 2월 4일 5시간에 걸친 심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 당시 피해자와 함께 근무하고 검찰조사에서 참고인으로 조사 받았던 사회복지사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회유와 협박으로 검찰조사에서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진술을 번복했음을 시인했다. 나머지 참고인들도 탄원서를 통해 원장의 변태적 성행위와 본인들도 피해자였음을 밝혀 2008년 2월 21일 결국 피해자는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하지만 가해자는 1심에 불복하고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2009년 2월 26일 오후2시 대법원은 지난 2006년 5월 여수에서 발생했던 아동보호시설 원장에 의한 사회복지사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가해자인 피고 원장 S씨와 그 시설법인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 피해자와 그 가족들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인한 충격과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울분에 싸여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심한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가족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당하고 사회 공동체에 대한 불신으로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심리적 치유를 위해 여수성폭력상담소를 찾은 피해자 어머니를 만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사건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처음 딸한테 그 소리를 듣는 순간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실이 확실하니까 법이 진실을 밝혀줄 거라 생각했는데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을 때 국회의사당 앞에 가서 시위를 하려고까지 생각했어요.  가진 것 없고 배운 게 없어서 이렇게 당하는구나 싶어 우리나라가 너무 싫어 이민가고 싶었지요. 죽으면 진실이 밝혀질까 싶어 죽으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일각에서는 대학교를 졸업한 성인인데 왜 반항이나 현장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됐고, 가해자도 화간이라고 설명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 처음에 왜 반항이나 현장을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딸은 처음에 울면서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거절하면 죽을 것 같았고 원장이 무서웠다는군요. 아이는 검찰에서 조사 받는 동안 화장실에서 하혈을 5번이나 했어요. 딸은 성격이 온순해서 검찰에서 조사받는 동안 덜덜 떨었어요. 대학시절 현장 실습 나가면 노인요양시설이라 냄새나서 다들 싫어하는데 스스로 나서서 열심히 하고 왔던 아이였죠. 하루는 치매 할머니가 비벼 먹던 밥그릇에 물을 주는데 받아먹고 왔다고 하더군요. 마시지 말지 그랬냐고 했더니 할머니가 나를 생각하고 줬는데 어떻게 마시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그러더라고요. 딸이 그런 아이입니다. 저도 너무 무심했지요. 하루는 식당에서 밤12시까지 일하고 있는 데 '엄마 나 너무 힘들어' 하면서 딸이 울었어요. 저는 '원래 사회가 그렇게 힘들다 그러니 참아라'만 했어요. 딸이 울면서 출근하는 걸 보면서 엄마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미안해 우는 줄 알았어요.

 

- 이 사건을 그럼 어떻게 아시게 됐는지요.

"하루는 남편이 아이가 자꾸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 딸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 알아보라고 해서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남편은 사회와 검찰 결정에 대한 울분으로 차를 과속으로 몰아 죽으려고도 했어요. 딸도 자신이 죽으면 원통함이 밝혀질 거라는 생각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복용하던 일주일 분의 약을 한꺼번에 먹기도 했지요. 9층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으려고 해서 그 뒤부터는 혼자 두지 않았고, 밤에도 엄마 아빠가 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고 자도록 했지요. 딸만 생각하면 눈물만 나요. 대검의 결정이 난 후 인터넷에서 딸이 '꽃뱀'이라는 뉴스가 돌았죠. 제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장 바닥에 나가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려고 했어요. TV에 보도되는 사건들은 다른 사람 일로만 생각했어요."

 

"피해자가 자살하겠다는 이메일도 보냈어요"

 

피해자 보호하고 상담을 계속했던 여수성폭력상담소 강정희 소장 역시 지난 3년 동안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성폭력피해자 대부분은 순하고 착하며 조직 내에서 성실하고 순응적인 사람으로 자기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피해자는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에서 동료들이 경찰의 초동조사에서 했던 진실을 번복하고 대검찰청의 재항고 기각이후 꽃뱀으로 몰릴 때 '세상 살기 싫다. 너무나 힘들다. 죽고 싶다. 제가 죽음으로써 결백을 증명을 증명한다면 원장의 소름끼치는 범죄사실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질 수 있을까요?'라는 메일까지 보냈어요. 그래서 제가 절대 죽으면 안 된다. 네가 죽으면 어느 누구도 진실을 밝힐 수 없다. 피해당사자는 너이기 때문이다'며 성폭력피해를 극복하고 딛고 일어나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례를 얘기해 줬어요. 이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지속적인 심리치료와 모래놀이치료를 통해 치유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 법원 결정이 바뀐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참고인이자 피해자의 친구인 XXX외 1명이 2006년 4월 중순경 성폭력피해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습니다. 첫 번째 경찰 조사이후  가해자 측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거짓 진술을 하고 급기야 검찰조사를 받기 전 가해자의 집에 불려가 협박을 받고 잘 알지도 못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검찰조사에서 거짓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무혐의처분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였죠. 항고와 재항고를 거쳤지만 대검의 기각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거짓진술을 해야 했던 참고인들도 대인기피증과 엄청난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시달림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했습니다.  진실과 멀어져 갔던 참고인들의 양심고백이 이어지면서 민사법정에 직접 출두하여 사건의 진실을 증언하고 다른 참고인들도 탄원서를 제출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됐습니다.  

 

- 이번 대법원 판결이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간 검찰에서 피해자가 미성년자 또는 장애인이 아니라는 점과 피해 당시 폭행과 협박에 의한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불기소처분을 해왔던 관행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성폭력에 대한 최협의적인 해석으로 인해 피해자의 고통이 배가 되었음을 감안하면 이번 민사소송 판결은 우리 사회와 법이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판단을 다시 한번 재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상담소장과 피해자가 3월 10일에 주고받은 통화내용이다.

 

- 그동안 가장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꽃뱀이라고 했던 사회의 시선들과 피해자인데 숨어 지내야 했던 것, 그리고 죄를 지른 가해자가 오히려 더 당당했던 모습에 너무 힘들었어요"

 

- 상고기각 판결을 받은 후 심정은.

"마냥 좋아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입니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이제 떳떳해진 기분입니다"

 

대법원 판결과 상담치료를 받은 이후 피해자는 점차 변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기사를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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