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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운전한 그라프톤에서 하비베이까지 거리는 650킬로미터 정도다. 하루에 600킬로미터 이상 운전하는 것은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운전만 한다면 더 먼 거리도 운전할 수 있지만 주위 경치도 구경하면서, 운전 자체도 여행의 일부분으로 즐기기에는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도책을 아내와 함께 보며 의논한다. 다음 목적지는 약 400킬로미터 떨어진 예푼(Yeppoon)이라는 동네로 잡았다. 중간에 큰 도시들이 있긴 하지만 가능하면 복잡한 도시는 피하며 예푼에 도착했다.

 

예푼은 바닷가에 있는 조그마한 도시다. 리짓스(Rydges)라고 이름 붙은 고급 호텔과 함께 잘 가꾸어진 골프장도 있다. 관광객과 배낭족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조그마한 마을치고는 상권이 꽤 큰 편이다. 이렇게 좋은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곳에 사는 사람도 늙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 있기에 생각 없이 국립공원을 목적지로 잡고 운전하였다. 해안을 따라 조금 달리니 아름다운 초원과 국립공원답게 울창한 산림이 펼쳐진다. 계속 운전해도 특별히 들릴 곳은 보이지 않고 드문드문 작은 집들만 보일 뿐이다.

 

도로가 거의 끝나는 곳에 커피를 파는 간판이 있다. 차에서 내려 좁을 길을 따라 들어가 보니 조그만 휴양지가 우리를 맞는다. 아담하게 잘 정돈된 휴양지다. 수영장이 있고 잘 정돈된 산책로도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외진 곳에 와서 무엇을 할까? 더 갈 곳 없는, 그리고 특별한 관광지도 없는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모든 문명과 관계를 끊고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는 것일까? 산책하고, 책이나 보면서 그러다 더우면 물에 들어가 식히고….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비싼 돈을 주고 휴양지 관광을 떠났는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어떤 외국인은 구경할 생각은 안 하고 바닷가에서 책만 보고 있더라는 이야기….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며 똑같은 방법으로 여행을 즐길 이유가 없는 것처럼 인생도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은 생각과 같은 몸짓으로 뛰어갈 필요가 있는가? 외국 살면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의 눈치 안 보고 자신만의 삶을 살면 인생을 즐기는 외국인에 대한 부러움이 생긴다.

 

다시 돌아가는 길가에는 자그마한 초등학교가 있다. 한국에서 선생 할 때 가보았던 오지의 학교를 생각나게 하는 학교다.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20명은 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곳은 학교 건물이라도 있으니 나은 편이다. 호주 내륙으로 들어가면 많은 학생이 학교도 없이 집에서 방송으로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호주의 교육방송은 세계에서 알아준다고 한다.

 

산책길에서 만난 어느 중년 여인은 나 보고 일본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본다. Hello를 일본어로 어떻게 하느냐, 고맙다는 말은 어떻게 표현하느냐 등 일본어에 대해 관심이 많다. 딸이 고등학생인데 일본 학생 한 명이 자기 집에 얼마간 머무를 예정이란다. 일본의 어린 학생이 이런 한적한 시골에 찾아오는 용기도 대단하거니와 살고 간 후에 호주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궁금해진다.

 

이곳에는 케플(Great Keppel Island)이라 불리는 섬으로 가는 선착장이 있다. 섬에는 배낭족을 위한 YHA등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선착장에는 젊은 배낭족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도 않거니와 몇 개월 이상을 더 여행해야 하기에 섬까지 들르며 여행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대신 선착장에 붙어 있는 섬에 대한 사진과 글로 대신하였다.

바닷가 언덕진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 낚시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앉아 있던 사람이 자동차 클랙슨 같은 소리를 낸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오늘 요트 경기를 하는데 첫 번째 요트가 들어오기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한다. 요트 경기 진행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뒤에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도시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말 한가하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 물론 그 사람들 생활에 들어가 보면 그들 나름대로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스트레스가 없는 삶 그 자체로 보였다. 시드니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집값에 전망 좋은 집을 구할 수 있고, 아름다운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아마 이곳에 사는 사람은 큰 도시에 살면서 물질문명에 취해 사는 도시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했던가?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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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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