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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죽이지 않고 먹을거리를 만드니 '바른 농사'다. 바른 농산물에 제값으로 고마움을 표하니 또한 '착한 밥상'이다. 이렇듯 순리로 따지자면, 도시민과 농민이 상생하는 길은 멀지 않다. 헌데 그놈의 돈이 '웬수'다. 유통 거품, 그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도 상당하다. 친환경마크를 믿지 못하겠다는 도시인, '눈'으로 먹는 소비자가 안타깝다는 농민. 연중기획으로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담양에서 두리농원을 경영하는 김상식·진민자 부부는 누가 봐도 성공한 '부농'이다. 그들이 재배하는 친환경 건강 쌈채소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대표 브랜드 '3℃ 숨쉬는 맑은채소'는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2007년만 해도 연간 12억60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허나 작년 매출은 궁금하지 않았다. '부'에 초점을 맞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하듯 자연을 사랑하며 온갖 곤충들의 보금자리 위에 상추 한 포기를 올려놓고 정성껏 물주고 가꾸어 여러분 식탁 위에 올린다"는 홈페이지(두리농원.kr) 소개문에 담긴 남다른 사연을 알고 있었던 탓이다.

부부 이름이 똑같은 크기로 또박또박 '명함'

김상식·진민자 부부
 김상식·진민자 부부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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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뇌성마비 아들과 귀농한 부부 이야기다. 아들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건강 채소'를 키워냈고, 자연스레 '믿음'도 따라온 이야기다. 믿음을 '타고' 농원에 온 도시인들과 싱싱한 채소에 삼겹살을 싸 먹는 넉넉한 나눔이 결국은 '진심'에서 출발했음을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른 농사 착한 밥상'이야기다.

지난 20일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황금리에 있는 두리영농조합법인을 찾았다. 잔뜩 을씨년스러운 날씨,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잔뜩 어깨를 웅크리고 비닐하우스들을 기웃거리는데 저쪽에서 김상식(46)·진민자(45) 부부가 나타났다. 특이한 명함이다. 부부 이름이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또박또박.

김상식 "자꾸 여자들 이름 다 없어지잖아요."
진민자 "우리 조합 다른 분들 명함도 같아요."
김상식 "내 생각입니다."
진민자 "내가 앞에 와야 하는데…"

역할 분담 또한 '나란하다'. 아빠는 생산담당, 엄마는 유통·판매담당이란다. "돈 보고 농사짓지 않는다"는 아빠 말이나 "열심히 일만 하다보니, 돈은 자동으로 따라 오더라"는 엄마 말까지도 판박이다. 안 되겠다. 일단 두 사람 이야기를 따로따로 들어봐야겠다.

설날 태어난 아이,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빠는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농촌에서 살고 싶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다닐 때도 돼지 키우겠다는 생각, 한 마리에서 여러 마리로 불리는 상상만 했단다. 도무지 직장 생활은 체질이 아니었다.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85년이었다.

김상식 "알로에 농사를 지었어요. 그때만 해도 처음이라 재미 좀 봤죠. 88올림픽 다음인가? 알로에 열풍이 불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알로에를 재배하니 과잉 생산이 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알로에 건강식품 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광주에 대리점을 냈다가 1년 반만에 1800만원이나 까먹었지 뭡니까. 광주에서 크진 않아도 작은 집 한 채는 살 수 있는 돈을, 허, 참."

'하필' 아빠가 빈털터리가 됐을 때 엄마와 결혼을 했다. 엄마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신랑 출근할 때 이마에 뽀뽀해서 보내주고,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반찬거리를 고민하는 주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헌데 "딱 결혼해 보니까 이미 초창기부터 물 건너 간 꿈"이었다. 노점상에, 통닭집에, 악착같이 돈을 벌던 그 때, 부부에게 희소식이 찾아왔다.

김상식 "설에 첫 아이를 낳았어요. 1월 1일이 생일이니 기분 좋아 갖고 있는디, 백일 잔치를 하는데 애가 이상한 거예요. 고개에 힘이 없고, 눈동자가 자꾸 흔들리고. 병원에 데려 가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결국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죠. 그렇게 병원을 왔다갔다하니 장사도 잘 안 되고, 게다가 하루는 통닭집에 불까지 나버립디다."

언젠가부터 사라진 아빠의 환한 웃음 그리고 '똥냄새'

진민자씨
 진민자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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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민자 "참 악착같이 살았어요. 우리 아들 때문에 그랬어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가 아프니까 방을 얻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적어도 우리 아이에게 이런 설움은 겪지 않도록 해야겠다, 5년 후에는 우리 아들에게 내가 집 사준다, 이런 마음으로 정말 독하게 일했습니다."

아빠는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시작했다. 풀빵 장사였다. 호두 과자도 팔았다. 돈 버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다고 한다. 하루에 50만원 넘게 팔리는 날도 있었다니까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단속반원들과 "내가 도둑질을 했냐, 뭐했냐. 아들 병원비 벌어야 하는데 뭐 그렇게 난리냐"는 승강이를 벌이는 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지.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진민자 "우리 아빠 환한 웃음이 안 나와요. 동네에서 농사짓는 형님들 만나면 입이 귀에 걸리는데, 그 환한 웃음을 광주에서는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웃음 하나 믿고, '일요일에는 쉬게 해주마'란 말을 믿고 따라온 내가 잘못이지(웃음). 그 때는 나도 도시 여자여서 똥냄새 무지 싫어했거든요(웃음). 지금이야 괜찮지만."

김상식 "광주에 나오기 전에 키우던 소 열 일곱 마리를 팔아먹었던 것이 항상 가슴에 쌓였어요. 내가 농촌에 살면서 소똥 냄새만 맡아도 그 축사에 들어가는 사람이여. 그렇게 내가 똥냄새를 좋아했거든요. 그런 재미를 시내에서는 전혀 못 느끼제. 사계절이 바뀌는 재미도 농촌만큼 진하지도 않고."

"큰애가 아프니까, 유기농 하면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아서"

1997년이었다. 부부는 귀농을 결심했다. "착하기 그지없는 첫째 아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게 좋은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만 고민거리는 작목 선택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에 들렀던 아빠는 쌈채소가 판매되는 것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친환경 쌈채소라 … 단가도 상당히 높다는 점이 구미를 더욱 당기게 만들었다.

김상식 "웜매- 돈이 되겄더라구요. 그리고 기왕 농사 지을 거면 우리 아기들한테도 건강하게 먹일 수 있는 쪽으로 결정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또 큰애가 아프니까, 유기농을 하면 건강에도 좋을 것 같고. 그래서 쌈채소를 시작하게 됐지요."

두리농원 하우스 내부
 두리농원 하우스 내부
ⓒ 두리농원.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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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친환경농법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마을 사람들은 "친환경 한답시고 멀쩡한 놈(농산물) 다 죽인다"고 수군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떻게 다시 맡게 된 '똥냄새'인데, 아빠는 한국유기농협회와 선배 농민들의 도움을 통해 하나하나 재배 노하우를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진민자 "믿지 못하시겠지만 제대로 영업 한 번 한 적 없어요. 팔아달라 한 적 없는데도, 스스로들 찾아오시더라구요. 입소문 무섭더군요. 식당 같은 곳에서 우리와 거래하려면 조건이 있어요. 한 번 직접 찾아와서 재배방법이나 특징들을 듣고 가셔야 해요. 여름 같은 경우에는 수확량이 많이 떨어져요. 거래처에서 원하는 물량을 다 맞춰주기 어렵고, 그럼 식당에서는 화가 나게 마련이고, 다른 곳에 파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싹트거든요. 그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에요. 신뢰가 생명이니까요."

휠체어라도 앉히고 싶어 시켰던 수술이 그만…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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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부부의 가슴에 평생 멍을 만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첫째 아들, 휠체어라도 앉히고 싶어 골반 수술을 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그만 수술이 잘못돼서 항상 누워지내야 하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엄마는 "일생 최고의 실수"라며 "우리 애기 아빠도 그 수술 생각하면 못 견딘다"고 했다. 말 그대로 아빠는 담배를 빼들고 잠시 사무실을 벗어났다.

진민자 "엄마라고 한 번이라도 불러줬으면, 그런 꿈을 꿀 때는 얼마나 행복한지, 그러다 깨면 또 허망하고. 그래서 포기가 안 되더라구요. 포기가 안 돼. 우리 아들 10살 때까지는 그래도 걸어다닐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어요. 지금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얼마나 해맑게 웃어주는지, 그것만 봐도 행복하니까."

"그래도 일을 하니까 견뎠지, 집에만 있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며 말을 잇던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잠겨 들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첫째 오빠를 봐야 했던 동생들, 그런데도 오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극진한 너무 착한 우리 아이들"이라며 "마음이 가장 아픈 부분 중 하나"라고 했다. 사무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워놓은 갓 태어난 넷째 이야기를 꺼냈다.

- 흐흐. 두 분 금실이 아주 좋으신가봐요?
진민자 "고목나무에 싹이 피었지(웃음)."
김상식 "조 놈 보는 재미로 요즘 가족들 웃음꽃이 활짝 피었어요."

'두리'... 우리 함께 어울려 둥글둥글 살아봅시다

이제 인터뷰도 막바지였다. 4남매 모두 착하고 곱게 자라고 있고, 2천여평의 영농규모는 이제 1만평을 훌쩍 넘었다. 아들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유기농을 '착한 밥상'이 알아봐 준,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4개 농가와 함께 만든 법인이 바로 두리영농조합법인이다. 이제 부부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김상식 "과거에야 좋은 기술 갖고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됐지만, 이제는 이웃과 이웃이 뭉쳐야 해요. 물류나 판매나 함께 공동부담하면 경쟁력도, 또 그만큼 소비자의 신뢰도 높아지니까요. 우리 마을을 힘있는 친환경 농업단지, 유기농 단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진민자 "저는 친환경농사하면서 제일 좋은 것이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거예요. 바른 먹을거리를 매개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힘들 때 서로 도와주고 일하면서, 그렇게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맛있었다는 전화 한 통, 얼마나 행복한데요."
막내와 '나란히' 포즈를 취한 김상식·진민자 부부
 막내와 '나란히' 포즈를 취한 김상식·진민자 부부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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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두리'는 무슨 뜻입니까. 혹시 두 분을, '둘'을 뜻합니까?
김상식 "(웃음) 아니에요. 두루뭉실, '두리뭉실' 할 때 '두리'입니다. 쌈채소, 배추나 생채, 다 두루뭉실하잖아요. 그것처럼 우리도 둥글둥글 살자. 둥글둥글한 삶이 싹을 틔운다, 농민들도 둥글둥글 뭉치고, 도시인들도 같이 어울려 둥글둥글 살자. 그렇게 어울려 살자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태그:#친환경, #유기농, #쌈채소, #두리농원,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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