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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에 대한 '역지사지' 발랄 상황극

 

적어도 영화나 공연의 소재에 있어 동성애는 더 이상 퀴어 (Queer, 사전적 정의는 '기묘한', '기분 나쁜'이란 뜻이지만 이성애자들이 경멸적으로, 또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풍자적으로 가리키는 속어)라는 낱말을 붙이긴 어려울 듯하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병자나 벌레취급을 받던 그들은 이제 당당히 커밍아웃을 하며 거리의 햇볕을 쬐기도 한다. 물론 그 햇살엔 아직 따가운 시선과 멸시에 가득 찬 냉대가 남아있지만, 대놓고 불을 지르거나 화상을 입히진 못한다. 여기에 퀴어영화와 예술이 대단한 이바지를 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허나 동성애를 다룬 기존의 퀴어예술은 한결같이 어둡고 힘겨웠다. 성소수자들이 처한 척박한 정치, 사회적 토양이 낳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지만,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발이 담긴 퀴어예술은 동성애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한 일부에겐 고역이었다. 그런면에서 <자나, 돈트!>는 색다른 재미와 함께 성소수자를 바라보게 한다.

 

<자나, 돈트!>에서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재미는 전복의 묘미다. <자나, 돈트!>의 무대인 하트빌 고등학교에선 동성애가 일반적이고, 이성애가 특수한 경우다. <자나, 돈트!>에서 '퀴어'한 인물은 우리 세상에선 '노말'한 이성애자다. (목욕탕은 어떻게 구분할까? 아이는 어떻게 낳지? 하는 실없는 의문이 스친다.)

 

 

이 기발한 전복이 주는 재미는 공연 내내 관객을 붙잡아둔다. 현실에선 왕따가 됐을지 모를 공부벌레의 체스챔피언은 학교 제일의 킹카가 되고, 체스챔피언은 풋볼 쿼터백만큼 인기있다. 여학생들은 기계 황소 타기 시합을 펼치고, 실연의 아픔은 독주(毒酒)가 아닌 카라멜 마끼아또나 아이스 초코로 달래며, 교내공연으론 '이성애자도 군대에 가야 하는가?'란 논쟁적인(?) 주제를 무대에 올린다.

 

게다가 객석을 술렁이게 하는 스티브와 마이크, 로버타와 케이트 두 동성커플의 입맞춤 장면에선 금기를 넘는 아슬아슬한 쾌감까지 느끼게 한다.

 

현실을 약간 비틀어 놓은 설정이 첫 번째 재미라면 두 번째 재미는 단연 속도감과 마침맞은 음악에 있다. 풋볼경기장, 기계황소타기 경기장, 뮤지컬 연습실, 뮤지컬 무대, 술집, 체스경기장, 침실, 졸업파티장 등 단순히 나열하기도 벅찬 많은 공간을 <자나, 돈트!>는 속도감 있게 이동하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며 얼마 전 막을 내린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던 팀 아시토의 음악은 화려하게 전환되는 공간 사이로 절묘하게 파고든다. 발라드, 컨트리, 힙합, 락, 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적절하게 변주해 관객의 흥을 돋우는 그의 재능은 극장 안에선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고, 극장을 빠져나가면선 'Straight To Heaven'이나 'Sometime Do You Think We Could Fall In Love' 의 일부를 흥얼거리게 한다.

 

사랑으로 하는 모든 일은 누구도 해칠 수 없어!

 

타인의 고통에 발을 담그는 일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고 자란 고향만 달라도 선입견과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 다양성 결핍 증후군의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고단한 일일지 상상이 가능하다.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한 퀴어영화 속 동성애자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표적 퀴어영화 감독인 데릭 저먼의 영화들이나 <로드무비>, <후회하지 않아>, <브로크 백 마운틴>, <해피투게더> 등 대다수의 퀴어영화들은 동성애자들이 겪는 정치, 사회적 차별이나 고통에 초점을 맞췄고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언해피엔딩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성애자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고작 해야 혐오나 동정, 거기서 나아간다 해도 기껏 이해하는 시늉 정도다.

 

 

하지만 <자나, 돈트!>의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일은 전혀 고단하지 않다. <자나, 돈트!>를 흥겹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영화 <로드무비>의 그것처럼 동성애자들의 고통에 당신도 발을 담가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 걸음 뒤에 서서 자신들의 모습을 즐겨주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동성애라는 아직은 무겁고 논쟁적인 소재를 다룸에 있어 한없이 가볍고 흥겹기만 한 <자나, 돈트!>의 발랄함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자나가 두 번씩이나 외치는  '사랑으로 하는 모든 일은 누구도 해칠 수 없어!' 란 세일러문의 변신 주문 같은 유치한 대사엔 실상 <자나, 돈트!>의 주제의식이 함축되어 있다. 그 누구도 해치지 않으나 단지 선택의 문제로 고통받는 성소수자들을 가장 잘 대변하는 대사기도 하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신영복)

 

세상을 자신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자나, 돈트!>의 이 어리석은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지 모를 당신에게 말한다.

 

"헤이 이봐. 이래도 동성애가 음주운전보다 나빠? 우린 그냥 사랑하는 거라구. 우린 꽤 즐거워. 행복하다구!"

덧붙이는 글 | 일시 : 2009.2.7 ~ 2009.3.31 / 장소 : 세종M시어터 / 주최 : (주)신시뮤지컬컴퍼니 / 문의 : 02)399-1111


태그:#뮤지컬, #자나,돈트,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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