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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거지고 있는 '일제고사 파문'에 대해 한 고등학생이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학생의 요청에 따라 학교와 실명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23일 오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청소년단체 활동가들이 농성돌입 기자회견 열고 일제고사 폐지와 일제고사로 인한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청소년단체 활동가들이 농성돌입 기자회견 열고 일제고사 폐지와 일제고사로 인한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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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위 '강남 8학군'이라 불리는 지역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현재 1학년이고 3월이면 2학년이 됩니다.

요즘 신문을 채우는 최대 이슈는 단연 '일제고사'입니다. 전북 임실에서 비롯된 성적 조작 논란과 일제고사를 거부한 선생님들이 하나 둘 파면 당하시는 것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파면된 선생님들이 불쌍하다거나, 성적을 조작할 정도로 임실 학생들의 성적 나쁜 것이 안타까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내신과 관계 없는 시험을 무엇 때문에 열심히 보느냐'며 일제고사를 우습게 여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고사에 너무나 목숨을 거는 교육 당국이 애처롭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쉬운 시험으로 '학력 평가' 한다고?

작년 10월에 제가 봤던 일제고사는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처음 '전집 시험'을 실시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그 시험으로 학력을 말할 수 있을지 답답했습니다.

우선, 난이도가 너무 쉽습니다. 물론 난이도는 개인에 따라 체감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저를 비롯한 고1뿐만 아니라 제 주변의 중학생, 초등학생, 다른 학교 고등학생 모두 "이걸로 학력을 판단하기엔 너무 쉽다"고 했습니다.

이 시험은 그저 학교 진도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뒤처져 있는 학생 정도만 판별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말한 것처럼 '학생들의 정확한 학력을 평가한다'는 건 무리였습니다.

실례를 들자면, 저희 반에서 사회·국사·도덕 등 사탐영역에서 7등급(수능 모의고사 기준)을 받는 친구는 지난 일제고사에서 '보통'을 받았습니다. 중간·기말고사에서 항상 수학 10~20점 받는 친구는 심지어 '보통 이상'을 받았지만 12월에 본 기말고사에선 여전히 10점대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풀기 싫다며 과목당 10분 만에 후다닥 '감'으로 찍고 잤는데 전 과목 '보통'으로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정행위' 저질렀습니다

일제고사 관련 해임된 김윤주 교사가 13일 오전 담임으로 근무한 서울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졸입식에 참석했으나, 김 교사 해임 이후 담임을 맡은 교감이 교단에 서서 졸업식을 진행했다. 한 학생이 김 교사에게 졸업장, 성장보고서를 받은 뒤 돌아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일제고사 관련 해임된 김윤주 교사가 13일 오전 담임으로 근무한 서울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졸입식에 참석했으나, 김 교사 해임 이후 담임을 맡은 교감이 교단에 서서 졸업식을 진행했다. 한 학생이 김 교사에게 졸업장, 성장보고서를 받은 뒤 돌아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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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를 볼 때 선생님들은 감독을 소홀히 했습니다. 당연히 부정행위를 저지르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이건 모의고사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신에 들어가지 않는 시험이기에 감독은 소홀하고 부정행위는 비일비재합니다.

일제고사를 보면서 몇몇 아이들은 공부 잘하는 한 아이에게 단체문자로 답을 전송받았습니다. 서로 듣기평가에서 못 들은 부분의 답을 문자로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듣기평가에서 하나 놓친 것이 못내 걸려 그 분위기에 휩쓸려버렸습니다. 친구에게 문자로 못 들은 부분을 물어보는 부정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인근에 위치한 학교에서는 다른 학교 학생과 부정행위를 해대는 통에 일제고사 실시 이후 모의고사에서는 핸드폰을 압수하고 시험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일제고사 시험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대학'때문이었습니다. 일제고사 실시 전,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방송을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 일제고사 성적은 나중에 여러분 대학 수시원서 넣을 때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여러분뿐만이 아니더라도 선후배들도 이 성적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니 잘 봐야합니다".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말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잘 아실 겁니다. 일제고사 실시 전, 뉴스에서도 "나중에 학교별 성적을 공개해서 대입 전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교과부의 입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관료들의 '오버액션'에 놀아난 학교와 학부모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작년 10월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작년 10월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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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좀 한다 싶은 친구들은 '대학' 때문에 일제고사를 봤고, 공부 좀 포기한 친구들은 '이게 무슨 시험이냐'하며 일제고사를 버렸고, 공부 좀 못하는 친구들은 '미달'이 무서워서 일제고사를 봤습니다.

전국의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과연 '정확한 내 학력을 알고 싶어서' 이 시험을 열심히 봤고, 그 결과 자신의 수준에 맞는 성적이 나왔습니까? 그 누구도 교과부가 밝힌 취지대로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과 학교를 가리지 않는 사상 초유의 부정행위가 이토록 많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운동부 아이들과 장애인 아이들이 시험 보는 것을 제지할까요. 왜 백지 답안지의 수도 공개하지 않은 채 성적 합산에서 제외하고, 교육청 차원에서 성적을 조작해 보고했을까요. 학부모들이 이 시험에 목숨을 걸고, 그래서 학교도 학원도 모두 이 무의미한 시험에 '최적화'되어 가는 것은 모두 관료들의 '오버액션' 탓이라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방식 자체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여전히 '일제고사'는 '실패작'일 것입니다. 부디 착각하지 말아주십시오. 그 시간에 정규수업을 차라리 더 받는 것이 학생들에겐 더 나은 일입니다. 왜냐면, 시험이 '시험답지' 않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비슷한 내용으로 학생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일제고사, #임실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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