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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꼬맹이가 생기면 집안 대소사가 꼬맹이 위주로 바뀌어 버린다. 부모의 생활 패턴이 바뀌고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덩달아 할아버지, 삼촌은 찬밥이 된다. 설거지 귀찮을까봐 남기지 않고 먹는 나에게는 네댓 가지 반찬만으로도 풍성한데, 아들과 함께하면 거기에 두어가지가 보태어져도 “아이고 먹을 게 없어서 어떻게 하니?”하는 엄마의 간지러운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 손주까지 끼면 내가 보기엔 영양공급이 충분한 것 같은데도 애가 먹는 게 하나도 없어서 걱정이라는 집사람 소리를 들어야 하니,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서열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버리는 엄마의 독재를 내 아들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니 최희준의 ‘열아홉 처녀 때는 수줍던 내 아내가 첫 아이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해버렸네... 호랑이로 변해버렸네...’하는 오래된 가요가 애창곡 목록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딸내미가 지난 토요일 병원 이전한 곳을 구경하러 나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약속한 시간에 딸 부부는 화분 하나 사들고 온다고 할머니와 손주만 손을 붙잡고 들어온다. 화분을 남편과 같이 들고 오는 딸에게 “종로타워로 가서 점심 먹을까” 하니, 대뜸 거기 꼭대기에 있는 뭐라는 음식점 이름을 대서 아니라하니 파이낸셜 빌딩 지하에 있는 뭐라카는 음식점 이름을 댄다.

 

 

하여간 자기들 데이트할 때 들렀던 음식점을 들이대는데는 ‘쫌’ 질린다. 사실은 딸내미가 오기 전에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종로 5가라는 동네가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보니 술 마시기는 좋아도 마땅히 가족과 함께 먹을 만한 곳은 부족하다.

 

그래서 또 실수하는 것은 아닐까 찜찜해 하면서도 종로타워에 있는 인도 음식점으로 가려 했던 것이다. ‘애가 먹기엔 맵고 날씨도 찬데 가까운 데서 먹지...’ 궁시렁 대는 집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종로타워로 간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고른 외국음식치고 변변한 곳이 없었으니까! 집사람이 궁시렁 대는 것도 당연하다.

 

 

지하 1층 인도음식점 '나마스테'(안녕이라는 인도말). 카운터와 주방이 있는 쪽으로 작은 홀이 있고 건너편에 낮은 간막이를 해놓은 개방된 홀이 있다. 메뉴판을 놓고 무엇을 먹을지 잠시 설왕설래가 있고 난 후, ‘잘 알지도 못하는데 시켜놓고 실수하지 말고 코스로, B!, B코스 좋다’로 결정을 본다.

 

 

나처럼 배가 나온 마음씨 좋아 보이는 지배인이 직접 와서 카레는 무엇으로 할지, 음료수는 무엇으로 할지, 디저트는 무엇으로 할지 설명을 해가며 일일이 묻고 적어간다. 꼬맹이를 위해 서비스로 뭘 줄 수 있느냐는 짓궂은 질문에도 귀찮은 표정 없이 싱글싱글 잘 넘어간다. 

 

 

먼저 라씨(인도 요거트)와 와인이 나온다. 한번 얼굴을 찡그리더니 먹을 만한지 손주는 더 달라며 떼쓴다. 이어서 사모사(카레를 넣어 만든 인도만두)와 해물샐러드가 나오는데 매운 맛에도 불구하고 만두껍질과 감자속을 잘도 먹어서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홍합을 비롯한 해물과 방울토마토, 파인애플, 귤과 야채를 버무린 샐러드, 깔짝대지 않고 푸짐한 게 마음에 든다.

 

 

평소에도 치킨을 좋아 하던 손주는 매울까 걱정되는 탄두리 치킨조각이 나오니 빨리 달라 설쳐댄다. 내 것 한 조각 거의 다 먹었다는 딸의 말도 귀에 안 들어오는 듯, 집사람은 “그래그래, 아이고 우리 예쁜 아기 잘도 먹네"하며 좋아 한다. 손주도 다채롭게 나오는 음식이 흥미로운지 코믹한 인도청년이 다가오면 아는 체 한다.

 

 

탄두리와 왕새우 바비큐로도 어느 정도 배가 차기 시작하는데 난(인도빵)과 밥, 해물 카레, 닭고기 카레, 아기가 함께 왔다고 서비스로 호떡 같이 속에 양념을 한 난을 추가로 갖다 준다. 우리 나이에는 무얼 먹어도 곡기가 없으면 뭐가 빠진 것 같은데 마침 입에 붙는 카레와 매운 향신료를 가미한 양파절임이 함께 나오니 모두 맛있게 먹는다. 꼬맹이도 빵조각에 카레를 찍어 오물오물 잘도 먹고 사위도 맛있다 하니 집사람은 드디어 기분이 ’업‘되어 버렸다.

 

 

“오늘 음식 값은 내가 낼테니 많이들 먹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연세51치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나마스테, #인도음식, #탄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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