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설중매, 눈이 녹아 내린다. 곷비가 내린다고 해야할 것이다. 만지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추워도 향기를 팔지 말라며  다부짐이 매섭다.
 설중매, 눈이 녹아 내린다. 곷비가 내린다고 해야할 것이다. 만지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추워도 향기를 팔지 말라며 다부짐이 매섭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어제 저녁부터 매원에 봄기 어린 서설이 내리고, 매화가지마다 꿈틀 꽃물을 터뜨리고 있다.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을까. 겨울 내내 꽃대 하나 올리려고 잘도 참아 내더니 반갑다 눈인사를 하잔다. 그런 줄 알았으면 어제저녁 서둘러 목욕이나 해둘걸.

매화를 심은 지 벌써 여섯 해가 되어간다. 밖에는 아직도 대지가 서걱거리고, 저리 눈발이 내리는데 서둘러 꽃물을 터뜨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아침엔 흰 눈발 오락가락하더니 지금은 황사덩어리가 온 세상을 뒤덮고 황소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황사에 눈이 아리고 코가 맹맹하다가도 매화 꽃물 터짐에, 첫 선 뵈러 나온 며느리 감 대하듯 가슴이 절렁거린다.

설중매, 눈이 녹아 꽃송이에 맺혀있다.
 설중매, 눈이 녹아 꽃송이에 맺혀있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매화는 참 부지런도 하다. 꽃이 피고 싶어 어찌 긴 겨울을 참아냈을까. 따사로운 기운이 땅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눈 속을 헤집고 꽃을 피워낸다. 언 나무를 흔들어 깨워 서둘러 꽃을 여는 매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아득하고 영혼이 아리게 저려온다. 봄의 선두주자로 추위와 한기를 털고 일어나 지치고 메마른 가슴에 황홀한 빛깔과 꼿꼿한 자태와 신비스런 향기를 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설중매, 설향인가, 매향인가.
 설중매, 설향인가, 매향인가.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매화는 가난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寒不賣香梅一生] 했으니, 눈처럼 맑고 티 없는 순수와 푸른 하늘을 닮은 서늘한 품성과 신선한 바람처럼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세상을 질퍽거리며 비린내를 풍기는 이들의 근접을 바라지 않는다. 오직 순수 그 자체, 어린 미나리 싹과 배추 고갱이 속 같은 마음을 가진 경건한 사람들의 차지다.

매화는 선구자들의 몫이다. 매서운 추위와 뼈 속 저리는 아픔을 마다하고 눈 속을 뚫고 피어난 부지런한꽃(早春花)이기 때문이다. 칼날 끝 절정에서 굽힐 줄 모르고 세상을 개척해 가는 의지인, 밤을 지새우고 새벽을 여는 사람들,  아니면 새로운 하루의 삶을 준비하는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몫이다.
                         
홍매실, 정신이 아득하다.
 홍매실, 정신이 아득하다.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겨우내 더러워진 몸을 씻어내려고 매화꽃 옆으로 다가선다. 마침 꽃물을 시샘하듯 흰 눈이 풀풀 휘날리고 있다. 용화산 자락에서 흰 구름을 타고 흘러내리는 산뜻한 봄 내움과 함께 꽃신이 점지해내는 흩날리는 분분(紛紛). 내밀하게 묻어 내리는 은향(隱香)이 밭둑을 건너 앞마당을 지나 봉당에 머물고 있다.

눈인가 꽃인가. 눈이 꽃이고 꽃이 눈이다. 설향(雪香)이 매향이고 매향(梅香)이 설향이다. 눈꽃이다. 아니다. 비움이다. 비움도 아니다. 그대로다. 있는 그대로다. 그대로 봄눈이 나부끼고 봄 눈 아래로 매화 한 두 송이 피어 대지가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홍매화, 꽃속 망울을 뭐라했으면 좋을까. 웃으면 터질듯...
 홍매화, 꽃속 망울을 뭐라했으면 좋을까. 웃으면 터질듯...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언제 보아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 매향이 풍겨난다.  험난한 세상에 매향 냄샐 품기고 다니는 친구 하나만 갖고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다.

구름에 가리어도 먼지에 그을려도 환하게 다가오고, 안에 있는 울음과 밖에 있는 웃음이 다르다 해도 웃음꽃을 피우고, 이쪽이 있어도 저 쪽이 보이고, 멀리 있어도 가깝게 보이도록 발돋움하고, 날마다 내 가슴에 새 이름표를 달아주며, 나의 색깔과 의미를 부여해주는 친구가 진정 매화 같은 친구이리라. 이런 좋은 벗을 만나자면 나도 매화가 되고, 하늘과 바람 냄새를 풍기고 몸에서 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가꿔내야 할 것이다.

참새들이 신명이 났다. 참새들의 짝짓기가 한창이다.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면 참새들은 거칠게 몰아치는 꽃샘바람도, 숨 막히게 날아드는 황사 덩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신이 없다. 참새들은 매화꽃 한 송이 무게만으로도 다리가 휘청거리고, 매화꽃 향기 한 방울에도 허리가 부서지도록 사랑을 시작한다. 참새들의 짝짓기 소리에 내 허리도 아까부터 자꾸만 저릿저릿 저려오기 시작한다.

청매화, 흐린 눈매에 꽃향이 무너져내린다. 청매화 꽃은 왜 흰 색일까. 더 고고해서일까.
 청매화, 흐린 눈매에 꽃향이 무너져내린다. 청매화 꽃은 왜 흰 색일까. 더 고고해서일까.
ⓒ 윤희경

관련사진보기


또 얼마나 참아야 매화처럼 고고한 꽃 매무새와 맑고 티 없는 향내를 품어낼 수 있을까. 시공(時空)을 초월한 인고의 나날과 맵고 시린 칼날 같은 한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매화꽃을 보며 올해도 더 바보스런 원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추슬러 본다. 매화의 고고한 심화(心花)를 배우자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북집네오넷코리아, 웰촌농어촌공사,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출렁이는 북한강 상류를 찾아오시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매화, #홍매화, #청매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