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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전국에서 치러진 학업성취도 평가(이하 일제고사) '성적 조작 파문'이 전북 임실교육청을 시작으로 대구, 공주에서도 확인됐다. 또 부산, 전주 등에서도 성적 조작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결국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0일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 초·중등교육과장이 참가한 과운데 전국 모든 학교와 지역 교육청을 대상으로 일제고사 평가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벌일 것을 결정했다.

 

사실 이 같은 사태는 지난 7월 서울시교육감선거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었다. 많은 교사와 학부모, 시민단체가 10여 년 전 치러졌던 일제고사의 부작용을 상기시키며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그 목소리를 외면했다. 오히려 그 목소리를 존중했던 교사들을 교문 밖으로 냉혹하게 몰아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2월 초·중등교사 7명을 파면·해임시켰고, 그 뒤를 이어 강원도교육청이 교사 4명을 같은 이유로 파면·해임시켰다. 지난 2월에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설명했다는 이유로 사립학교 교사 1명도 파면됐다.

 

교단에서 쫓겨난 그들은 지금도 교문 밖에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일제고사와 싸우고 있다. 이제 현실이 되어 버린 일제고사의 부작용에 대해 22일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일제고사 해직교사들, "성적조작 가능성, 정책 입안했던 이들도 다 알았을 것"

 

지난 12월 파면당한 송용운 교사(선사초)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징계위원회나 소청심사위원회에서도 이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지적했다"며 "이미 일제고사를 시행했던 외국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고 밝혔다.

 

"학급 평균 성적에 따라 일선 교사가, 학교가, 교육청이 한 줄로 세워지는데 어느 누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나. 지역 교육청이 학교를 다그치고, 학교장이 교사를 다그칠 거다. 결국 가장 마지막엔 아이들이 다그침을 당할 수밖에 없다."

 

송 교사는 "표집방식으로 진행됐던 성취도평가와 전수조사 방식으로 진행되는 성취도평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며 "결국 이 같은 방식 아래선 모든 학교, 모든 교사가 아이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2월 해임당한 청운초등학교 김윤주 교사도 "일제고사 정책을 입안했던 이들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단지 우리와 같은 '이탈자'들을 무섭게 몰아쳤기 때문에 부작용은 다 덮을 수 있을 것이란 무모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교육 당국이 지금과 같은 전수조사 방식으로 일제고사를 계속 치르겠다는 것은 교육 본연의 생동감, 대안적 가치관 등을 모두 죽이고 지금의 정부가 추진하는 경쟁지상주의에 학교 현장을 매몰시키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일제고사는 지금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국제중, 자율형 사립고 등에 들어가지 못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출발선의 차이', '사교육' 등의 문제의식 대신 '개인적인 열등감'만 갖게 된다. 일제고사는 이를 위해 심리적이고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장치'인 셈이다."

 

"학생과 학부모 위해 전수조사·지역별 성적공개 필요? 새빨간 거짓말"

 

특히 김 교사는 "전수조사를 통해 기초학력미달 학생들을 발견하고 지원할 것"이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주장에 대해 "누가 봐도 새빨간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교과부는 지난 16일 기초학력미달 학생 해소를 위해 '기초학력 미달학생 밀집학교' 1200여 곳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교과부는 이를 위해 ▲ 학습보조 인턴교사 채용 ▲ 대학생 멘토링 ▲ 학력증진프로그램  운영 등을 위한 비용 지원 등을 예로 들었었다. 해당 학교장, 교감평가에 학력 신장 정도를 반영하겠다는 '채찍'도 들었다.

 

그러나 김 교사는 "(교과부의 주장이 맞다면) 기초학력미달 학생들에 대한 대책이나 구체적인 지원방식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며 "12월이 되서야 성적표가 나오고 시험을 본 아이들은 한 학년 진급해 버리는데 언제 아이들을 진단하고 지원하겠다는 뜻이냐"고 지적했다.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 기초학력미달 학생들을 진정 위한다면 빠른 진단과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교육당국이 일제고사를 통해 접근하고 있는 방식은 마치 일선 고등학교가 몇 명이나 서울대에 보냈느냐는 식이다."

 

전국적인 성적조작 파문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있는 교과부의 지역별 성적 공개 방침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2월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 교사는 "지역별 성적 공개 방침은 사실상 고교선택제와 맞닿아 있다"며 오는 2010년부터 시행될 학교선택제를 지적했다. 학교선택제가 시행되면 학부모와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고교를 2단계에 걸쳐 최대 4곳까지 지원할 수 있다.

 

박 교사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선 자율형 사립고 등 귀족학교, 또는 소위 '잘 나가는' 학교를 선택하고자 할 것"이라며 "일제고사는 그를 위한 정보를 만들고 가공하는 단계"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에 대해 설명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한 세화여중 김영승 교사도 박 교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김 교사는 "오히려 지역별 성적 공개가 학생들의 전학 등을 촉진시키면서 지역간의 학력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며 "서열화 등 큰 틀에서 문제와 시각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교육당국이 임기응변식으로 사태에 접근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서울시에선 오는 2010년부터 고교선택제를 시행되기 때문에 일부 사립학교들은 이번 일제고사 때 일부러 중간고사 일정도 조절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교육청이 일제고사 결과 비선호학교가 될 경우 재정지원 등이 어려우니 스스로 노력하라고 지침도 내렸다. 결국 사립고의 입장에선 입시교육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살아남으려면 옳지 못한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배울 것"

 

하지만 교사들이 무엇보다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제자'들이었다.

 

길동초등학교의 최혜원 교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후 일제고사가 교원 평가에도 연계가 된다면 교사 개인들도 살아남기 위해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각종 방법을 구할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아주 어린 나이인 아이들도 '살아남으려면  옳지 못한 일이라도 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답답해했다.

 

김윤주 교사 역시 최근 졸업한 아이들 중 한 명이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말해주며 서글픈 마음을 드러냈다.

 

"한 아이가 문자메시지로 '선생님, 일제고사 안 보면 특목고 못 가나요'라고 물었다. 그를 보면서 이번 사태를 통해 아이들이 '부당한 것이라도 저항하면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점을 잠재적으로 학습하게 된 것 같아 교사로서 서글펐다."

 

한편, 해직교사들은 오는 23일부터 다시 대구와 전주, 공주 등지의 교사들을 방문해 오는 3월 10일 치를 일제고사에 대해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송용운 교사는 "이번 파문처럼 일제고사가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끼치는 폐악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피곤하고 지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막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태그:#일제고사, #성적조작, #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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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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