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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일(2009년 1월 2일)

히말라야 발자국
05:00           숙소 ‘네팔짱’ 기상
08:00~08:30  카트만두에서 루클라로 이동
09:30           루클라(Lukla,2860m), 트레킹 출발
12:20~13:40  팍딩(Phakding. 2610m) 도착 후 중식
                   (Khumbu Traveller guest house)
5시에 기상해 떠날 준비를 마치니 그제야 후배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준비물을 챙겼다.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 도착 첫 날부터 현지 풍토에 잘 적응하지 못해 음식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오늘 히말라야에 들어가 제대로 트레킹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나 혼자 어제 주문해 놓은 김치찌개를 먹고 있으니, 가이드와 포터가 벌써 와서 아침 식사를 방해하였다.

200루피에 택시를 타고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했다. 오늘도  안개가 짙게 배어 있는데, 알고 보니 ‘카트만두’라는 도시의 이름이 '안개의 도시'란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해 보딩패스를 받고, 어제와 같은 불안감을 지우지 못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오늘까지 캔슬되면 어떻게 하지? 저 안개 좀 봐! 어제보다 더 심하지 않은가?'

계속 시간을 확인하며,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삶이 미워 비행기에 올랐고, 시간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초조감으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는 다시 시간의 노예로 추락하고 만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헬라어로 크로노스는 시계로 재어지는 물리적인 시간, 그저 지나가는 시간을 의미하고, 카이로스는 인간의 삶과 함께 살아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는 모래시계와 낫을 들고 지상의 모든 것들을 가차 없이 파괴한다. 흐르는 시간 앞에선 모든 것, 즉 육체도, 정신도, 삶도 사라져버리고 만다. 과거는 이미 사라지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그렇게 흘러가는 기계적인 시간이 크로노스이다.

이에 반해 카이로스는 과거를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품고, 미래를 희망하는 시간이다. 과거의 의미를 쌓아 역사와 전통을 만들고, 미래의 이상을 품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유의미한 시간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과 함께 살아 숨쉬는 시간! 파괴하고 죽이지 않고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고 생성하는 시간이다.

비행기 캔슬로 하루라는 시간이 연장되었지만 그것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일 뿐이다. 카이로스적 시각으로 볼 때 어제의 캔슬이나 오늘의 연착은 또 다른 삶을 창조하는 시간이 될 것이고, 그 창조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우리는 크로노스의 운명 속에서 카이로스적으로 살아야할 것이다.

7시 50분쯤 되자, 입구에서 공항 관계자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Yeti! Lukla!' 오늘 우리가 이용해야 할 항공사가 'Yeti(예티)'이고, 목적지가 'Lukla(루클라)'이다. 그 두 단어에 히말라야 트레킹의 떨림이 다시 내 가슴 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히말라야로 들어간다. 가이드 쿠시와 포터 나란이 나를 향해 만개한 미소를 지으며 'go! go!'한다.

간단히 몸수색을 받고, 공항버스에 올라 20인승 프로펠러 경비행기가 대기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승객이 12명 정도 되는데, 탑승하는 이들의 숫자를 헤아리다 마음속으로 음모론적 생각이 일어났다. '요 녀석들! 혹시 어제 승객이 너무 적어 경제적인 이유로 캔슬한 것은 아닌가?' 자연이 시니컬적이고, 냉소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낸다.

비행기는 정확하게 1시간 딜레이 되어 8시에 출발하였다. 옛날 영화에서나 보았던 이 프로펠러 경비행기! 맨 앞 왼쪽 좌석에 앉아 이륙을 기다리며 활짝 개방되어 있는 조종석을 구경한다. 경비행기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날개의 프로펠러가 고막을 찢을 듯 굉음 소리를 내며 내달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와, 이 긴장감과 초조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양손과 발바닥에 땀이 흥건히 맺힌다. 하늘로 오르자마자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설산들과 첫 인사를 나눈다. ‘랑탕 히말’이라고 한다.

'아! 이래서 루클라로 이동할 때 좌측에 앉으라고 하는 것이구나!'

카트만두에서 에레베스트 트레킹의 원점인 루클라로 30분 동안 비행한다.
▲ 루크라행 경비행기 카트만두에서 에레베스트 트레킹의 원점인 루클라로 30분 동안 비행한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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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 좌측으로 랑탕 히말라야라 불리는 설산 무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경비행기에서 바라본 설산 경비행기 좌측으로 랑탕 히말라야라 불리는 설산 무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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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어 비행기는 아주 안락하고 편안하게 루클라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드디어 루클라 공항이 보이는데, 절벽 바로 위로 활주로가 긴 혀를 내밀고 있었다. 150m정도 되는 이 공항의 활주로는 독특하게도 활주로가 위로 경사져 있어 자동적으로 속도를 제어해 준단다. 카트만두로 돌아갈 때는 거꾸로 경사진 길을 타고 내려가다가 절벽 위로 이륙하게 될 텐데, 벌써부터 근심이다.

도착 후 짐을 찾아 쿠시가 안내하는 롯지(숙소)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나란은 끈으로 짐을 단단히 동여맨 다음, 머리에 대고 무게를 지탱할 지지끈을 준비했다. 보통 포터들이 20~25kg정도의 무게를 요구하는데, 우리의 무게는 대략 30kg정도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비워버리고 네팔의 풍습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자언했건만, 출발일이 다가오며 카고백 속에는 참치 하나, 휴지 하나, 양말 하나 더 하며 과잉된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문명의 이기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래서야 제대로 여행이나 할 수 있을는지.

강제로 거위간을 살찌워 요리해 먹는 푸아그라가 그려진다. 인간의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해 거위의 간을 부게 하는 방법은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잔인함의 극치이다. 거위를 좁은 공간에 가둔 후 입에다 깔때기를 억지로 쑤셔넣고 사료를 억지로 밀어넣는다. 거위는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치지만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 마음껏 운동도 못하고 스트레스에 미쳐가는 거위의 간은 반복되는 음식의 강제적 투여를 통해 정상크기보다 10배나 커지게 된다. 한마디로 간덩이가 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옷을 입고 품격을 높여주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거위가 아니라 욕구를 삼킨다. 우리가 무자비하게 칼로 자르고 포크로 찍어 대는 거위도 한때 생명이었다는 사실은 욕구의 망각속으로 지워버려야 한다.

하나 더 하며 카고백 속에 집어 넣은 문명의 이기들이 꼭 거위에게 억지로 먹이는 사료와 같구나.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밑 빠진 인간의 욕구를 무엇으로 만족시킬 수 있으리오. 채우려 하지 말고, 욕구를 비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남체 방향으로 큰 산 하나가 보이니, 곧 '눈물난나'라는 산이다. 설산은 아니고 바위로 단단히 이루어져 있는 고산이었다. '아! 네가 히말라야의 수문장이구나. 잘 부탁한다.' 가벼우면서도 경건한 마음으로 인사를 한 후 출발한다.

루클라에서 팍딩까지 가는 길은 한국의 여느 시골길의 풍경과 흡사했다. 꼭 초가을 같은 따뜻한 햇살이 도시에서 전원으로 가벼운 산행에 나선 듯 낯설음으로 저며진 기분을 느슨하게 풀어 놓는다.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를 바 없이 조용하고 평온하다.
▲ 루크라에서 팍딩가는 길 풍경(1)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를 바 없이 조용하고 평온하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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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소를 끌고 다리는 건넌다. 다리 아래에는 빙하가 녹아 흐르는 비취빛 강이 흐른다.
▲ 루크라에서 팍딩가는 길 풍경(2) 아이들이 소를 끌고 다리는 건넌다. 다리 아래에는 빙하가 녹아 흐르는 비취빛 강이 흐른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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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자신의 몸 덩어리만한 짐을 지고 올라가는 포터 나란의 모습이 보인다.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포근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를 담아 우리에게 가까이 오려 했는데, 평균 무게를 초과하는 짐을 지게 해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똑같다.

'포터의 일이니 감상에 젖지 말고 보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만약 포터가 저 짐을 지지 않으면 17일간 백수로 지내야 한다.'

머리는 그들의 논리에 동의하지만 가슴은 동의하지 않는다. 내 가슴에는 인간의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50살이 다 된 지긋한 나이에, 160센티미터의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이렇듯 고된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왜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경제적 판단 이전에 인간을 먼저 만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또다시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문명의 이기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인다. 가이드 쿠시는 어제의 지각이 아직도 미안한지 우리를 뒤따라오며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안내를 해 줬다. 이제야 술이 다 깬 모양이군!

오르는 트레커는 거의 보이지 않고 루크라로 내려가는 서양인 트레커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나마스떼’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풍요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의 모습 속에 쿰부히말라야의 모습이 깃들어 있었다. 마주치는 대부분의 서양 트레커들은 가이드나 포터도 없이 홀로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문화적 특성인지 걸음걸이마다, 미소마다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홀로 내려오는 어떤 분이 갑자기 우리를 향해 '한국인 아닙니까?'라고 반갑게 말을 건넸다. 연세가 꽤 드신 것 같은데, 몇 년 동안 히말라야를 비롯해 세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트레킹에 대한 자상한 조언을 하며, 내려와 시간이 되면 꼭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는데, 명함을 받고 뒤를 보자마자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사진이 보였다. 설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노란 옷과 까만 선글래스의 남자! 타멜에서 쇼핑을 할 때마다 가게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주인공이었다. 내려가면 홈페이지에 방문하겠다고 약속하며 길을 떠나는데, 다시 우리를 불러 세우며 ‘이것도 인연인데 사진이나 한번 찍자’고 했다.

참! 이런 타지에서 한국인이라는 동질감으로 따뜻함을 나눌 수 있어 좋다. 네팔 및 히말라야에서는 유독 한국인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만나는 한국인의 대부분이 이렇듯 따뜻한 안부와 격려, 세심한 배려를 나눈다. ‘정(情)’이라 부르는 우리 민족의 인간미일까? 

그분과 헤어지자 겉모습은 지저분하지만 웃는 미소가 아름다운 네팔 아이들을 만났다. 기분 좋게 인사를 하니, 해맑게 '나마스떼!'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에게서 네팔이라는 나라의 유순하고 긍정적인 민족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눈빛과 손끝 하나하나에는 행복이 충만해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가난과 열등감을 배우기 전까지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제발 이 아이들이 최대한 늦게 ‘비교’의 색안경을 갖게 되면 좋겠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창조한 모든 것은 문명이다. 사고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문명이 존재한다. 하지만 세상의 반쪽은 자신들이 설계하고 만들고 놓은 세계만을 문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 들지 못하는 이들을  ‘야만’이라고 부른다. 무지하고 더러운 야만이여! 도대체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가? 누구에게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힘을 부여받았는가? 그것이 이성이라면, 나는 이성적 인간에 침을 뱉을 것이다.

쿰부히말라야에 들어와 처음으로 설산 '쿠숨 캉구루(Kusum Kanguru)를 본다.
▲ 롯지 너머의 '쿠숨 캉구루(6370m)' 쿰부히말라야에 들어와 처음으로 설산 '쿠숨 캉구루(Kusum Kanguru)를 본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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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마주친 히말라야 아이들! 깨끗하다.
▲ 히말라야 아이들 길에서 마주친 히말라야 아이들! 깨끗하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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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있는 팍딩의 고도는 2,600m정도! 달밧 먹고 힘내 오늘의 목적지인 몬조까지 가자! 지금은 바숨 중(휴식)! 바숨 후 잠잠(출발)! 쿠시가 가르쳐 준 네팔어이다.    

※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느끼고 고민했던 내용과 관련된 동서양 사상가의 사상을 빌려와 철학적 채색을 하였습니다.(공자에서 샤르트르까지)


태그:#히말라야, #네팔, #에베레스트, #트레킹,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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