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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오디션 곡으로 연습하고 있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작품 26>
 대학 오디션 곡으로 연습하고 있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작품 26>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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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는 오늘도 브루흐와 바흐가 흘러나온다.

-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작품 26. 1악장
- 바흐 파르티타 2번 알레망드 / 지그

대학 오디션을 앞둔 그녀, 화장실에서 열심히 바이올린 활을 움직인다. 화장실뿐만이 아니다. 좀 널찍한 안방 벽장도 그녀의 연습실이다. 왜 하필 화장실과 벽장이냐고?

탁 트인 넓은 화장실은 공명이 좋아 콘서트홀의 분위기를 낼 수 있고, 사방이 옷으로 둘러싸인 벽장은 걸려 있는 옷들이 소리를 다 잡아 먹어(?)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다나, 어쩐다나. 그녀의 설명이 아리송하기만 하다.

왜 널찍한 거실이나 방을 마다하고 화장실이나 벽장으로 숨어 들어가 연습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엄마, 바이올린 전공하고 싶어."

지난해 가을, 여름방학이 끝나고 단풍이 곱게 물들던 날이었다. 대학 원서를 써야 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때, 딸로부터 느닷없는 얘기를 들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싶다고. 그러니 레슨을 받아야겠다고.

'에엥 뭐라고? 이제 와서 레슨을 받아 보겠다고? 더 어릴 때 시작했어도 늦었다고 할 판인데 지금 와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겠다고?'

바이올리니스트가 꿈?

큰딸은 원래 엔지니어가 되는 걸 꿈꾸었다. 문과 출신인 우리 부부와는 달리 딸아이는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보였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는 공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 있는 좋은 공대들을 손꼽아보며 딸이 갈 대학도 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공학 대신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수학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딸은 이미 고등학교에 개설된 모든 수학 과정은 다 마쳤고 혼자서 하는 인디펜던트 스터디를 통해 대학과정의 미적분도 모두 마친 상태였다.

시간만 나면 수학 책을 끼고 사는 딸을 보며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이 딸에게 말했다는 "수학을 전공하면 행복해질 거래"라는 예측이 실현되는 줄 알았다. 내심 기뻤다. 왜냐하면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니까.

딸은 우리나라 고3에 해당되는 12학년이 되어서도 수학을 전공하겠다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사람들이 대학에 가서 뭘 전공하고 싶으냐고 물을 때면 늘 "수학"이라고 대답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 딸이 지난 여름, 그동안의 결심을 번복하게 될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거버너스 스쿨(Governor's School)이었다. 거버너스 스쿨이란 고등학생 가운데 일부를 선발하여 주정부가 교육비 전부를 부담하는 일종의 영재교육 프로그램이다. 여기 선발된 고등학생들은 여름방학 한 달여 동안 대학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자신이 지원한 분야의 학문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인문과학, 수학, 과학, 의학, 시각 및 공연 예술 등으로 다양한 과목들이 제공되는 거버너스 스쿨에서는 각 분야별로 학생들이 모여 교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집중적인 탐구와 토론, 특별활동 등을 하게 된다.

딸아이는 이 가운데 공연 예술 분야의 바이올린을 지원하여 오디션을 거친 뒤 거버너스 스쿨에 가게 되었다. 리치몬드 대학에서 있었던 한 달 동안, 딸은 매일 바이올린을 연습했고 함께 온 친구들과 실내악도 하고 오케스트라도 하면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딸의 진로를 바꿔놓은 지난 여름의 특별한 경험 <거버너스 스쿨>.
 딸의 진로를 바꿔놓은 지난 여름의 특별한 경험 <거버너스 스쿨>.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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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너스 스쿨>에서 함께 연주했던 5중주단.
 <거버너스 스쿨>에서 함께 연주했던 5중주단.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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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딸의 바이올린 이력을 얘기해보자면.

딸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누구처럼 어렸을 때부터 유명 바이올린 선생을 두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던 '방과 후 활동'이 첫 시작이었다. 

딸이 학교에서 가져온 방과 후 활동 안내문에는 바이올린이 들어 있었다. 정경화, 이자크 펄먼 등의 바이올린을 들으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던 나로서는 눈길이 가는 '방과 후  활동'이었다.

레슨비가 3만원으로 대단히 싼 것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물론 여러 학생들을 놓고 하는 단체 레슨이어서 바이올린을 제대로 배우게 하고 싶어 하는 엄마들에게는 별 쓸모 없는 레슨이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그냥 취미로, 약간의 교양 정도로만 배우게 할 생각이었던 나는 그냥 '방과 후 바이올린'을 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바이올린이었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나온 1/2 크기의 연습용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그 뒤로 3/4 크기의 중고 바이올린을 10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샀고 6학년이 되었을 때는 4/4 크기의 현재 갖고 있는 풀사이즈 바이올린을 샀다. 사실 지금의 이 바이올린은 예술 전문 잡지인 <객석>의 애독자 카드에 당첨돼 받은 선물이다.

<객석>에서 바이올린을 선물 받게 된 나는 선물로 주는 바이올린 대신 조금 나은 바이올린을 받고자 바이올린 회사에 전화를 해서 웃돈을 주고 업그레이드했다. 전공자가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바이올린이다. 

바로 이 바이올린! <객석>에서 받은 바이올린에 웃돈을 주고 업그레이드했다. 인디애나 대학 오디션 연습실에서.
 바로 이 바이올린! <객석>에서 받은 바이올린에 웃돈을 주고 업그레이드했다. 인디애나 대학 오디션 연습실에서.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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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딸은 이렇게 바이올린과 인연을 맺었다. 딸은 '방과 후 활동'을 하면서 깽깽이 소리로 <작은별>도 연주하고 <유모레스크>도 연주했다. 어느 세월에 장영주 같은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까 고민조차 해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올린 선생으로부터 전공을 시키면 좋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중에 합주부에서 활동을 하면서 딸은 악장도 맡고 비발디의 <사계> '봄' 가운데 솔로도 맡을 만큼 두각을 나타내긴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한다는 건 보통 가정에서는 웬만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일찌감치 포기를 했다.

그냥 취미나 교양 정도로만 생각했던 터라 딸은 비싼 개인 레슨 대신 '방과 후 바이올린'만 열심히 다녔다. 나중에는 시간이 안 맞아 동네 바이올린 학원을 다녔던 게 딸의 바이올린 이력 전부다. 

깽깽이 소리로 뮤지컬 피트 오케스트라 시작

미국에 오면서 바이올린을 가져왔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특별활동이 많다고 들었던 터라 혹시 바이올린을 쓸 일이 있을까 해서였다. 두 딸 모두 한국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바이올린을 배웠다. 하지만 중학교에 가서는 중단한 상태였다(왜 우리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특별활동을 못하는 것일까?).

악기는 집에서 썩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다시 바이올린을 만질 기회가 생겼다. 두 딸이 학교 연극팀에서 해마다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의 피트 오케스트라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들이 했던 공연이다.

<수지컬(2006)>, <올리버(2007)>, <미녀와 야수(2008)>, <헬로우 달리(2009)>.

지난 2월에 끝난 2009 뮤지컬 <헬로우 달리>.
 지난 2월에 끝난 2009 뮤지컬 <헬로우 달리>.
ⓒ Jon Monroe·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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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지컬>에 참여할 당시만 해도 깽깽이 소리를 냈던 딸은 뮤지컬에 참여하면서 실력이 늘었다. 딸이 다니는 학교에는 오케스트라도 없어서 늘 혼자서 연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뮤지컬 덕분에 바이올린을 다시 만지게 된 딸은 선생 없이 혼자 연습한 실력으로 '올 버지니아(All Virginia) 오케스트라'에도 세 번 뽑혔다.

학교 음악 선생님은 딸이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남 다른 열정도 주목했다. 음악 선생님은 딸이 피아노도 치고 미국에 와서 처음 시작한 오보에로 디스트릭 밴드 오디션에 나가 두 번 뽑힌 것 등을 두고서 딸이 음악에 소질이 있으니 전공하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음악 전공을 고려했다가 포기했던 터라 나는 마음을 접었다. 딸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딸이 전공 대신 뮤지컬 오케스트라나 밴드에 참여하여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삶의 경험으로 음악을 접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딸은 정식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싶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재능이 있다면, 또한 그 재능에 발동을 걸게 할 열정만 있다면,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이제까지 가졌던 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음악을 하는 게 한국에서처럼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닐 것이기에 생각을 바꾸는 게 가능했다.

딸의 꿈은, 그렇게 될 수도 없겠지만 장영주 같은 최고의 솔로이스트가 되는 게 아니다. 좋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아름다운 음악을 평생 연주하는 것이다. 게다가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노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는데 어찌 그 말을 예사로이 흘려들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삶이 결국은 '행복찾기'일 터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딸이 정식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바이올린 선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같은 학교 밴드에 있는 아이 엄마가 바이올린 교수여서 레슨을 받기로 했다. 인디애나 대학 출신으로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학위를 받은 그 교수는 레슨비가 한 시간에 50달러였다. 한국에서라면 이런 경력의 교수로부터 레슨을 받는다는 건 우리 형편에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레슨을 시작했다. 한 시간 레슨이었지만 보통 두 시간을 넘겼고 어떤 때는 세 시간이 다 되기도 했다. 물론 레슨비는 50달러만 건넸다. 미안했지만 그 교수는 딸의 열정이 대단해서 중간에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이 즐겁다고 했다. 고마웠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못생긴 발에 비할 바 아니지만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딸의 손가락도 흉하긴 하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못생긴 발에 비할 바 아니지만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딸의 손가락도 흉하긴 하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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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뒤늦게 시작한 바이올린으로 딸은 대학 오디션을 준비했다. 손끝이 뭉퉁해지도록 연습을 했다. 인디애나 대학에 1차 오디션인 CD를 보낼 때는 10시간 넘게 연습을 하면서 학교 음악실에 늦게까지 남아 혼자서 녹음을 했다(나중에 그 대학으로부터는 1차 합격 소식을 받았고 직접 오디션을 치르기 위해 인디애나에 갔다 오기도 했다).

그동안 몇몇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아직 기다리고 있는 대학도 몇 개 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를 할 때 몇몇 교수들이 보였다는 관심이다. 대학 원서에 적힌 딸의 바이올린 레슨 이력은 3개월이 전부다.

이 점에 대해 어떤 교수들은 아직 피어나지 않은 미완의 예비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오디션 도중에 연주를 중단시키고 즉석에서 장학금 제의를 하기도 했고. 물론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교수들도 있었다고 하고. 

아직도 딸은 자신의 일천한 바이올린 경력과 실력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딸에게 레슨을 했던 교수는 딸의 강점이 펄펄 살아 있는 '열정'이라고 했다. 부모의 강요로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해 온 사람들 가운데는 너무 지쳐 있어 오히려 대학에 들어오면 연습을 안 하는 경우도 있는데 딸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뒤늦은 출발을 격려해주기도 했다. 

딸은 현재 수학 전공으로도 몇몇 대학에 원서를 내 놓은 상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바이올린에 더 마음이 가 있는 듯하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사실은 딸이 음악을 전공하려고 한다니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했다는 한 마디다.

"왜, 공부 못 해?"

미시건대학(Univ. of Michigan) 오디션 연습실에서.
 미시건대학(Univ. of Michigan) 오디션 연습실에서.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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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 딸은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 바이올린을 하고 싶다고 한다. 딸은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이제 그 딸은 조만간 대학으로부터 결과를 통보받게 될 것이다. 우리 부부는 딸의 선택을 존중해 줄 생각이다. 왜냐고? 딸의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이니까.

덧붙이는 글 | 딸이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던 초등학교 <방과 후 활동>이 축소되거나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그 활동이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들의 잠재 능력이나 가능성을 키워내는 온상이라고 믿는다. 방과 후 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태그:#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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