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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빈민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빈민은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그들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고 한다.

 

올해도 필자가 다니는 동아대학교에 09학번 신입생들이 입학을 했다. 신입생들과 빈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게으른 빈민을 도와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선배된 입장으로서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빈민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직접 만나보지 않고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직 입학하지 않은 신입생들에게 대뜸 '너희 대연-우암 공동체 한번 올라가보지 않을래?'라고 제안을 했다.

 

후배 두 명이 흔쾌히 가겠다고 해서 26일 오후에 지난 빈민현장활동(필자의 기사 '추운 겨울 나눔을 실천하는 대학생들' 참고) 이후 오랜만에 대연-우암 공동체에 올라가게 되었다. 후배들에게 빈민이 가난한 것은 그들이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 뿐만 아니라, 필자가 대연-우암 공동체에서 배웠던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기도 하였다.

 

우리는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만 열심히 살았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옆에 위치한 대연-우암 공동체 마을로 올라가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가파른 경사를 넘고 넘어 20분을 올라가니 마을 회관이 보였다. 후배들이 뭐 하기도 전에 다 지쳐 버려서 혹여나 어르신들 말씀을 들을 때 졸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마을 어르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을 기획부장님, 여성부장님, 총무님과 둥글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급하게 마을에 찾아간다고 해서 마을 기획부장님이 신입생들에게 해줄 이야기를 준비하셨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기획부장님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분이었다. 준비를 안 했다고 하셨는데 후배들에게 마을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 사고를 빠지지 않고 다 이야기 해주셨다.

 

"우리는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만 했습니다. 젊을 때는 열심히 노가다 판에 가서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희망을 가지고 살았어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일을 쉬었던 적은 거의 없어요. 어떤 일이든 주어진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나가서 일했어요. 그리고 세금도 밀리지 않고 냈습니다. 우리는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국유지에 집을 지어 살았을 뿐인데 갑자기 부산외국어대학교와 구청에서 철거를 진행한다고 하니 숨이 턱 막혔어요."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느라 피곤할 텐데 후배들은 졸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기획부장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나에게 세 가지 비전이 있다

 

 

후배들은 기획부장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후배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피폐하게 살고 있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과 마을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의 말씀을 들으니 후배들은 진지하게 경청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세 가지 비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금연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컴맹에서 탈출하여 마을의 일을 조금 더 신속하게 보고자 노력하려고 합니다. 세 번째, 정체 되어 가는 대연-우암 공동체를 다시 살려 나갈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대연-우암 주거대책위원회가 아니라 대연-우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여기 사는 분들 그리고 이 마을 근처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주거 문제를 뛰어 넘어 지역의 문화를 가꾸어 가는 공동체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기획부장님과의 주옥같은 대화를 끝내고 뒤풀이로 하러 삼겹살 집에 갔다. 기획부장님, 총무님과 함께 맛있는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그 분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선배, 저도 비전을 세워야겠어요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배가 대뜸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배 저 오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저는 빈민 하면 게으른 사람이거나, 우리가 도와줘야 되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 분들에게 배울 게 이렇게 많다는 것을 오늘 느꼈어요. 그리고 기획부장님 말씀대로 저도 저 개인과 대연-우암 공동체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비전을 세우고 싶어요."

 

빈민이 게을러서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후배들이 알게 되어 선배로서 뿌듯했다. 앞으로 후배들과 대연-우암 공동체 그리고 부산의 많은 빈민 지역을 돌아다니며 빈민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해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실립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에도 실릴 수도 있습니다. 


태그:#빈민, #철거민, #대연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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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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