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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의 모진 추위를 이겨 내고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피어나는 매화는 꼿꼿하면서도 매혹적인 자태로 인해 지조와 절개를 지키고자 했던 옛 선비들과 뭇 시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왔다. 또한 추운 겨울 내내 움츠러진 우리들에게 따뜻한 봄소식을 전해 주는 봄의 전령사로서 인기 있는 꽃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 14일 백운등산클럽 회원들과 함께 매화꽃도 보고 산행도 즐길 수 있는 전남 광양시 백운산(白雲山, 1218m) 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백운산, 매봉, 갈미봉, 쫓비산을 오른 뒤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로 하산하는 산행 코스라 꽤 많이 걸어야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힘든 산행 끝에 섬진강과 어우러져 피어나는 매화를 구경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끌렸다.

 

오전 7시 35분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이 진틀마을(전남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9시 45분께였다. 그날 전국 곳곳에 한파와 강풍주의보가 내려져 꽃샘추위는 예상했지만 산악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싸락눈이 날리기 시작해 당황스러웠다.

 

백운산에서 봄 속의 하얀 겨울을 맞다

 

40분 남짓 걸어가니 진틀삼거리가 나왔다. 우리는 거기서 신선대로 가서 백운산 정상에 오를 예정이었다. 거센 바람이 불어 대는 탓에 눈길이 점점 더 미끄러워졌다.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기가 귀찮아서 그냥 버티다가 너무 미끄러워 어쩔 수 없이 아이젠을 등산화 밑에 덧신었다.

 

황홀한 마음이 그런 것일까, 신선대에 가까워지자 나뭇가지에 마치 흰 꽃이 핀 것처럼 생각지 못한 멋진 상고대가 피어 있는 게 아닌가. 겨울이 우리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마지막 선물을 주고 주춤주춤 뒷걸음치는 듯했다. 아무튼 매화를 보러 봄 산행을 왔는데 겨울 산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으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강한 바람 때문에 손이 시려 오고 뺨도 얼어붙는 것 같았다. 신선대에서 15분 정도 걸어가자 하얀 눈으로 뒤덮인 백운산 정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겨울이 봄을 시샘한 것일까. 산행을 나설 때 이렇게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바윗덩어리인 백운산 정상에 이른 시간은 11시 50분께. 바람이 드세게 불어오고, 오르내리는 등산객들도 많아 위험했다. 게다가 매봉으로 가는 길을 못 찾아 잠시 헤매기도 했다. 매봉으로 가는 길에도 차가운 바람이 어찌나 불어 대는지 귀가 시렸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한참 걸어가다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무화과잼을 바른 빵을 배낭에서 꺼내 먹었다.

 

오후 1시 30분께 매봉 정상에 도착했다. 표지석이 없어 쓸쓸한 느낌이 들었는데  나뭇가지에 묶어 둔 리본들만이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말해 주고 있었다. 거기서 300m 정도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쫓비산까지는 8.8km. 나는 일행과 함께 쫓비산 쪽으로 내려갔다. 바람이 잠잠해서 따뜻한 봄을 느낄 수 있었던 길이다. 그러나 꽃도, 잎도 없는 황량한 산길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으니 지루하기도 했다.

 

갈미봉(519.8m)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15분께. 그곳에서 15분쯤 더 가자 탁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는 바위가 있었다. 멀리 지나온 백운산도 보이고 지리산 천왕봉도 아스라이 보였다. 무엇보다 잔잔히 흘러가는 섬진강 풍경에 내 마음이 설렜다.

 

매화 향기 은은한 광양 매화마을로

 

오르막길이 점점 더 힘겨워졌다. 4시 15분께 쫓비산(536.5m) 정상에 이르렀다. 어떤 사연으로 붙여진 이름일까. 슬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산 이름이 예쁘다. 한참 동안 내리막길이 이어졌는데 같이 가던 일행이 외치는 한마디, "매화다!"

 

드디어 매화마을(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들어섰다. 본디 이름은 섬진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아름다운 섬진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고, 이른 봄이면 온 마을이 매화꽃으로 뒤덮이면서 축제가 열리게 된다. 그날은 마침 광양매화문화축제 첫날이라 매화꽃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아직 매화꽃이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섬진강과 어우러진 매화마을의 봄은 참으로 정겹고 따뜻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정다운 사람이 곁에 있고, 고요한 강이 흐르고, 도란도란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매화의 은은한 향기에 취해 사랑하는 사람과 거닐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매화꽃으로 피어나는 듯한 예쁜 환상에 젖게 될 지도 모른다. 7시간 동안 걸었으니 그날 많이도 걸은 셈이다. 그래도 매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힘든 산행도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 3월 14일부터 열린 제13회 광양매화문화축제는 3월 22일까지 9일 동안 열립니다.


태그:#매화마을, #백운산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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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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