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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단편소설 <목포행>은 "9시 10분‥‥‥ 네, 열차가 아주 정시에 출발하는군요. 한데 선생께선 어디까지 가시는 길입니까?"로 시작해서 "사람들이 벌써 내릴 준비를 시작하고 있군요. 자, 그럼 이제 우리도 그만 내릴 준비를 서둘러볼까요?"로 끝날 때까지 오로지 주인공의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혼잣말이나 내적 독백과 달리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태의, 엄밀한 의미에선 독백이라고 보기 어려운 그런 독백이다. 마치 정상적인 대화에서 한쪽의 진술만 발췌해 놓은 듯한, 독백을 가장한 대화 혹은 대화를 가장한 독백이다.

 

작품의 구조는 아주 간단하다. 육촌형을 찾기 위해 목포행 기차에 오른 주인공(나)이 낯선 승객과 나누는 대화가 전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독백 형식 외에도 몇 가지 특이한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중에 하나가 주인공의 목포행을 부추긴 직접적 동기, 즉 육촌형의 기이한 죽음이다.

 

그 죽음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 해 가을 홀연히 날아든 육촌형의 전사 통지서로부터 시작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육촌형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지만 뒤이어 육촌형이 인민 재판에 걸려 죽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육촌형의 죽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기억에서 사라질 만하면 무성한 소문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그후로도 계속해서 육촌형이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했다거나 4ㆍ19혁명 당시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등의 소문이 떠돌지만 주인공의 눈으로 직접 육촌형의 죽음을 확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로 인해 육촌형의 기이한 죽음은 "거대한 불사신"의 이미지로까지 상승한다.

 

"그 육촌형의 죽음의 소식은 제게 있어서 그분의 새로운 탄생이며, 그래 그 죽음을 확인하러 간다는 것도 거꾸로 그분의 그 거인적 불멸의 생존을 확인하러 가는 것이 되는 셈이지요. (....) 제가 지금 어떤 식으로 그분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면, 그건 어렸을 적의 기억에서가 아니라 끝없이 되풀이된 그분의 죽음을 겪으면서 제 스스로 얻게 된 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요. 구체적으로 모습을 말할 수는 없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어떤 거대한 불사신 같은...."(이청준, '목포행' 중에서)

 

주인공의 목포행 역시 육촌형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음은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왜 주인공은 어리석을 정도로 육촌형의 죽음에 집착하는 걸까? 어차피 진위를 확인할 길 없는 소문의 끝을 붙잡고 목포행 기차에까지 몸을 실은 이유는 무얼까?

 

기차가 종착역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의문들도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현실적인 문제로 낭패에 처할 때마다 육촌형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 당도해 있고 어떤 타성처럼 그 소식을 찾아 나서지만 수수께끼 같은 환상만 더해갈 뿐 매번 별 소득 없이 발길을 되돌리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일들이 의식(儀式)처럼 반복될 때마다 주인공은 불사신 같은 육촌형의 환상으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어 세상살이의 실패와 무력감에서 벗어나곤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최근 주인공이 직면한 낭패가 다름아닌 10년 동안 써온 소설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주인공이 작가의 분신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편 이 작품이 1971년에 쓰였다는 걸 감안하면 아래의 발언은 다소 성급한 결론이란 생각도 든다.

 

"글쎄, 소설이라는 게 뭡니까. 그건 결국 어떤 시대에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을 수 있는 정신이나 말의 그릇 아니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설적인 질서나 화법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미 소설을 떠나버린 지 오래예요. 사람들 마음속에 소설은 이제 케케묵고 무용한 유물일 뿐이에요."(이청준, '목포행' 중에서)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제목인 "목포행"은 소설적인 질서와 화법이 실종되고 소설가가 그 존재마저 부정 당하는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구원의 여정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소매치기, 글쟁이, 다시 소매치기>란 이름의 연작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이 작품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선 나머지 두 작품도 함께 읽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이 흥미로운 마지막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청준, <가면의 꿈>, 열림원, 2002


이청준 전집 세트 (반양장) - 전34권

이청준 지음, 문학과지성사(2017)


태그:#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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