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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가 이 죽 먹으려고 두 시간 동안 차 몰고 여기까지 온 거네요?"

"어? 그게 그런가? 하하하."

"누가 알면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겠어요?"

"어? 그러게?"

"……."

"……?"

 

잊히지 않는 죽 맛을 찾아

 

우리 부부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마주 보며 실없이 웃고 말았다. 맛 간 사람들 아니고야 이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린 그 맛 간 짓을 하고야 말았다. 죽 한 사발을 먹기 위해 아침부터 그렇게 우리 부부는 죽이 맞았나 보다.

 

물론 막 만난 남녀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차로 드라이브 하면서 오고가며 상큼 달콤한 밀어를 즐기면 되니까. 어딜 가는지, 무엇을 먹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예전에 우리 부부도 연애시절에 그런 경험을 하긴 했었다. 근데 지금은 결혼한 지 30년을 바라보는 때가 아닌가.

 

근데 자신들의 상황과 나이도 망각하고 죽 한 사발을 먹기 위해 충남 연기에서 전북 변산까지 갔으니, 누가 미쳤다고 해도 별 도리가 없다. 방어할 아무런 능력도 없다. 하지만 어쩌나. 그놈의 죽 맛이 안 잊히는데. 꼭 그 죽 때문만이라고 말하기에는 어패가 있긴 하지만….

 

몇 년 전 서울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다. 관악구 교회협의회에서 수련회를 한 적이 있는데 장소는 변산온천이었다. 그때 먹었던 바지락죽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근데 하필이면 왜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변산온천의 어느 음식점에서 먹은 바지락죽이 생각나는지.

 

모처럼 근무가 없는 날이다. 아침부터 아내를 졸라 여행을 하기로 했다. 장소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 아내가 요즘 배가 좋지 않은 걸 아는지라 배려할 겸 바지락죽이 유명한 변산이 어떠냐고 했다. 아내는 만날 그렇듯 좋다고 맞장구를 친다. 변산 얘기가 나오자마자 아내도 '그 죽' 애기를 한다.

 

이렇게 아침부터 죽이 맞은 우리 부부는 결국 죽을 찾아 변산으로 달렸다.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콩나물지도를 찾아보니 3시간이나 걸린다고 나왔다. 좀 멀긴 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결정한 것을 어쩌랴. 차에 앉아 기어이 시동을 걸었다. 죽을 찾아 죽 맞은 부부를 태우고 차는 변산으로 내달렸다.

 

굳이 바지락죽 원조집을 찾아

 

 

과속을 한 탓(요런 때 넘 솔직해서 손해 보는데도 그 '솔직이'를 떼버리지 못하고 있다)도 있긴 하지만 콩나물지도와 내비게이션은 한 시간의 갭이 있었다. 콩나물지도에서는 분명히 3시간 5분 걸린다고 나왔었는데, 차에 앉아 내비게이션을 켜자 잠시 후 2시간 49분이 걸린다고 표시했다.

 

좀 달리다 보니 점점 시간이 줄더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표시하더니 결국 5분 모자란 2시간만에 우리의 목적지 '변산온천산장'에 이르렀다. 도착하니 시간은 11시 57분. 그렇게 우리는 죽을 먹기 위해 기어이 그 산장에 이른 것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파를 다듬던 아주머니들이 첫손님인 우릴 반갑게 반긴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며 "죽 먹으려고 두 시간을 왔네요"라고 개선장군처럼 말하는 아내. 그게 무슨 그리 자랑할 거리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노릇이니 그리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바지락죽과 백합죽을 파는 집들이 즐비한 길거리를 다 지나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소위 원조집을 굳이 찾는 그 고집은 또 뭔가.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과 교인들이 교회를 찾아가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굳이 집 앞에 있는 교회를 두고 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가는 교인들. 불자들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절 다 놔두고 굳이 하루 종일 가는 절을 다니는 불자들이 있다.

 

우리 부부가 그 원조집을 찾아 길가의 음식점을 지나 꼬불꼬불한 길을 돌아간 것하고, 성도나 불자들이 가까운 교회나 절을 다 지나 자신들이 적을 둔 교회나 사찰로 가는 게 같은 이유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거기에만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으리라.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죽 맛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오래지 않아 다른 한 팀이 시끌벅적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후 계속하여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다. 두 남자가 우리 바로 앞자리에 자리하더니 서로 이렇게 주고받는다.

 

"이 집에 영향이 많겠어."

"그러게 바로 이 집으로 들어오기 전 앞집에 버스가 두 대나 있더라구."

"이 집이 가장 먼저 바지락죽을 개발한 원조집인데. 다른 집들이 너무 많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어. 다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야?"

"그러게 말이야. 이태 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들도 우리처럼 굳이 이 집을 찾아온 원조지향족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몇 해 전 풍기에 떡갈비로 유명하다는 원조집을 굳이 물어물어 찾아갔다가 기분 잡친 적도 있었다. 맛이 없어서 말이다. 혹시 이 집도 맛이 변했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되었다. 그러는 사이 상이 차려지고 두 시간이나 걸려 달려온 목적인 문제의 바지락죽 한 사발씩이 나와 아내 앞에 놓인다.

 

"드시고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하셔요."

 

싹싹한 아주머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죽사발을 놓고 간다. 그러니까 바지락죽이 리필이 된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이냐. 하지만 우리 부부는 양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소식족이니 그런 말은 그리 달가울 리는 없다. 하지만 인심 좋음에 마음은 흐뭇하다.

 

죽 맛이 문제다! 한 숟가락 저며 물었다. 역시 맛에 변함이 없다. 굿! 굳이 이곳으로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정갈한 반찬들도 가지런하다. 다른 반찬들이야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이 집만의 특별한 반찬이 한 가지 있다. 다름 아닌 콩나물이다.

 

콩나물무침도 아니고, 콩나물국도 아니다. 콩나물장아찌도 아니고 콩나물절임도 아니다. 하여튼 콩나물을 어떻게 한 것인지 머리는 어디 가고 줄기만 남았다. 줄기도 통통함은 사라지고 한껏 다이어트를 했다. 그리고 빠알간 옷은 얼마나 예쁜지. 그 아삭거림과 새콤함에 한 접시 더 달라고 해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벽에 걸린 매스컴 탔다는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는데, 칡을 캐다가 직접 끓여 만든 칡차를 주인아주머니가 건넨다. 맛이 참 좋다. '변산여행이 죽 맛만큼이나 죽이 맞는 여행이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나와 차에 올라 곰소로 출발했다.

덧붙이는 글 | *3월 6일, 여행 후 기록한 글이며 [변산여행②]에서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음식점을 선전하는 글이 될까 봐 노력을 했는데도 혹 그렇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 같군요. 이해해 주시길...
*이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변산반도, #변산온천산장, #변산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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