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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폭력? 당연하죠. 그 명단에 안 들어가면 오히려 미안한 거 아닌가요?"

 

<오마이뉴스>가 '불법폭력시위단체'로 찍혀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에게 어떤 생각인지 물어보자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3일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밝히면서 "불법폭력 집회·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참여한 단체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지원사업도 '국가시책에 부합하는 공익활동'으로 제한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5일 "그런 돈 차라리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명박 정부의 지원 제외 방침은 뉴라이트 등 친 정부단체를 제외한 모든 시민사회에 대한 '협력 거부 선언'으로 보고 있다.

 

소통은 포기했다, '정권퇴진' 구호도 나올까

 

지난 10년간 시민사회단체들은 각 분야별로 흩어져 활동했다. 연대회의 틀이 있다고 해도 느슨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공안탄압이 본격화되자 이에 맞서기 위해 지난해 10월 말 출범한 조직이 민생민주국민회의(국민회의)다.

 

국민회의에는 400여 개 시민단체는 물론,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이 소속되어 있다. 국민회의는 출범선언문에서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모든 세력과 국민의 결집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반MB연대'다.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국민회의 내부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거연합을 해보자", "범시민단체 후보를 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는 26일 총회와 정책포럼을 열고 선거전략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현재 시민사회 내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와는 더 이상 '거버넌스(정부와 시장·시민사회가 공적 영역에서 역할을 분담해 협력하는 형태)'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아예 정권과 선을 긋는 게 낫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시민사회단체와 이명박 정권의 소통은 이미 지난해 광우병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끊어졌다. 지난해 7월 당시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 등 청와대 측과 광우병대책회의 소속 시민단체 대표자들의 만남 시도는 불신만 남긴 채 무산됐다. 청와대가 "단체들이 촛불집회 중단을 약속했다가 말을 바꿨다"며 면담을 취소했고, 단체들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 후 양측의 만남은 한 번도 없었다.

 

조경만 시민사회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역대 정권들은 주요 현안이 있을 때 시민사회와 대화를 했다, 의견을 다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극심한 갈등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면서 "예를 들어 용산 참사 같은 경우 '총리 유감 표명' 등 해법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자기 입맛에 맞는 단체들만 만나면서 귀를 틀어막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예전에 정책 수립과정에서 이뤄지던 양측의 대화도 거의 단절된 상태다. 단체 활동가들은 "한마디로 이명박 정권은 아직도 명박산성을 쌓아놓고 있다"고 했다.

 

박창재 환경운동연합 투명운영국장은 "사전환경성검토제가 환경영향평가법과 통합되면서 기준이 대폭 완화됐는데, 예전 같았으면 수십 차례 협의했을 일"이라며 "그런데 현 정부는 친정부단체나 민간 개발업자만 불러서 공청회를 열고, 법안을 밀고 나간다"고 말했다.

 

김금옥 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역시 "예전에는 여성단체 인사들이 정부 위원회나 자문위원단에 참여해 정책을 비판하고 조언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잘려나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성부와는 호주제 폐지나 성매매 방지 등의 법제도를 만들 때 서로 협력했는데 이 정권에서는 그런 관계가 안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명박산성 아직도 견고하다"... 선거연합 구상도

 

시민사회 단체는 지금의 '시련'을 기회로 삼아 정부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강하다. 지난 10년 동안 둔해진 '야성'을 다시 가다듬자는 것이다.

 

올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장기 사업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이 끊기거나 회비가 줄어서만은 아니다. 큰 싸움에 대비해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광우병 촛불집회와 같은 정국이 오면, 시민단체들이 힘을 합쳐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조경만 사무국장은 개인적으로 "시민단체가 '정권퇴진'을 외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에 나설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정권 임기가 4년이나 남은 데다가 지금까지 현 정부 정책이 '퇴진'을 요구할 수준인지를 놓고 단체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구호로 외치기는 쉬워도 정권 퇴진 이후의 대안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이러기 위해서는 일단 시민사회단체들의 역량부터 회복해야 한다. 당면 과제는 독자적인 의제 발굴. 정책 비판을 넘어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게 요즘 시민사회단체들의 고민이다.

 

한상민 녹색연합 시민참여국장은 "예를 들어 정부의 '녹색뉴딜'이 삽질이라고 비판하면 '삽질'이라도 해서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진짜 녹색이 무엇인지 답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국민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잘못하면 정권 내내 '반대' 플래카드만 들다가 끝낼 수도 있다"면서 위기감을 나타냈다.

 

시민사회 연대틀인 국민회의에서도 공동의제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구체적인 현안을 두고 단체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조경만 사무국장은 "일단은 사안별로 협의가 이루어지다가 지방선거를 계기로 의제가 모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민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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