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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아들, 손자 3대가 함께 달래 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달래를 팝니다. 아들과 손자가 옆에 있으니 '옴마(엄마)'는 힘든줄도 모른채 한 개라도 더 파기위해 아들, 손자를 채근합니다.

 

달래는 1kg에 2,000원 받습니다. 땅을 파헤쳐 달래를 뽑아 올리고, 가려서 소쿠리에 담았다가 큰 비닐 봉지에 담습니다. 집에 가져가  일일이 손질을 하고 깨끗이 씻어 놓으면 중간 도매상이 트럭을 몰고와서 동네 방네 다니며 걷어 갑니다. 손질 하기가 예삿일이 아닙니다.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없애고 상품으로 만들어 놓은것을 1kg당 2,000원에 사갑니다. 하루종일 일해도 2,3만원 벌기 어렵습니다.

 

 차츰 게으름을 부리는 손자한테 할머니가 아들(아빠) 얘기를 해줍니다.

 

 "니 아빠는 어렸을 적에 보리밭 김매기를 잘 했단다." "지금쯤이면 4형제가 보리밭에 앉아서 김을 매는데... 제일 큰 애(아빠)는 그럭저럭 시키는대로 하는 편이었고, 둘째는 김을 매는 둥 마는 둥 앞으로 나가기에만 바빴고, 셋째는 그 자리에 앉아 보리밭을 뭉개고 있었고, 막내는 일이 하기 싫어 하늘 한번 처다보고 땅한번 처다보고 자꾸만 먹을거 달라며 보챘지."

 

  

30여년 전 얘깁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렵던 시절 얘깁니다. 보리밭 김매기를 열심히 해야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실겅(선반) 위에 보리를 삶아 놓았다가 적은 양의 쌀과 섞어서 가마솥에 밥을 앉혔지요. 산에서 가져온 소나무 잎사귀(갈비)와 잔 솔가지를 아궁이에 넣어 불을 지피면 시간이 지나  솥이 눈물(?)을 흘립니다.  밥이 다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아궁이의 불을 물려 내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대로 두면 누룽지만 잔뜩 생깁니다. 약간의 시차를 두었다가 뜸을 들이면 맛있는 밥이 됩니다. 

 

 

엄마와 아들이 30년전 얘기를 나누며 달래를 팝니다. 옆에 있던 손자에게는 30년전 옛날 얘기가 마치 원시시대 얘기처럼 들립니다.

 

 엄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밥을 했습니다. 도시락도 네 개나 쌌습니다.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불을 피워 밥을 하고 도시락을 준비하다 보면 동이 틉니다.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낸 후 밭에 나가 하루종일 들일을 합니다.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와 밥을 하고 반찬 만들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까지 끝내면 잠이 몰려 옵니다. 참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도 잘 살았는데 지금이 뭐가 어렵다고 난리고?"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욕심만 많아져 가지고 그런거지!"  "자꾸 편해질려고만 하니까 그렇지!" "좋은 차 타고 싶고, 평수 넓은 아파트 사고 싶고, 밥 하기 싫어 외식하고 싶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새참 시간에 외삼촌이 과자와 술을 들고 왔습니다. 누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누나와는 나이 차이가 15년 정도 됩니다. 먹을게 없어서 입 하나라도 덜어 주려고 시집 갔던 얘기까지 나옵니다. 눈물나는 사연입니다.

 

 "그 때 생각하모, 지금은 어려운거 한개도 없다." "부지런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라." "자식들 먹여 살릴라모 뼈빠지게 일해야지 우짜것노?"

 

 

 하마터면  "엄마? 달래 밭에 심겨져 있는 것 다 파서 팔면 얼마나 되는데?" 라고 물어볼 뻔 했습니다. 하룻저녁 술값만 아껴도 될텐데라고 생각하다가 말입니다.

 

 엄마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소중한 달래인데... 돈 보다 더 소중한 '소일'거리인데...힘듦과 어려움이 곧 삶이었는데...

 

 "그때도 잘 살았는데 지금이 뭐가 어렵다고 난리고?"  아직도 귓전에 맵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달래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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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들로 다니며 사진도 찍고 생물 관찰도 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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