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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노동절 집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민주노총
▲ 민주노총 2007년 노동절 집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민주노총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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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위기다. 민주노총 간부의 비리가 터져 위기를 맞더니, 이번에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성폭력 사건으로 위기를 맞이했다.

하기야 민주노총이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가 어제 오늘이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노동계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 민주노총을 걱정하는 얘기가 나왔었다.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도 전태일 34주기 때에도 "노동운동 위기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연 바 있었다.

이때에도 노동운동 위기론에 대해 이런 저런 진단이 있었지만 정작 당시 민주노총 토론자는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지금의 민주노총 위기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폐해가 성폭력이라는 사건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위기는 단순히 민주노총 조직 내의 위기만이 아니다.  민주노총 위기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위기이며, 노동운동의 위기는 진보운동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대표하고 있으며, 노동운동은 계급적 기반을 둔 대중조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에 대한 관심과 애정 어린 비판은 민주노총 조직 내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조직 밖에서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그동안 민주노총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를 가졌는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민주노총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한국노총이 우리나라 조직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유일한 조직이었다. 이런 한국노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탄생한 것이다.

한국노총은 그 전신인 대한노총이 자유당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탄생했으며 5.16 직후에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서 한국노총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한국노총은 5.16군사쿠데타를 지지하고 이후 박정희 유신쿠데타 등을 지지함으로써 어용노조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1970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전태일 사건은 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고도성장의 그늘 아래에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노동자의 항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책임의 한 축에는 당시 어용노조를 빼놓을 수가 없다.

70년대 민주노조, 전태일 사건으로 뿌리내려

전태일 열사
 전태일 열사
ⓒ 전태일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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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사건 이후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을 뿌리내리기 위한 민주노조운동이 70년대 내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은 것은 물론 어용 상급단체인 한국노총과 그 산하 산별 본부로부터도 탄압을 받아왔다.

70년대 민주노조는 80년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등장하면서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당했다. 이때에도 한국노총은 전두환 신군부정권의 등장을 지지했다. 이처럼 민주노조운동은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84년 청계피복노조 복구, 85년 구로동맹파업 등으로 살아남아 그 생명줄을 이어 나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87년 6월 항쟁의 승리에 이어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은 어용 한국노총의 존재를 무력화 시킨 자주적인 노동운동의 승리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를 담아 전노협이 조직되었고, 전노협의 조직적 발전이 오늘의 민주노총을 탄생시킨 역사적 배경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역사적 뿌리로 살펴 볼 때 그 출발점은 전태일로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87년부터 매년 11월이면 '전태일정신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처럼 전태일 정신을 계승한다는 민주노총이 참으로 어이없는 행동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다.

민주노총이 전태일 정신을 제대로 계승했다면 오늘의 이러한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해마다 외치는 '전태일정신 계승'은 전태일의 껍데기를 외쳤기 때문이다. 전태일정신" 은 장식품도 아니요, 명분만도 아니다. 전태일 정신은 치열한 사랑이요, 자기 헌신이다.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장식품으로 외쳤던 '전태일 정신'을 마음속 깊이 '화형식'하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치 전태일이 장식품에 불과했던 근로기준법을 '화형식'했던 것처럼... 그리고 전태일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것이 위기에 처한 민주노총을 구하는 해법이다.

민주노총의 위기는 노동운동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기 위한 운동인지에 대한 성찰과 목표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임금인상 그것도 대기업 중심의 기득권 지키기, 정규직의 임금 인상 투쟁에 머문다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단순한 이익집단에 불과할 것이다.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이 정규직에 의해 부결되거나, 어려운 시기라고 해서 비정규직에 대한 우선 해고가 용인되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에 있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태일은 자신보다도 더 약한 시다의 편에 서기 위해 공장 내에서 비교적 임금이 높은 재단사직도 버리고 미싱사보조로 들어가 새로 일을 배웠다. 그러다가 그는 끝내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을 위해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갔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야 할 민주노총

전태일은 번듯하게 사회과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어도 스스로 실천을 통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하고 있다.

노조간부는 결코 특권층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더구나 노조가 스스로 권력이 되어 조합원 위에서 군림하는 조직이 된다면 어용노조 노동귀족과 무엇이 다른가? 한번 권력을 잡으면 놓지 않고 현장을 도외시 한다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민주노총 간부가 되려거든 전태일을 학습하는 일을 거치는 절차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전태일이 얼마나 자신을 낮추고 현장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지 전태일의 일기나 수기를 보면 알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 쫓겨나면 막노동판에 나갔다가 다시 평화시장 공장으로 돌아왔다. 전태일은 살아생전 노조간부를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지만 가장 훌륭한 노동운동가로 추앙받고 있다.

관료화된 민주노총 간부들이 배워야 할 살아 있는 대상이 있다. 다름 아닌 70년대 민주노조운동가들이다. 이들 선배노동자들이야말로 척박한 조건 속에서도 민주노조운동을 뿌리내리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투쟁해 왔는지를 배워야 한다. 적어도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한 사람들은 전태일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자세를 잃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87년 이후 등장한 노동조합 간부 중에는 일부지만 70년대 민주노조의 좋은 전통마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민주노총에는 전태일정신과 70년대 민주노조운동정신이라는 훌륭한 유산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산을 귀하게 여기지 않거나 바르게 이어받지 못함으로써 오늘날 이러한 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정파이익에만 몰입해선 '전태일 정신' 살릴 수 없다

2005년 9월 30일 제막식 모습 (전태일기념사업회와 오마이뉴스의 공동 모금으로 제작되었다)
▲ 전태일像 2005년 9월 30일 제막식 모습 (전태일기념사업회와 오마이뉴스의 공동 모금으로 제작되었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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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 중에 정파이익에 몰입함으로써 단결을 해치는 것이 있다. 어느 조직에나 정파가 있을 수 있고 정파에 따라 노선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의를 저버리고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는가? 민주주의와 사회평등을 추구한다는 조직 대의원대회에서 폭력이 난무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면서도 '전태일정신'을 외칠 수 있는가? 

지금이라도 민주노총에 속한 모든 정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 그래서 노동운동을 하는 모든 이들한테 전태일 정신에 바탕을 둔 품성교육을 시키기 위한 기구를 만드는 것에 합의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민주노총을 이끄는 사람들이 전태일을 모르지 않고, 또한 전태일 정신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가? 다름 아닌 실천이다. 전태일은 모든 것을 실천을 통해 깨달았고 깨달은 것을 실천한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말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 좋은 말씀들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장식'에 불과할 뿐이고 명분에 지나지 않다. 전태일은 그 장식에 지나지 않은 근로기준법을 '화형'시켜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 것이다.

위기에 처한 민주노총, 아니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이제라도 전태일을 배우고 따르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서 거듭나야 한다. 해답이 없어서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답이 있는데 그것을 간과하고 실천하지 않아서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전태일 정신은 반드시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구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입니다.



태그:#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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