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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집
 바닷가 집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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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중반을 훌쩍 넘긴 제가 오래전부터 꿈꾸는 생활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 자라 본인들 스스로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을 때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공기 좋고 주변 풍경도 좋은 시골마을에 터를 잡으리라고. 그 집은 제법 널따란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고, 마당 한편으로는 텃밭도 있어서 채소를 심고 거둘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잘 꾸며진 정원보다는, 계절마다 저 스스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씨앗을 맺는 야생화들이 각자 편안한 모습으로 자라는 꽃밭도 있으면 좋겠고, 우리 부부가 손수 농사지은 곡식을 자식들에게 보따리 보따리 챙겨 주는 재미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꿈꾸어 오던 비슷한 조건을 가진 집으로 남편이 혼자 이사를 했습니다. 마산의 어느 한적한 섬, 바닷가의 집으로 이사한 것입니다. 그 집은 손위 작은 시누이의 집으로 5년 가까이 비어 있었습니다.

집앞에는 바다가 바로 펼쳐져 있는, 평소 제가 꿈꿔 오던 환경과 흡사한 곳이었지만 제가 마냥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남편이 분주하게 이사를 준비하던 1월부터, 그리고 이사를 마친 후까지도 저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산가족입니다. 기러기 가족으로 살아온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올해 고3이 된 딸아이는 담양의 한빛고등학교 기숙사에 있고, 아들과 저는 서울에 살고, 남편은 경남 창원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경남 창원에 살았는데, 2007년 2월 초 동생이 서울 마포에서 영어학원을 개원하면서 제가 먼저 중학교 3학년생인 아들과 상경했고, 딸아이는 3월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담양으로 떠났습니다. 남편은 살붙이들을 이리저리 떠나보내고 홀로 창원에 남겨졌습니다.

아들과 저는 서울로 올라온 후, 창원의 아파트와 가게를 정리한 돈으로 서울에 30평대 오피스텔을 마련했습니다. 오피스텔이라고 하지만 창원의 32평 아파트와 가게를 정리한 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은행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마누라와 아들이 살 거처를 마련해 준 남편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15평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매월 남편과 제가 버는 수입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다달이 들어가는 은행이자와 월세, 두 아이의 고등학교 수업료와 한 달에 두어 번씩 고속버스를 타고 창원과 서울을 오가는 교통비가 만만치 않았던 까닭에 저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올해 대학입학을 앞둔 고3 딸과 고2인 아들이 있기에 두 아이의 등록금을 미리 마련해야 하는 우리 부부는 어떤 방법으로든 지출을 줄여야 함에도 쉽게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각자 마음만 졸였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마산의 구복에 있는 누나네 빈집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집은 몇 년째 비어 있어서 당장 사람이 입주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환경이었습니다. 그 빈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 남편은 1개월이 넘게 집수리를 했습니다. 방 한칸에는 아궁이를 만들어 커다란 솥도 걸고 방에는 황토를 깔았습니다. 집안 곳곳의 전기공사도 새로 해야 했고, 화장실도 손을 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진입하는 길에는 트럭 한대분의 자갈도 깔았습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이사를 준비하는 남편을 멀리 서울에서 지켜보는 저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마누라도 자식들도 곁에 없는 썰렁한 집, 그것도 자동차로 1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출퇴근을 감내하려는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고 또 마음 한켠이 짠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매달 40만원의 월세와 10여만원의 관리비를 1년 동안 절약하면 고3인 딸아이의 대학 등록금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이 마산의 바닷가 집으로 이사를 감행한 날은 2월 12일이었습니다.

마산 구복면 저도 바닷가에 위치한 집
 마산 구복면 저도 바닷가에 위치한 집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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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바닷가집으로 이사한 날로부터 1주일이 지난 후에야 봄방학을 맞은 아들과 함께 마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사를 마친지 여러 날이 흘러 제법 사람사는 구색은 갖추고 있었지만, 안주인 없는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흐린 하늘과 을씨년스러운 집안 분위기와는 달리 울타리의 홍매화가 이제 막 꽃봉오리를 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먼 길 찾아온 아들과 마누라의 피로를 풀게 해주겠다며 황토방 아궁이에 연신 장작불을 지폈고, 저는 집 앞 갈대밭을 헤매며 이른 봄나물을 캤습니다. 쑥 향기 가득한 저녁상을 차리면서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이들만 다 자랐다면,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위해 책임질 수 있다면 미련없이 모두 떠나보내고 이렇게 남편과 오순도순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 부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두 아이가 있기에, 그런 여유로운 생활은 꿈꾸기에는 너무 이른듯합니다.

그날 이후 저는 한번 더 마산 바닷가 집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당시 작은 꽃망울을 틔우던 홍매화는 화려하게 만개하였고, 은은하게 온 집안을 감싼 향기로운 매화꽃향기가 있어 마누라 없는 남편의 적적한 생활이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았습니다. 남편 또한 새로운 환경에 나름대로 잘 적응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집 앞에 펼쳐진 갈대밭을 깨끗하게 정리해놓고 그곳에 매화나무를 심을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지금은 서로 떨어져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고 저를 위로해 주는 남편이 더욱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남편의 월급날이 하루 지난 16일, "오늘 새마을금고 50만원 3년 적금 넣었음! 힘냅시다!" 이런 문자가 저의 휴대폰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르 돕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 없이 답장을 날렸습니다. "그래요~ 우리 열심히 힘내요~화이팅!!! 마눌~"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오고 있는 멋진 남편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오고 있는 멋진 남편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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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남쪽바다, #홍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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