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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설을 쇤 게 기껏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까지는 정초 기분에 들떠있을 법도 한데 도무지 신나는 일이 없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다들 힘들다는 소리에 죽겠다는 푸념입니다. 사람들을 만나 형식적으로나마 정초 인사를 나누고 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실직에 대해 두려워하며 미래에 대해 암울해 합니다.

 

어쩌다 정치권에 대한 이야기라도 하려면 육두문자에 버무린 비판이며 지난 대선에 대한 회한입니다. 용산철거민 참사가 얘깃거리로 오르면 너나 할 것 없이 반쯤은 투사가 될 듯한 반응이고,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살점이 떨릴 듯한 분노입니다.

 

살맛 챙기러 병천 아우내 5일장에 가다

 

다들 힘들어 하고 기죽어 있으니 덩달아 힘들고 기죽게 됩니다. 더위에 지친 몸에 찬물 한바가지 확 끼얹듯 정신 번쩍 들게 할 뭔가가 그리워 병천 아우내 5일장을 찾았습니다.

 

이렇듯 삶이 심드렁해지고 마음이 고단해지면 5일장을 찾아갑니다. 어디라도 5일장이 서는 곳에 가면 없는 게 없는 듯 별의별 것이 다 있습니다. 장을 보러 온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는 물론 애환까지도 다 있습니다. 팔고 사는 물건만 있는 게 아니라 나누는 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고단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편안함이 있고, 지친 마음이 걸터앉을 수 있는 툇마루도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서있고, 송판으로 짠 마루가 놓여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닐고 살피다 보면 저절로 편해지는 오묘한 툇마루와 기둥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터를 누비다 보면 스치는 사람들의 발길과 숨결소리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듯이 지친 마음을 벌떡 일어서게 하는 활기가 느껴집니다.

 

밀고 당기며 흥정하는 데서 시름을 잊고, 인심 좋게 얹어주는 한 줌의 덤에 야박했던 마음이 미안해지니 피식하고 웃게 됩니다. 그런 편함과 위로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5일장이기에 일요일인 2월 1일 병천 아우내장터를 찾았습니다.

 

병천하면 온통 순댓집이라고 할 만큼 순대로 유명하지만 순대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생활도구는 물론 공산품, 농수산품, 장난감 등 정말 별의별 것이 다 있었습니다. 여기를 기웃거리면 아기 옷이 걸려있고, 저기를 기웃거리니 여성들의 몸매를 잡아 줄 브래지어가 ‘2장에 5000원’이라는 안내판을 걸고 버젓하게 널려있습니다.

 

순대 외에도 별의별 것이 다 있다

 

한쪽에서는 붕어빵을 굽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펑’하는 굉음과 함께 뻥튀기가 튀겨 집니다. 안쪽 골목에서는 수수부꾸미를, 바깥쪽 골목에서는 국밥을 말고 막걸리를 내놓습니다.

 

커다란 독을 열어 보니 묵은 된장이 가득 들어있고, 엿가위가 짤그랑 거리는 엿판을 들여다보니 엿장수 맘대로 잘라낸 엿들이 달콤한 모양새로 즐비합니다. 대형매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가지런하게 널린 옷걸이에는 형형색색의 옷들이 걸려있고, 토실토실한 아가의 엉덩이를 연상하게 하는 꽃무늬 팬티와 양말도 수두룩합니다.

 

장터가 너무 크면 한 바퀴를 돌아보는 것도 힘들겠지만 그렇게 크지 않으니 두 바퀴쯤 돌 수 있으니 구석구설 살피며 5일장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빠트리지 않고 챙길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 늘어놓은 자루에는 곡식들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보름날에 대한 기대도 가득 담겨 있고, 아기 머리에 하나 꽂아주고 싶은 핀에서는 앙증스러움이 우러납니다.

 

장돌뱅이가 된 마음이 되니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삶의 소리가 느껴집니다. 비좁은 골목을 오가느라 툭툭 어깨가 부딪혀도 눈 맞추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냥 씨익 하고 한번 웃어주면 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북적거려도 맞아죽을 이유도, 불에 타 죽을 위험도 없는 곳이니 지친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쉬거나 활력소를 찾기엔 '딱'인 곳을 다시금 느껴봅니다.  

 

아우내 장터

( 1 / 30 )

ⓒ 임윤수

배꼽이 확 뒤집어 질만큼 박장대소할 커다란 웃음거리는 찾지 못했지만 한 그릇 챙긴 순댓국에 배부르고, 아등바등거리는 억척스러움과 함께 더불어 가는 오순도순 한 모습을  실컷 보았으니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살맛을 5일장에서 챙겨갑니다.

 

5일장! 눈만 크게 뜨면 거리에 널린 게 살맛이고, 장터에 깔린 게 인정으로 버무린 행복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병천 5일장은 1일과 6일 섭니다. 


#병천#아우내#5일장#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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