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난의 보릿고개를 넘지 못해 너도 나도 고향을 등지고 떠난 60-70년대, 도시는 기회의 땅이었다. 중학교조차 보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나이 어린 누이와 형들은 도시의 공단에서 허울 좋은 산업 근대화의 역군이 되었지만 가난의 굴레는 좀처럼 벗겨지질 않았다. 자식을 모두 도시로 떠나보낸 농촌에는 청년들의 노랫소리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노인들의 가파른 숨소리만이 다가오는 봄을 기다렸다.

한미FTA, 신자유주의 개방의 파고 앞에 우리 농업은 지금 몰락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 이런 농촌에 희망의 이정표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물신 도시의 끝자락이 보인 것일까? 12년 전 IMF 시대 이후 언제부턴가 귀농이라는 화두가 불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3년 전 산골마을로의 귀농... 땅을 사고 집을 짓기까지

올봄 집 지을 터에 길을 내기 위해 포크레인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집터의 진입로 공사 올봄 집 지을 터에 길을 내기 위해 포크레인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이종락

관련사진보기


3년 전 경북 상주 화서면의 산골마을로 귀농을 결행한 우리 다섯 가족은 정착이냐 도시로 유턴이냐를 가늠하는 마(?)의 2년을 극복하고 오매불망 기다렸던 일을 실행했다. 시골에 땅을 사고 집을 짓게 된 것이다. 정착의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인적 없는 밭에서 온몸을 적신 땀을 훔치며 눈앞에 흘러가는 파란 하늘의 구름을 볼 때, 칠흙 같이 어두운 시골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길 때, '나는 왜 귀농을 했는가?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다. 그러나 답은 가슴속에서 맴돌 뿐이다. 삶이 곧 답이었다.

경쟁과 공해, 다람쥐 쳇바퀴 같은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은 흔히들 귀농자의 삶을 부러워한다. 지난 2년간 시골에서 보고 겪은 귀농자들의 삶은 다양했고 처음 겪는 시골살이를 헤쳐 나가는 이들의 삶 역시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비껴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귀농은 크게 자발적인 귀농과 IMF 때처럼 실업극복을 위한 타의에 의한 귀농으로 나눌 수 있으나 몸으로 부딪치는 시골현실이 만만치 않음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실제 IMF 당시 귀농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년 안에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시골생활의 부적응으로 본인은 물론 마을 주민들과도 힘들었다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마음을 비우고 자발적으로 귀농하는 경우에도 도시로 돌아가는 확률이 3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첫째가 경제문제고 다음이 시골문화에 대한 부적응, 교육 문제 등이 중도 포기의 주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농사만으로 경제자립을 일구는 경우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농사 경험이 부족한 귀농자들이 오랜 세월 다져온 농사꾼처럼 대규모로 농사를 짓기도 힘들거니와 고학력자가 대부분이라 부수입을 올리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실제 주변의 귀농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친환경단체 상근자, 농사와 맞벌이, 양계, 목수, 유통 등 먹고 살기 위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다수 귀농자들의 공통점이 친환경 농사를 고집하다 보니 농사 기술과 판매 등 감당해야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연히 경제자립은 산 넘고 물 건너 머나먼 길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불황을 타고 늘어나는 귀농인구, 그러나...

나 역시 2년의 농사 경험을 토대로 올해는 집짓기와 경제자립의 기반을 구축해야만 하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 과연 친환경 농사와 경제자립이라는 두 가지 화두를 손에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계획에 골몰하고 있다.

IMF이후 10년 만에 불어 닥친 극심한 경제난국은 곧바로 도시의 실업자를 양산하고 살 길이 막막해진 이들을 농촌으로 이끌고 있다. 정부는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구체적인 귀농 지원책을 내놓고 있으나 현실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인구 유입을 최우선 기치로 내건 자치단체 또한 다양한 귀농지원 조례를 만들어 귀농자를 향한 구애의 손짓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올해 농사에 사용 될 퇴비가 눈을 맞은 채 봄을 기다리고 있다.
▲ 농사용 퇴비 올해 농사에 사용 될 퇴비가 눈을 맞은 채 봄을 기다리고 있다.
ⓒ 이종락

관련사진보기


전국적으로 귀농 인구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상주시 역시 최근 청원~상주간 고속도로의 개통과 곶감, 포도 등의 특산물 덕으로 귀농자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2005년도 30가구에서 2006년부터 평균 50여 가구가 귀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마을에서도 종종 새로 들어 온 귀농자의 근황이 입소문을 타고 들려온다. 상주시가 44년 만의 인구 증가 꿈에 부풀어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22일 충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도내 농촌으로 돌아온 귀농인구는 227명으로 2007년 157명보다 44.6%(70명)가 증가했단다.

대량실업의 공포가 현실화 되는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의 삶을 모색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색할 시간도 없이 도시에서 버림을 받고, 시골의 초라한 집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시나브로 도시의 자본주의에 물든 시골 역시 예전처럼 나그네를 위해 평상에 따뜻한 밥을 내줄 만큼 인정이 넘쳐나지는 않는다. 억대 농업인 육성이라는 정부의 자본주의적 발상 앞에 시골조차 부익부 빈익빈의 도시를 닮아가고 있다.

하지만 시골의 빈집과 땅들은 새로운 이웃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시골에는 아직 사람이 필요하고 그립다. 오랜 세월 공동체로 살아온 인정이 남아 있어 열심히 일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못 본 체 하지 않는다. 보따리 풀면 어떻게든지 살 길은 생긴다는 것이 귀농 3년차의 믿음이다.

도시의 삶을 버려라, 그러면 길은 열린다

최종 선택은 귀농하려는 자신의 몫이다. 무엇보다 수십 년 간 쌓아온 도시의 유무형 자산을 정리하고 낯선 시골로 간다는 불안감과 자괴감, 도시 중심의 가치관이 끈질기게 뒷덜미를 잡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집만큼이나 신분의 척도로 작용해 온 승용차에 길들여진 도시인이 시골에서 털털거리는 트럭의 핸들을 잡는다는 것도 내심 독한(?) 마음 먹지 않고선 쉬운 일이 아니다. 귀농 초, 승용차를 팔고 허름한 트럭에 처음 올라 핸들을 잡을 때 내 기분은 물론이고 아내가 지었던 그 표정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너무도 트럭에 익숙해져 트럭이 제일 편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지만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귀농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두 가지만큼은 꼭 얘기하고 싶다.

시골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사는 곳이니 자신의 체력에 대해 충분한 점검을 우선 해야 하고, 두번째 도시의 허황된 욕심을 털어 내고 단순 소박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 두가지가 있다면 귀농은 분명히 새로운 인생의 이모작을 선물해주리라 믿는다.

가물었던 겨울도 지나고 대지는 봄기운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농부들은 올해 농사를 위해 농기구를 손질하고 벌써부터 들녘에 나가 땅과 호흡을 하고 있다.

아직도 초보농군티를 벗지 못한 귀농 3년차지만 가끔씩 내게 귀농 관련해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심스럽게 나의 지난 귀농 경험을 얘기하면서 마지막 결론은 힘주어 말하고 싶다.

"귀농 하고 싶으면 결단하세요! 다 살게 돼 있습니다. 그래도 시골이 도시보다는 낫습니다."


태그:#귀농, #실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