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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 태우기 어디서 한대? 오빠야 니 아나?"
"몰라~ 일단 사람들 가는 데로 따라 가 보자"

정월 대보름을 맞아 달집 태우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버스를 타고 시 외곽으로 나섰다. 아파트촌에서 내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멀리서 풍물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나도 사람들 틈에 섞이어 걸어갔다. 곧 눈 앞이 트이며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이고 그 가운데 달집이 서 있다.

풍물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풍물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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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앞에 달집이 서 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앞에 달집이 서 있다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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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에 빨간 홍시 해를 본 것 같은데 벌써 달이 뜰 때가 되었는지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고사를 지내고 달집을 태우려 막 불을 당기고 있었다.

고사를 지낸 후 사람들이 달집에 불을 댕기기 시작한다
 고사를 지낸 후 사람들이 달집에 불을 댕기기 시작한다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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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태우기
 달집태우기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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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부터 불이 번져 달집 꼭대기 대나무 이파리까지 불이 붙는 것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하나 둘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기 시작한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본 아이들도 킥킥거리며, 하지만 제법 진지한 얼굴로 손을 비벼 소원을 빌었다.

달집이 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달집이 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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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번 불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달집은 맹렬한 속도로 타들어간다.
딱딱 소리를 내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달집 옆에서는 풍물패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놀고 있다. 멀리서부터 동네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소리이다.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하자 달집이 맹렬히 타올랐다.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하자 달집이 맹렬히 타올랐다.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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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 소리로 흥을 돋우는 마을 사람들
 풍물 소리로 흥을 돋우는 마을 사람들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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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나 묵고 하소"

풍물을 노는 한 쪽에서 돼지고기를 썰고 술을 푸던 아주머니들이 딸기를 내민다. 저 쪽에서는 아저씨들이 술 한 잔씩 권하시더니 어느새 한 분 두 분 오셔서 이런 저런 말씀을 해 주신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갑득, 정종현 할아버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갑득, 정종현 할아버지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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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곡 마을이 진주시에 있어도 대대로 농사짓던 마을이라. 옛날에는 농사짓던 데가 많았는데 이제는 우리 이현동하고, 초전, 상봉동, 판문동 정도밖에 없어. 상봉동은 배 농사를 짓고, 초전은 하우스를 많이 하는데 우리는 순수 나락 농사야. 그래도 우리 마을은 아직 90호 정도 사람들이 살고 해서 괜찮지. 한 삼년 전만 해도 동네에 청년들이 있어서 청년회에서 달집태우기도 앞장서고 했는데 이제는 다들 회사 가고 직장 다니고 한다고 다 나갔어. 그래서 그냥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준비한거지. 매구(풍물)치는것도 어디 딴데서 사람들 불러온 게 아니라 순수 우리 동네 사람들이 치는거라."

"아가씨도 사진 고마 찍고 한잔 하이소"
 "아가씨도 사진 고마 찍고 한잔 하이소"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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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네에서는 현수막도 걸고 해서 사람들 오라고 초청도 하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것 안해.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게 좋나요?) 좋지 그럼. 사람들 많이 오고 하면 우리가 기분이 좋지. 전에는 달집을 여기 밭에서 안태우고 저쪽 산밑에서 태웠지. 그러면 여기보다 달을 일찍 볼 수 있거든. 그래서 마을에서 달집을 먼저 태우기 시작하면 밑에 있는 다른 마을들이 우리 보고 따라했지. 그런데 한 삼년 전부터 그린벨트가 풀리기 시작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니까 올해는 달을 못보네. 원래 저 아파트 없었을 때는 월아산 사이로 달이 솟는게 보였는데 오늘은 망구 한밤중이나 돼야 보겠네. 그래도 아파트가 생기니까 사람들도 많이 오고 애들도 구경오고 하는 건 좋다."

그린벨트가 풀리고 새로 들어선 아파트 때문에 달은 볼 수 없었다
 그린벨트가 풀리고 새로 들어선 아파트 때문에 달은 볼 수 없었다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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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잔 하고 돌아서다 아주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친다.

"소원 비셨어요?"
"빌었지. 딴 건 없고 그냥 우리 자식들 잘 되게 해 달라고 빌었지."

아파트를 돌아 나와서 본 보름달
 아파트를 돌아 나와서 본 보름달
ⓒ 정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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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드는 불을 지키느라 몇 분 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제 마을 회관에 저녁을 먹으러 가신다. 함께 가자고 하시는 것을 아쉽지만 사양하고 아파트를 돌아오는 길에 보름 달이 떠 있다. 한 해 농사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자식들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 부모님 건강하시라는 기도, 저렇게 크고 밝은 달이라면 그 욕심 없는 욕심들 다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 진주시 이현동 두곡마을에서 취재한 것입니다



태그:#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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