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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 미용실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기 위해 추운 날씨 속에서도 하루 종일 서있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있다.
 이대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 미용실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기 위해 추운 날씨 속에서도 하루 종일 서있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있다.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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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하러 오셨어요?"

한 아주머니가 명함보다 약간 큰 크기의 종이를 내밀면서 말을 건넨다. 하지만 내민 손을 멋쩍게 다시 가져오기가 일쑤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3·4번 출구로 나와 이화여대 정문 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이런 아주머니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나눠 주는 것은 미용실 광고 전단지. 대부분 사람들은 이 전단지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평균 5~6시간을 그 자리에 서있는다. 사람들이 반기지 않음에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이 아주머니들을 만나봤다.

아르바이트가 아닌 생계 위한 직업

아르바이트나 소일거리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일을 시작한 지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정도로 보통 5~6년 정도된 '통뼈'들이다.

김분임(가명·63세)씨는 이대 앞으로 출근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종일 서있었지만 손님을 끌어오기는커녕 전단지를 제대로 받아주는 사람도 없다. 김씨는 "5일 동안 손님을 한 명도 못 끌어와서 공쳤다"고 말했다. 그나마 오래 일한 탓에 원장의 배려로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

젊어서부터 고된 노동일을 해오다 결국 3급 장애 판정까지 받은 남편과 함께 사는 김씨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연금이나 보험도 넣을 형편이 못되어 준비된 노후가 없다. 김씨가 버는 하루 일당으로 근근이 버티는 것이다. 40세 아들과 쌍둥이 딸이 있지만 자식들도 먹고 살기가 팍팍해서 김씨를 도와줄 형편이 못된다.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운 것을 자식들한테 그대로 물려줄 수밖에 없었어. 자식 셋을 모두 고등학교 밖에 못 시켰거든. 그러니 자식들이라고 변변한 직업을 가질 수 있었겠나.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거 다 옛말이지. 아들이 늘 어머니가 추운데 고생하는 것이 눈물 난다고 힘들어해. 늙은 부모한테 용돈도 한 푼 못 보태주는 형편이니 왜 가슴이 안 아프겠나. 가난이 또 대물림 되는 게 싫어서 오죽하면 내가 손주를 낳지말라고까지 했겠어."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이경숙(가명·51세)씨. 오는 3월에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아이에게 당장 사입혀야 할 교복값과 앞으로 들어갈 교육비 걱정이 크다. 이씨의 벌이로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학원은커녕 문제집도 간신히 사준다. 내가 못 배운 게 서러워 공부는 시켜주고 싶지만 이렇게라도 벌어서 아이들이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기불황, 인터넷 홍보, 똑똑해진 소비자들 때문에 설 자리 더 없어

아직도 '이대 앞'하면 '미용실'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이곳에는 미용실이 많다. 하지만 한 때 우후죽순으로 미용실이 생기다 보니 경기불황의 한파를 맞으면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미용실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현장을 둘러보니 폐업한 4개의 미용실이 이웃해 있기도 했다. 그나마 장사를 하고 있는 미용실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손님들도 예전처럼 무작정 '이대 앞'을 찾지는 않는다. 어디를 갈지 갈팡질팡 하다가 아주머니들의 손에 이끌려 미용실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위 '머리를 잘 만진다'고 입소문이 난 가게를 주변으로부터 소개를 받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후기까지 읽은 후에 결정을 내린다. 머리를 하기 위해 '미용실'을 찾지 '이대 앞'을 찾지 않는 것.

소비자들이 똑똑해진 데는 인터넷의 역할이 컸다. 미용실은 이제 인터넷으로 홍보를 하거나 포털 사이트나 유명 쇼핑몰 사이트와도 연계해 '미용'을 하나의 상품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 어떤 파마를 어느 가격에 할지를 인터넷으로 미리 결정하고 구매까지 해서 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전단지 아주머니들을 쓰지 않게 된 미용실이 많이 늘었다. 미용실 홍보에 영향을 미쳤던 아주머니들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다. 5년 전만 해도 70~80명 가량 되었지만 지금은 10명 남짓으로 줄었다. 그나마 아직 아주머니를 쓰고 있는 미용실 중에는 8~9시간 일하던 것을 2~3시간까지 시간을 줄인 곳이 많다.

매일 10시간도 일했는데 최근 5시간으로 줄었다는 김옥분(가명·47세)씨는 "미용실이 먹고 살아야, 나도 먹고 살 텐데…"라며 걱정했다.

두 번 죽이는 즉결심판 "글자도 못 읽는 늙은이가 판사님 앞에서 통곡"

아주머니들이 나눠주는 전단지는 불법 광고물에 해당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 적발을 할 경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즉결 심판으로 보내진다. 즉결심판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 등에 해당하는 경미한 범죄(경범죄처벌법 등)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경찰이 법원에 심판을 청구하는 것이다.

아주머니들이 벌금으로 내는 돈은 처음 적발되었을 경우에는 3만 원, 그 이후에는 5만 원이다. 아주머니들에게는 아주 큰 돈이다. 왜냐하면 벌금을 내려면 하루 이틀 안 쓰고 꼬박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전 9시30분에 시작하는 즉결 심판에 맞춰서 가려면 그날 하루는 일을 하지 못하고 쉬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미용실 원장이 대신 벌금을 내주기도 했지만 불황이 닥치면서 장사도 안 되는데 "자를까봐" 말도 못 꺼낸다. 치우고 싶은 '골칫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 황옥자(가명·52세)씨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고 많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시간당 2500원을 받는 이청자(가명·54세)씨는 하루 10시간씩 이틀 동안 일해서 모아 고스란히 벌금으로 냈다.

"어제도 나랑 2명이 다녀왔어. 그 아줌마도 사정이 딱한데 불쌍하더라고. 난 어린 학생들도 잘 사먹는 이 앞 노점상에서 천원짜리 군것질거리도 하나 안 사먹고 살았어. 집에서 찬밥덩이랑 김치랑 몇 안 되는 반찬 가지고 와서 점심으로 때워가며 일했지. 아끼고 또 아꼈는데 그 큰돈을 내려니 손이 다 덜덜 떨리더라."

김분임씨는 지난 한해에만 즉결심판에 4번이나 다녀왔다. 경찰에게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와서 글자도 못 읽어. 난 무식해서 이게 얼마나 큰 죄인지도 몰라. 늙은이한테까지도 일자리 주신 거 감사하게 생각하고 허리가 끊어져나가도 그저 열심히 했던 거야. 60년 평생을 밑바닥으로 살았는데 다 늙어서는 붙들려가지고 법원까지 가게 되니, 하도 서러워서 판사님 앞에서 머리 조아리고 한참을 통곡했어."

김씨는 결국 이야기 도중에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야 말았다. 김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기자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

인근에 대학이 있고 여러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서 이대 앞은 지나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그 길 한 가운데에 미용실 광고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인근에 대학이 있고 여러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서 이대 앞은 지나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그 길 한 가운데에 미용실 광고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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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학이 몰려있는 중심가다 보니 유동인구가 많다.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안 그래도 복잡한 길에서 발걸음을 엉키게 하는 이들이 반가울 리가 없다. 더군다나 인근 대학으로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책이나 노트를 꼭 껴안은 채 이리저리 아주머니들을 피해 다니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이화여대에 다니는 김소연(가명·22)씨는 "딱 봐도 학교 가는 학생인데도 굳이 나눠준다. 빨리 학교에 가야 할 때는 성가시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가영(가명·25)씨도 "지금은 많아야 2~3장 정도 받으니 아주머니들이 많이 줄어든 편이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데 18장까지 받아봤다. 그래도 학교 앞인데 이런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솔직히 없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이대 앞을 찾은 김민주(가명·22세)씨도 "미용실을 가려고 이대 앞에 온 것이 아닌데도 무조건 불쑥 불쑥 내미는 손길이 달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예전과 같은 호객행위는 사라진 지 오래

인근 학교 학생·교수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추진되지 못했지만, 서대문구청은 2003년 11월 이대 앞거리를 '미용특화거리'로 지정하려고도 했다. 당시 130여개가 넘는 미용실이 있었다.

많은 미용실이 생겨나면서 아주머니들을 경쟁적으로 고용했다. 실제로 6~7년 전에는 호객행위가 심했다. 가는 길을 막아서는 것은 예삿일이고 억지로 잡아끌기도 했다. 어느 미용실을 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아주머니들이 3~4명씩 찰싹 달라붙어서 서로 데려가려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전단지를 든 손만 내밀뿐 굳이 2번 이상 받으라고 권하지 않는다. 조용히 손을 거두고 다른 사람에게 내밀어 보는 정도다. 전단지를 들고 인도에 서 있다는 것 자체로도 신고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또 지나친 호객 행위가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다. 예전처럼 잡아끈다고 해서 오지 않을 손님이 호락호락하게 온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당 2500원, 그래도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해"

호황일때는 130여개까지 있었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문을 닫는 미용실이 늘고 있다.
▲ 이대 앞의 많은 미용실 호황일때는 130여개까지 있었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문을 닫는 미용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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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마다 노동 시간에 비례해서 지급액에 차이가 있다. 아주머니들은 1시간 당 보통 2500~5000원을 받는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10시간 정도 일한다. 일당으로 2만~5만원씩 받거나 15일 혹은 30일 단위로 받기도 한다.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50세 이상이다. 나이가 많고 기술이 없는 아줌마의 신분으로 취업이 가능한 자리는 단순 임시직의 고되고 보수가 적은 일들뿐이다. 그나마 식당일도 40대가 넘어가면 잘 받아주지 않는다. 결국 한정된 직종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불경기에 손님을 하나도 못 끌어오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임금을 더 올려 받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미용실 가게세도 내기 힘들 정도로 적자인데 아주머니들까지 고용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손이 모자라면 시간당 1만원씩 해서 1~2시간 잠깐 도와주기도 했지만 이런 자리도 거의 없어졌다. 한 군데가 문을 닫으면 아주머니들끼리 소개를 해서 다른 미용실로 옮겼지만, 요즘은 미용실이 폐업을 하면 아주머니도 곧장 실업자가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나마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아주머니들은 '하루살이' 일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궂은 날씨와 싸워가며 하루 종일 서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냉대도 인내하고 즉결심판도 다녀오는 홍역을 치러야 한다. 열심히 일했다고 좋은 소리도 못 듣지만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다.

이경숙씨는 "내가 버는 것이 큰돈은 아니지만 두 아이들과 굶지 않고, 남에게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되니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웃어보였다.

이청자씨는 "나는 시간당 2500원에 일한다. 여기서도 가장 적게 받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원장이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이마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 할 때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씨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부디 내일도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태그:#이대 앞, #전단지, #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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