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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학점 맛과 양의 밴댕이 회덮밥에다 박하지 간장게장과 누룽지밥이 공짜  

 

군소리 싫어하는 분한테는 좀 미안한 노릇이지만, 그렇더라도 내 식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내가 <상인신문(재래시장신문)> 편집국장을 할 때인 2006년의 일이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한 기쁨을 맛본 아버지가 모래내 시장에서 속옷 전문점(쌍방울 보디가드)을 하고 있어서 '화제의 인물'로 인터뷰를 했었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수시전형에 합격한 이창희군이 겨우 걸음마를 시작할 적에 시작한 속옷장사를, 이군이 유치원에 다닐 때 모래내 시장으로 옮겨와서 아직까지 하고 있는데, 불황에도 그런 대로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었다. 오로지 한 우물만 파기로 했다면서 속옷 장사를 고집하는 이상화씨가, 나에게 좋은 데 있으니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권했다.

 

속옷장사의 달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씨가 권하는 잘하는 음식점은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물어봤더니 회덮밥집이라고 했다. 그래서 흔히 보는 회덮밥집이겠거니 생각하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래내고개 정상에서 문성여상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가는 복개천 길의 코너에 '강화 밴댕이'라는 간판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생선회와 해물탕도 팔지만 그곳에서 대표 메뉴로 내세우고 있는 음식은 바로 1인분에 6000원짜리 밴댕이회무침이었다.

 

밴댕이회무침이라고 해서 밴댕이를 무쳐놓은 것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밥도 나오고 상추가 들어간 비빔그릇도 나온다. 바로 비빔그릇에다 밥과 상추와 밴댕이를 넣고 비벼 먹는 것이다. 특별한 소스로 밴댕이무침이 무쳐져 있으므로 따로 초장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참기름만 좀 넣으면 되었다.     

 

게다가 된장국도 나오고 박하지 간장게장도 나온다. 다른 밑반찬도 있지만 박하지 간장게장이 최고였다. 그런데 밴댕이무침 2인분이 왜 이렇게 많은가. 둘이 비빔그릇에 가득 넣었는데도 많이 남았다. 그런데 공기밥 한 그릇을 추가요금을 받지 않고 더 주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작은 항아리에 누룽지밥이 담겨져 나왔다. 구수한 누룽지에다 구수한 숭늉 맛이라니…  

 

3년이 지났으니 값이 오른 건 아닐까?

 

나는 그런 최고의 맛집을 소개시켜 준 속옷 전문점 사장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몇 번 찾아가곤 했는데,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내가, 어느 때부터 집에서 밥을 해먹어 버릇하면서 한동안 찾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인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두 군데 밴댕이회무침 집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강화 밴댕이'의 밴댕이회무침보다 맛도 훨씬 떨어질 뿐만 아니라(소스의 차이), 양도 훨씬 적었다. 양이 적다 보니까 심심하게 무쳐 먹어야 했다. 게다가 박하지 간장게장도 아니고 작은 꽃게 무침게장이었다. 간장게장의 맛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박하지 간장게장은 정말 맛있다. 입가심을 해줄 구수한 누룽지밥과 숭늉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비교가 되고 보니 그 두 집은 다시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속옷 전문점 사장의 소개로 처음 '강화 밴댕이'를 찾은 뒤로 2년 가까이 흘렀을 때 교통사고로 동네 정형외과의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때 한 병실에 있는 환자한테 '강화 밴댕이'집을 얘기했더니, "그때 6000원이면 7000원쯤으로 올랐을 것"이라면서, 언제 거기서 그걸 안주로 소주 한잔 하자고 말했다.

 

물가는 올랐어도 밴댕이회무침 3년 전 값 그대로

 

 

그러다가 2009년이 왔고, 처음 찾았을 때보다 3년 가까이 지났으니 밴댕이회무침 값이 정말 올랐을까 궁금해하면서 식당 안을 기웃거려 보았다. 그랬더니 다른 분이 주방장을 겸한 사장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값이 올랐건 어쨌건 한번 들어가 보자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친절하고 착하게 생긴 아가씨가 물통과 물컵을 가져다주며 "뭐 드시겠어요?" 하고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물 한 컵 달랑 가져다주는 집과는 다르다는 기분 좋은 느낌을 받으며 벽에 붙어 있는 메뉴표를 보았다. 밴댕이회무침 값은 6000원 그대로였다. 라면 등의 밀가루 음식 값 오르고 구월시장통의 순대국밥도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오른 것에 비하면 이것은 파격이었다.

 

나는 다른 메뉴를 볼 것도 없이 밴댕이회무침을 시켰다.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화 할 사이도 없이 빠르게 음식이 나왔다. 그때가 점심시간이 지난 한적한 시간대였기 때문에 빨랐겠지 생각했지만, 그 뒤에 갔을 때 손님이 꽤 있었어도 속도는 여전히 빨랐다.

 

 

 

밴댕이회무침은 여전히 양이 많았고, 박하지 간장게장도 먹을 만한 양이 나왔다. 나는 몇 년 전에 했던 식으로 상추가 든 비빔그릇에다 밥을 넣고 밴댕이회무침을 넣은 다음에 썩썩 비벼 먹기 시작했다. 업주는 바뀌었지만 과거와 맛은 바뀌지 않았다. 소스 맛이 그대로였던 것이다. 게다가 된장국 맛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박하지 간장게장 맛도 과거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싱싱한 데다 다른 집 간장게장보다 덜 짜다고나 할까. 그리고 깨끗한 새 망치로 짚게 부분을 살짝 두드려 주어서 입으로 깨물어 먹거나 벌려 먹기 좋게 해놓았다. 총각김치도 있었고, 구경하기 어려운 가리비젓갈도 있었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브루컬리도 있었다. 다 먹어갈 때쯤 누룽지밥도 작은 항아리에 담겨져 나왔다. 누룽지밥까지 알뜰하게 먹고 나서 커피 한잔. 커피는 셀프가 대세(大勢)니 내가 빼먹어도 되는데 20대 아가씨가 친절하게 빼다 주었다.

 

 

 

 

다 먹어갈 때쯤 누룽지밥도 작은 항아리에 담겨져 나왔다. 누룽지밥까지 알뜰하게 먹고 나서 커피 한잔. 커피는 셀프가 대세(大勢)니 내가 빼먹어도 되는데 20대 아가씨가 친절하게 빼다 주었다. 

 

 

알고 보니 서빙을 하는 두 분은 강화밴댕이집 대표 윤재정씨의 부인이고 따님이었다. 한 가족이 일을 하니 인건비가 절감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똑같이 벌어도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 맛이 좋다 보니 저녁 시간대가 되면 홀 안이 손님으로 가득 찬다. 밴댕이회무침만 찾는 것이 아니라 회를 먹으러 오는 손님도 많다.

 

알고 보니 윤재정씨가 횟집 전문이다. 1993년부터 구월시장 순대골목에서 횟집을 했던 것이다. 중간에 순대국집과 소머리국밥집을 잠시 해보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횟집을 해왔다. 최근에는 만수동 효성상아아파트 부근에서 횟집을 하다가, '강화밴댕이'집이 목도 좋은 데다, 밴댕이회무침과 더불어 자신이 전문인 회도 함께 팔 수 있어서 작년에 인수받았던 것이다. 물론 장사는 잘 된다.

 

싱싱한 상추 겉절이가 곁들여진 A학점 추어탕을 5000원짜리 새 메뉴로 추가

 

 

 

그런데 최근에 한 가지 메뉴가 추가됐다. 추어탕이다. 값이 5000원인데, 이것 역시 양도 많고 맛도 좋다. 살아 있는 미꾸라지를 식재료로 윤재정씨가 직접 갈아 만든다. 밴댕이를 안 먹는 손님이 있기 때문에 점심, 저녁 식사 메뉴로 추가한 것이다. 얼마 전에 서울 금호역 부근에서 먹은 6000원짜리 추어탕보다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게다가 마늘 빻은 것 한 종지와 청양고추 작게 썬 것 한 종지가 나왔다. 그것을 넣어서 먹으니 맛이 더 좋았다.

 

 

좋은 식재료, 음식을 만드는 정성, 친절한 서비스… 이렇게 3박자가 꼭 맞는 맛집이었다. 게다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서 한 가족이 음식점을 꾸려가는 지혜… 이런 건강한 마인드의 음식점은 어떤 불황이 와도 끄떡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밴댕이무침, #강화밴댕이무침, #모래내고개, #추어탕, #박하지간장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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