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에 돈 벌러 왔어요. 말도 통하지 않아요. 몸 아프면 걱정 많아요. 병원에 가서도 말 못해요. 일요일 무료진료에 오면 진료도 약도 무료로 주어요. 몸 아플 땐 엄마아빠 보고 싶어 눈물 나와요. 선생님들은(평화·사랑·나눔 의료봉사단) 고향의 엄마 같아요."

 

이주노동자에게 병원 가는 일은 몸 아픈 것 못지않은 걱정거리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아픈 증세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병원 측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미등록(불법체류)일 경우엔 의료보험 혜택이 없기 때문에 치료비가 큰 부담이어서 어지간하면 참고 맙니다. 그러다 병을 키우기 일쑤고 심한 경우엔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에란두(29·스리랑카)씨가 서툰 한국말로 '코리안드림'의 고달픔을 털어놓으면서 '평화·사랑·나눔의료봉사단'(이하 의료봉사단)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고향의 엄마처럼 따뜻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몸 아프면 맘도 아픈 법인데, 몸과 맘을 다 어루만져 주는 의료봉사단의 인술에 감동하는 것은 국경을 초월해 인지상정입니다.

 

의료봉사단이 이주노동자 무료진료를 시작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냉대를 받는 그들의 아픔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코리안드림'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위로하고 치료하고 싶어서 뛰어든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발생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네팔 노동자가 머리 아프다고 하자 옆에 있던 한국인 동료가 약국에 가서 펜잘을 사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했는데, 잘못 알아들은 네팔 노동자가 그만 '벤졸'을 구입해 마시는 바람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입니다. 다행히 빠른 위세척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언어불통에 따른 결과가 어떤 불행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늘어나는 환자-부족한 약제비, 후원천사 100명을 기다립니다!

 

 

의료봉사단은 22일 오후 5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후원의 밤을 열었습니다. 진료는 전문가이지만 행사는 아마추어라 행사 순서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진행요원들이 당황해 어찌할 줄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연 후원의 밤입니다. 의료봉사단은 대학생 3천원, 간호사·물리치료사 5천원, 의사·약사 1만원의 월 회비와 제약회사로부터 약품 후원을 받아 무료 약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약제비 부족에 따른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공창배(전 서울평화센터 사무처장) 단장은 "회원들의 작은 정성을 모아 무료로 약을 드렸는데 약제비가 부족해지면서 빈손으로 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이주노동자 분들에게 무료 약을 더 드리기 위해 후원천사 100명을 모으기로 하고 의료봉사단 출범 이후 처음으로 기부금 통장도 만들었다"며 후원 참여를 호소했습니다.

 

2001년 5월부터 진료를 시작한 의료봉사단은 지난 9년 동안 233회의 진료를 통해 22064명의 이주노동자에게 무료진료 혜택을 나누어드렸습니다. 의사(한의사), 약사, 간호사, 통역, 의대·약대·간호대 학생 등 모두 4773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으며, 77세(한의사)의 고령자부터 10세 미만의 어린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유지윤(64·한의사)-유종호(40·가정의학과 전문의)씨는 부자 자원봉사자입니다. 아들이 먼저 자원봉사를 시작한 뒤 아버지를 끌어들였는데 아버지가 더 행복한 표정입니다. 아들이 먼저 자원봉사를 시작한 뒤 아버지가 뒤따랐으니 자전부전입니다. 중국 연변에서 한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 최연옥(여·52·전 중국연변한의사협회장)씨는 초창기부터 참여한 국경을 초월한 자원봉사입니다.

 

노재훈 연세대 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행사 내내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자신의 제자들이 의술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인술을 펴면서 진정한 의사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 교수가 가르친 이승규, 유종호, 이희일씨 등 연세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출신 전문의들이 의료봉사단의 주축입니다. 제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상임고문을 맡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노 상임고문은 "우리가 이주노동자의 의료를 책임지고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인도주의적 시혜를 넘어서 우리 국력 신장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이주노동자를 위해 수고하는 (의료봉사단)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격려했습니다.

 

'평화·사랑·나눔 의료봉사단'의 힘은?

 

 

 

"늘어나는 환자들을 보면서 약제비도 걱정이지만 봉사인원이 늘지 않아 조금은 걱정했는데, 간호파트와 약제파트가 활성화되는 걸 보면서 진료파트도 반성하고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2006년 8월 26일)

 

"전에 비해 두 배로 많아진 외국인노동자들! 거기에 비해 봉사자는 예전 그대로이어서 그런지 봉사에 힘이 부치는 것 같다." (2007년 8월 13일)

 

2기 운영위원장을 지낸 유종호씨가 의료봉사단 카페에 올린 고민입니다. 자원봉사는 자발성이 생명입니다. 이 말은 곧 강제성을 띨 수 없다는 말로, 자원봉사자 수급조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환자는 밀어닥치는데 봉사자가 부족하면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원봉사는 말처럼 혹은 느낌처럼 쉬운 일은 분명 아닙니다.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자원봉사는 자칫,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고소득 전문직업인인 의사에게 휴일은 천금 같습니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에서 의료인들의 격무는 불가피합니다. 의사의 사회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의사들이 천금 같은 휴일을 휴식이나 취미생활에 사용하지 않고 자원봉사에 사용하는 것은 대단한 희생정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9년째 매주 일요일마다 무료진료를 하고 있는 의료봉사단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의료봉사단 9년의 산증인 이승규(46·1기 운영위원장)씨 그리고, 이씨가 운영하는 의원에서 함께 일하는 간호사 김재연씨는 최다 참석 자원봉사자입니다. 이씨는 자신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딸까지 대동하고 봉사에 나섭니다. 9년째 봉사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이씨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후배들을 더 앞세우며 의료봉사단 호의 순항을 부추기는 열성 자원봉사자입니다.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휴일 반납에 따른 격무로 몸살 나기 일쑤입니다.

 

의료봉사단이 순항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향후 10년, 20년의 인술을 다짐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늘 조용히, 한결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평화사랑나눔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들, 마음과 행동으로 서로를 돕는 사람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강용준(46·가정의학과 전문의)씨가 지난해 11월 12일 의료봉사단 카페에 올린 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평화, 사랑, 나눔을 묵묵히 실천하는 동료 선후배들이 의료봉사단의 원동력이며 상호간에 얻은 신뢰와 애정이 고된 자원봉사를 계속 잇게 하는 힘입니다.

 

"생명 구해준 선생님들의 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비록 작은 힘이나마 '그들'에게 작은 위로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의료봉사 모임으로 출발할 당시의 소박한 표어입니다. 단장 공창배씨와 이사 이승규씨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고 의료봉사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2001년 5월 20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서울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식당에서 첫 의료봉사를 시작, 5년에 걸친 봉사활동 과정에서 조직의 필요성이 거론되면서 2005년 10월 30일 의료봉사단을 정식 출범시켰습니다.

 

의료봉사단은 출범선언문에서 "지난 5년의 봉사과정에서 그들의 아픔에 얼마만큼 공감하고 함께 나누려 했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부끄럽지 않았다고 감히 대답해 본다"면서 "이제 평화와 나눔을 실천하고 한국인의 사랑을 전달하는 국제적인 의료봉사단체로의 비전을 향해 힘찬 출범"을 선언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의료봉사단의 올해 중심 사업은 지난 9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무료진료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의료혜택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진료 및 의료구제 ▲북한 등 제3세계 긴급사태 발생지역에 대한 해외의료봉사단 파견 등을 사업방향으로 삼았습니다.

 

3기 운영위원장을 맡은 이희일(35·가정의학과 전문의)씨는 "환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자원봉사의 손길이 달리고 있다"면서 "의사, 약사, 간호사 등의 자원봉사 인원을 확대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습니다. 이씨는 이주노동자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면서 도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혈액 검사 및 X-레이 검사요원과 장비가 부족해서 환자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응급 환자나 중환자 발생 시엔 이들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상급 병원(2차 병원)과의 연계구축 또한 시급합니다. 이주노동자를 돕는다고 나섰지만 막상 도움이 더 필요한 환자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안타까워할 때가 무척 많습니다. 올해는 그런 일이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돈과 권력 등의 이익과 별 상관이 없는 자원봉사. 그렇다면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중동포 반현수(54·흑룡강성)씨의 말에서 의료봉사단의 존재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한국생활 10년 동안 아픈 적이 많았는데, 불법이어서 (잡힐까봐,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살아 있는 것은 (평화·사랑·나눔 의료봉사단)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100% 무료진료를 받고 약도 무료로 받았는데, 중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생명을 구해준 선생님들이 베풀어준 친절과 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한편, 의료봉사단엔 연세대 세브란스 가정의학과 전문의 모임,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서울여자간호대학 동아리 '항아리', 전공협의회 '참의료진료단', 고등학생 모임 '다문화봉사단', 국제고 자원봉사단, 물리사치료모임 '서울정형도수치료학회'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지구촌사랑나눔 소식지 및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주노동자, #평화사랑나눔 의료봉사단, #연세대 의과대 가정의학과,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무료진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